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탈석탄 전략, 전환 크레딧과 ESS 도입 시급
- 필리핀과 싱가포르, 세계 최초 전환 크레딧 프로젝트 실행 - 아세안, ESS 배치 느려...탄소중립 실패 위기
동남아시아가 탈석탄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환 크레딧을 도입해야 한다고 로이터 통신은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전환 크레딧은 석탄화력 발전소의 운영자가 발전소 수명이 끝나기 전에 공장을 폐쇄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사용되는 탄소 금융의 한 형태다.
싱가포르의 국영 투자기업 테마섹(Temasek)의 탈탄소화 투자 플랫폼인 젠제로(GenZero)의 정책 및 분석 책임자인 안샤리 라만은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크레딧이 빠르게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지역에 위치한 석탄화력발전소는 새롭게 지어진 곳이 많으므로, 조기 폐쇄하려면 전환 크레딧을 통한 추가 수익원 마련이 필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동남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석탄화력발전소가 네 번째로 많으며, 평균 연령이 15년이 안 되는 젊은 발전소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필리핀과 싱가포르, 세계 최초 전환 크레딧 프로젝트 실행
아시아의 탈석탄이 가능해지려면, 혁신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비즈니스스쿨의 마이크 윌킨스 기후 금융⋅투자 센터 소장은 "세계 배출량의 절반은 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이 지역 배출량의 약 80%는 화석 연료 발전에서 발생한다"라며 “파리협정에 따른 배출량 감축 목표를 충족하려면 석탄화력발전에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혁신 중 하나는 전환 크레딧이다. 청정에너지 및 산업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인 하우덴(Howden)의 탄소보험 책임자 찰리 풀은 “석탄화력발전소를 만드는 데 큰 비용이 들고 자금 조달은 30년에서 50년 정도에 걸쳐 투자자에게 상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공장을 일찍 폐쇄하면 투자자는 막대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자가 손실을 상쇄할 수 있는 방편으로 전환 크레딧이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전환 크레딧의 시범 프로젝트가 현재 필리핀에서 진행되고 있다. 필리핀 대기업 아얄라의 에너지 사업부인 아센(ACEN)은 싱가포르의 젠제로, 케펠 자산운용과 함께 세계 최초로 전환 크레딧을 생산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필리핀 바탕가스시의 한 공장을 전력 구매 계약이 만료되는 2040년에서 10년 앞당기는 대신 전환 크레딧 발행하는 프로젝트다. 조기 폐쇄는 1900만톤 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회피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바탕가스 프로젝트가 생산한 크레딧의 구매자는 싱가포르 탄소세 규정에 따라 과세 대상 배출량의 5%를 상쇄할 수 있게 된다.
전환 크레딧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전환 크레딧이 싱가포르를 넘어 국제적으로 통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윌킨스 소장은 “싱가포르는 규제를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책자금을 크게 투자했다”라며 싱가포르가 전환 크레딧 시장의 떠오르는 허브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세계의 다른 지역과 연계해야만 전환 크레딧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싱가포르 단독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아세안, ESS 배치 느려...탄소중립 실패 위기
동남아시아의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저장시스템(ESS)의 배치 속도에 달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에너지센터는 지난 30일 라오스에서 열린 제42회 ASEAN 에너지 장관 회의(AMEM)에서 ‘아세안 에너지 전망’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아세안은 동남아가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지만, 에너지 저장용량의 제한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설치용량이 2025년까지 전체 전력용량의 39.6%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아세안의 목표인 35%를 넘어선 수치다.
문제는 생산된 전력이 실제 소비전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세안은 재생가능전력이 2025년말까지 전체 소비 전력의 19%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아세안의 목표인 23%에 미치지 못한다.
전기 수요가 늘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ESS를 빠르게 확대 배치하여 재생가능 전력의 생산과 소비 수준을 맞춰야 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특히, 산업과 운송 부문에서 전력을 주로 소비하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과 같은 국가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처럼 가정용 소비전력의 비중이 큰 국가에서도 전기화가 진행되어 동남아의 전력 수요가 2050년이 되면 2.6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세안은 재생에너지 용량은 늘지만, 실제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이 현상이 이어진다면 에너지 집약도가 탄소중립 경로대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세안은 2022년까지 2005년 기준으로 에너지 집약도가 24.5% 떨어졌으나, 2025년까지 32%를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전했다. 재생가능 전력이 수요를 맞추지 못하면 화석연료 수입이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보고서는 동남아가 2027년까지 LNG 순수입국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