【임팩트온X옥스팜 ESG 컨퍼런스】인권 리스크 대응 뭐부터 할까…실사범위 설정과 액션플랜이 핵심
- 옥스팜, WBA 인권 평가점수 낮은 한국…‘액션 플랜’ 부재가 원인 - 국내 전문가들, “당면 과제는 실사 범위 설정과 인식 개선”
임팩트온이 작년에 이어 글로벌 비영리단체 옥스팜(Oxfam)과 함께 ‘비즈니스 인권 리스크 대응을 위한 도전과 과제’라는 주제로 5일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인권 실사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전략과 국내외 사례가 공유됐다.
행사는 기업 실무자와 관계자를 중심으로 200여 명이 신청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기업 ESG 실무자는 “지속가능성보고서에 이어 올해 인권보고서도 작성해 보고자 하는데, 사례가 많지 않아 막막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기업들이 어떻게 인권영향평가와 실사를 수행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경영 옥스팜 코리아 대표는 환영사에서 “한국 기업은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모든 가치사슬을 합치면 개개인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며 “이번 행사가 기업이 인권을 존중하고 윤리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옥스팜, WBA 인권 평가점수 낮은 한국…‘액션 플랜’ 부재가 원인
루스 음랑가 옥스팜 영국민간부문 총괄과 엘리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은 해외 기업의 인권영향평가와 실사 사례를 돌아볼 때 핵심은 기업의 실제 행동, 즉 ‘액션플랜(action plan)’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 총괄은 기업의 인권 수준을 평가하는 세계 벤치마킹 얼라이언스(World Benchmarking Alliance, 이하 WBI)의 자문위원도 겸하여 맡고 있다.
루스 음랑가 총괄은 기업의 인권 수준을 평가하는 세계 벤치마킹 얼라이언스에 따른 한국의 현황을 먼저 공유했다. 그는 “WBA 기업 인권 평가를 보면, 한국의 점수는 25%로 OECD 평균인 28%보다 다소 떨어지는 수준”이라며 “기업의 인권 정책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음랑가 총괄은 “한국 기업이 인권영향평가와 실사, 제3자 감사 등을 빠르게 도입하지 않는 이유는 적지 않은 비용 때문으로 분석된다”며 “그러나, 근로자와 이해관계자들과 대화하지 않고 리스크 평가와 액션플랜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파업과 같은 공급망 와해로 이어진다. 이는 더 큰 비용을 발생하게 만드는 길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옥스팜은 글로벌 슈퍼마켓을 대상으로 인권영향평가를 진행해온 ‘비하인드더바코드(Behind the Barcode)’ 캠페인을 소개했다. 그는 “기업이 인권 존중 책임을 다하게 하려면, 인권실사 의무화는 필수지만 준법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이런 평가를 통해 기업의 점수 현황과 변화를 보여줌으로 고위 경영진이 관심을 두고 인권 관리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엘리나 아흐터베르그 총괄은 “인권영향평가는 실사의 일부이며, 모든 정보를 조명하기보다는 위험도 높은 몇 가지 부분에 집중하는 게 좋다”며 비하인드더바코드 캠페인을 진행했던 주요 기업 중 독일의 식품프랜차이즈인 리들의 사례를 공유했다.
아흐터베르그 총괄은 “리들의 스페인 베리 농장을 특정해서 인권영향평가를 수행했다”며 “리들의 수많은 사업과 가치사슬 중 해당 농장을 고위험으로 분류한 이유는 우선 언론에서도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크게 조명되기도 했었고, 여러 리테일들은 고충처리 매커니즘이 있었으나 여기에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흐터베르그 총괄은 “모두를 인터뷰할 수 없으므로 범위 설정이 중요하고, 일감이 많은 성수기에는 인터뷰가 안되므로 평가 시점도 중요하다”며 “산업과 사업장, 실제 근로자들의 특성을 잘 반영한 평가와 실사를 수행하려면 기업은 제3자 기관인 컨설팅그룹, 학계, NGO와 협업하는 게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국내 전문가들, “당면 과제는 실사 범위 설정과 인식 개선”
한편, 토론 세션을 이끈 박란희 임팩트온 대표는 “공급망 실사라는 것은 기업의 문제를 들춰내는 게 아니라 기업과 공급망의 위험을 찾아 해결함으로 안전하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라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실사의 역사가 짧은 만큼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되어 이런 컨퍼런스를 열게 됐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인권영향평가와 실사를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범위 설정과 구성원들의 인식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창욱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는 “실사 범위를 설정할 때 매출액 등의 일반적인 기준이 회사가 이해관계자에 미치는 가장 부정적 영향을 고르는 기준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사는 범위 설정, SAQ(자가평가설문지), 현장실사 단계로 이행된다”며 “범위 설정 시 일반적으로 협력사의 매출액, 임직원 인원수, 거래 기간을 보고 주로 규모가 큰 1차 협력사를 범위로 설정한다”고 말했다.
민 변호사는 미국 식품유통업체 크루거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크루거가 실사 인터뷰 대상을 선정할 때 매출액 규모뿐만 아니라 연령대, 성별, 이민자의 법적 지위 등 실질적으로 인권영향과 관계된 지표를 중요한 기준으로 채택했다”며 “이런 기준으로 선정하다 보니, 공급업체 경영진의 보복을 금지하는 사전 서명, 여성 인터뷰어의 참여, 다양한 언어 사용 등의 조치를 마련할 수 있었고 부정적 영향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양지원 포스코홀딩스 기업윤리팀 ESG 차장도 “매출액 등의 일반적인 기준과 다소 벗어난 인권실사의 범위를 투자자들이 요구하기도 한다”며 포스코홀딩스의 사례를 공유했다. 양지원 차장은 “포스코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ESG 관여가 가장 활발한 회사로 UN PRI 어드밴스를 통해 인권실사에 대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UN PRI 어드밴스는 인권 및 사회적 문제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스튜어드십 이니셔티브로 30조달러(약 3경원)의 관리자산을 대표하는 220명 이상의 투자자가 참여하고 있다.
양 차장은 “PRI 어드밴스가 그룹 매출의 1%도 되지 않는 해외법인의 인권 이슈를 그룹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봤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 질문했으며 해결을 위해 주주 관여활동을 펼치겠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며 “본사와 가까운 협력사들에는 고충처리 메커니즘을 알리는 등의 노력을 해왔지만, 오히려 회사 가장자리에 있는 사각지대가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해외의 작은 사업장에 제3자 인권실사를 진행하려다보니 대기업에게도 부담되는 비용이 발생하여, 의미 있는 인권 실사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비용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고 제언했다.
이규영 SK mySUNI 수석(RF)은 인권실사가 이제 도입되는 단계이므로 관련한 여러 부서와 경영진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개선 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규영 수석은 “C-레벨을 설득하기 위해 2022년 기업과 인권보고서를 작성하고 경영진이 참여하는 이천포럼에서 세션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과 인권 관련 교육 영상을 21편 제공하고, 인권 워크샵을 매년 2회 개최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베이스 러닝(project based learning)이라고 관계사들이 자사의 실제 이슈를 가져와서 분석하고 솔루션을 내는 활동도 매년 1회 이상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수석은 “웨이퍼를 생산하는 SK실트론과 프로젝트 베이스 러닝을 통해 인권영향 평가를 수행했는데, 이때 인사팀(HR)과 노무팀(ER)의 협업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며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할 때 사무기술직, 지도직, 노조, 협력사 등 큰 분류부터 상세 분류까지 구체적인 선발 기준을 작성하여 두 팀에 전달하니 시너지가 크게 발휘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