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이 최종 통과되면서,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공급망 인권관리에 대한 규제가 적용될 예정이다. 국내기업들은 인권실사체계 수립을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정부 또한 CSDDD 대응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수출 기업의 실사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 인권리소스센터(BHRRC)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노동 인권 준수를 서약했으나, 글로벌 인권기준에 부합해 인권영향평가나 인권리스크 경감 행동을 수행하는 기업은 3분이 1이 채 되지 않았다. 즉 인권실사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전략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임팩트온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글로벌 톱 NGO인 ‘옥스팜(Oxfam)’과 함께 ‘비즈니스 인권 리스크 대응을 위한 도전과 과제’라는 주제로 오는 9월 5일(목)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인권 실사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전략과 사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임팩트온은 컨퍼런스 개최에 앞서, 옥스팜의 기업인권관리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권실사체계 수립에 대한 옥스팜의 전략을 소개한다.

 Eline Achterberg(엘리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 인터뷰

엘리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Oxfam
엘리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Oxfam

엘리나 아흐터베르그는 파리정치대학 출신으로 인권 정책과 공급망 인권관리 부문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옥스팜 네덜란드의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을 맡고 있다. 또한 WBA(세계벤치마킹얼라이언스)의 인권 전문가 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과거 지속가능성 싱크탱크 Profundo에서 글로벌 공급망 인권 부문의 전문연구위원을 맡은 바 있다. 

Q. 최근 기업인권관리의 핵심으로 가장 떠오르는 이슈가 EU공급망실사지침(CSDDD)라고 볼 수 있다. CSDDD 준수를 위해 유념해야할 핵심 원칙에는 무엇이 있는가?

먼저 CSDDD는 유엔 기업과인권지침 및 OECD 기업 실사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수립되었기에, 해당 기준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유념해야할 부분은 CSDDD의 요구사항에 ‘권리보유자(Rightsholder)와의 직접적 관여 수행’이 내포되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CSDDD에 따르면, 기업은 인권 이슈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지, 권리보유자가 인권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피해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을 관리해야 한다.즉, 기업 자신이 행동을 잘하는 것을 넘어 권리보유자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한국 기업이 CSDDD의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라 할지라도, 유럽 기업의 주요 협력사일 경우 HRIA를 통해 권리보유자와의 직접적인 관여를 수행할 것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Q. 이번 포럼에서 ‘권리보유자 참여와 인권영향평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는데, 국내에서는 ‘권리보유자’와 ‘인권영향평가(Human Rights Impact Assessment⋅HRIA)’가 비교적 생소한 개념이다. 해당 개념에 대해서 소개해줄 수 있을까?

먼저 HRIA는 인권실사에 활용되는 도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권위험평가(Human Rights Risk Asessment)와 영향 평가를 혼동하는데, 인권위험평가는 거시적 차원에서 기업의 가치사슬 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보통 서면 차원의 데이터 분석이나 위험 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HRIA는 공급망 내 실제 공장, 제련소, 운송 허브 등의 시설에서 인권영향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노동자, 지역주민, 농민 등 기업 운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과 교류해 인권 문제의 근본적 원인, 인과관계, 리스크 심화 과정 등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HRIA를 통해 인권 문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후, 구체적인 인권 개선 행동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인권 실사의 순서라고 볼 수 있다.

권리보유자와 이해관계자 또한 쉽게 혼동되는 개념이다. 이해관계자는 기업의 운영 혹은 공급망 내 협력사의 운영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모든 주체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정부, NGO, 경쟁사, 지역주민 등 넓은 범위의 주체들이 포함된다.

권리보유자는 이해관계자보다 좁은 개념으로, 기업 및 협력사의 운영과정에서 권리가 직접적으로 침해되는 주체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업의 행동강령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노동자나 개발사업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지역 주민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EU공급망 실사지침은 환경에 대한 권리 또한 다루고 있는데, 예를 들면 하천오염으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식수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는 권리 침해로 여겨질 수 있다. 

Q. 기업과인권리소스센터(BHRRC)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인권관리에서 가장 약점을 보인 부분은 ‘이해관계자 관여’다. 때문에 ‘권리보유자 관여’ 또한 국내기업들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 기업이 효과적인 권리보유자 관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할까?

가장 첫 단계로는 기업과 연관된 권리보유자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권리보유자를 파악하기 위해 외부자문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경우, 기업과 협력사의 임직원 뿐만이 아니라 인력사무소에서 파견되는 일용직 노동자나, 현장에서 근로하는 불법이민노동자 등이 권리보유자에 포함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실제적으로 관여를 하기 위한 대상 군을 정하는 것이다. 편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남녀성비, 국적, 나이, 직급 등의 요소가 균형잡혀 있어야 한다.

세번째는 권리보유자와의 직접적인 교류다. 권리보유자의 진실된 답변을 이끌어내기위해 기업 혹은 협력사와 독립된 인원을 통해 교류를 수행하는 것이 추천된다. 또한 ▲익명성 보장 ▲보복방지 ▲인터뷰 장소 등의 요소를 고려해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류를 통해 답변을 받았다면, 이를 기반으로 조속히 행동계획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다시 권리보유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권리보유자가 자신의 목소리가 반영되었다고 느껴야 장기적으로 신뢰도 높은 실사체계를 운영할 수 있다.

Q. 일부 기업들은 노동자 등의 권리보유자와의 직접적 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비용, 시간 등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실제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부분에서 어떻게 기업을 설득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시간과 리소스를 투자해 권리보유자와의 직접적인 교류에 나서는 기업들이 인권실사나 평가에 있어서 좋은 결과를 낸다. 권리보유자와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해야만 인권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리보유자와 교류하지 않는다면, 인권 문제의 원인을 완전히 다르게 판단해 잘못된 해결책과 행동계획을 도출할 가능성이 크다. 즉,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권문제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초기에 리소스를 투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모든 공급망의 협력사 및 권리보유자와 교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때문에, 인권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고 이에 기반해 교류 대상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국제 인권 기준과도 부합하는 방식이다.

Q. 국내 기업들은 협력사의 권리보유자와 직접 교류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협력사 측에서 인권실사를 경영 간섭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은 해당 이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원청기업에서 유념할 점은 인권실사를 수행하기 전에 협력사와 신뢰를 쌓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인권실사를 수행할 예정이니, 감사관을 보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협력사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협력사를 조사 대상으로 여겨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인권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실제, 네덜란드의 슈퍼마켓체인 알버트 하인(Albert Heijn)의 경우 인권실사 과정에서 인권리스크 뿐만이 아니라, 협력사의 관심 이슈와 고충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인권개선 행동계획 수립과정에서 협력사 참여를 도모해 신뢰관계를 쌓고 있다.

다만,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 혹은 사회적 문제로 인해 권리보유자와 직접 교류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거시적 차원에서 환경 분석(Landscape Assessment)을 수행해 공급망이 소재한 지역과 산업 섹터의 리스크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지역 내 인권이나 산업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급망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Q. 현재 기업인권관리는 리스크 최소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인권개선을 통해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된 사례는 없는가? 

인권 리스크를 최소화 함으로써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 실제, 기업이 노동자에 대한 임금과 근로 여건을 개선했을 때 공급망의 생산성이 증대된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있다. 

코코아 공급망을 예로 들어보자면, 과거 식음료 산업계는 염가에 코코아를 수입했고 이에 많은 농민들이 생활임금(living wages)을 받지 못했다. 농민들은 재정적 문제로 인해 농장 인프라를 개선할 수 없었고, 이는 식물전염병 및 기후재난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올해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빈도 상승과 식물 전염병 창궐로 인해 글로벌 수확량이 절반가량 줄었고 이는 코코아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졌다. 만약 식음료업계가 생활임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했다면, 사전에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고 공급망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Q. 국내 기업의 중요 인권이슈(Salient Issues)를 살펴보면, 강제노동, 아동노동 등의 이슈는 자주 언급되고 있는 반면 생활임금 이슈는 비교적 관심도가 낮다. 공급망 인권 관리에 있어서 생활임금 이슈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생활임금은 다른 인권 문제를 촉발하는 근본적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생활임금은 빈곤을 초래하며, 빈곤으로 인해 수많은 인권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동노동의 경우,  생활임금을 받지 못하는 가구에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동을 노동현장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만약 노동자들이 생활임금을 수령해 생계를 유지하는데에 지장이 없다면, 아동들을 노동현장이 아니라 학교에 보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공급망 소재 지역의 실제임금과 생활임금의 격차가 클 록, 파생되는 여러  인권리스크의 발생 가능성 또한 높았다.

Q. 기업 입장에서는 생활임금 개선이 운영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인력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에서는 이러한 양상이 두드러질 것 같은데 유럽에서는 이에 대해 어떤 논의가 오갔는가?

유럽에서도 생활임금개선에 대해 논의할 때 산업계에서 가장 자주 제기하는 주장이다. 때문에 옥스팜을 포함해 많은 비영리단체들이 심층조사를 수행해 공급망 생활임금 개선에 드는 구체적 비용을 계산한 바 있다. 조사 결과, 기업들이 생각한 것보다 생활임금 개선에 드는 비용이 크게 높지 않았다. 

일례로 비영리단체 초콜릿 스코어카드가  초콜릿 산업의 생활임금 개선 비용을 조사한 결과, 코코아 공급망 농민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면 초콜릿 제품의 가격이 약 4센트(5.5원)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인건비 비중이 높은 제조업은 비용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생활임금 개선으로 인한 비용 상승과 리스크 최소화, 인재 유치, 생산성 증대 등의 긍정적 효과를 비교해봤을 때, 생활임금을 개선하는 것이 사업적으로도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  

Q. 글로벌 기업의 인권관리 부문 거버넌스를 살펴보면 최고인권책임자(CHRO)를 임명하거나, 인권 전담조직을 꾸리는 등 다양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유럽 선도 기업의 인권관리 거버넌스 사례를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인권관리 체계를 갖춘 선도기업의 경우, 지속가능경영부서 하위 조직으로 인권전담 팀이 존재하고, 최고책임자가 인권 부문을 총괄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책임자는 인권 혹은 리스크 관리 및 컴플라이언스 전문가일수도 있다. 

다만 유념해야할 부분은 인권 전담조직이 크거나 총괄 책임자가 있다고 해서 인권관리에서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유럽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 리들(Lidl), 알디(Aldi)와 같은 기업은 대규모 인권전담조직을 꾸렸고, 이를 통해 좋은 성과를 내긴 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의 경우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는 인권 부서가 조직 내에서 고립되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권 부서와 사업 부서와의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기업의 사업 이행과정에서 인권관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권 부서의 인권 관리 원칙이 구매 부서에 전달되지 않는다면, 구매 부서는 공급망에서 최대한 낮은 가격에 상품을 구매하는 것에 초점을 둘 것이고, 이는 인권 리스크 관리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최근에 보이는 트렌드는 어떠한 형태로 인권 거버넌스를 수립하는가보다는 인권 및 지속가능성 전문가들의 사업 부서 접근성을 늘리고, 부서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2024 옥스팜Ⅹ임팩트온 ESG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비즈니스 인권 리스크 대응을 위한 도전과 과제 (실천전략을 중심으로) 

일시: 2024년 9월 5일(목) 오후 2시~5시 

행사안내:  https://www.oxfam.or.kr/esg-conference-2024/?rurl=%2Fnews%2Fnotice%2F

신청페이지: 컨퍼런스 참가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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