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025 국내기업 ESG 분위기는?...조직, 예산 축소, CSRD 및 CSDDD 대응에만 집중

- 국내 주요기업 ESG 담당자 5인 익명 인터뷰 - 대기업, EU 규제 대응에만 자원 대부분 투입 - 중소·중견, ESG 조직·예산 줄줄이 축소…공시 법제화 서둘러야  - ESG 타이틀 떼고, 일상 경영화…부서별 맞춤 교육 필요

2025-01-14     송준호 editor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은 국내 기업의 ESG 침체를 앞당기고 있는 것일까.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국내 주요 기업의 ESG 담당자 5인은 공통적으로 "올해 한국 기업의 ESG 경영이 ‘침체기’를 맞았다"는 목소리를 전해왔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ESG 실무자 A씨는 올해 지속가능성 관련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경기와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 신규 ESG 프로젝트를 발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필수적인 규제 대응을 위주로 리소스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ChatGPT 활용해 생성한 이미지/임팩트온

 

대기업, EU 규제 대응에만 자원 대부분 투입

대기업들은 올해 해외발 ESG 규제 대응에 제한된 리소스를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 대응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A씨는 "2026년부터 시행되는 CSRD 공시 준비가 최우선 과제"라며 "국내 상황이 어려운 만큼 필수적인 규제 대응 위주로 리소스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최근 몇 년간 예산을 최대로 축소하는 작업이 이뤄져 올해는 더 이상 줄일 곳이 없어 동결된 것”이라며, “해외 규제 대응 외에 추가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여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반도체보다는 업황이 상대적으로 좋은 제조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ESG 실무자 B씨도 “CSRD와 CSDDD 대응이 올해 주요 업무가 될 예정이지만, 업황이 개선되면서 신규 프로젝트들도 제안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B씨는 “국내 기업들이 어려운 시장 상황과 미국 트럼프 후보의 당선, 유럽 ESG 규제의 간소화 조치 등으로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노력을 조금 덜해도 된다는 인식이 도는 듯 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해외 고객사들과 미팅을 해보면, 경쟁사들 중 특히 중국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부문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라며 “가격 경쟁력을 가진 중국이 ESG도 잘하면 우리 기업은 미래에 생존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중소·중견, ESG 조직·예산 줄줄이 축소…공시 법제화 서둘러야 

중소⋅중견기업 담당자들은 유지라도 할 수 있는 대기업이 부럽다는 입장이다. 담당자들은 부서와 예산이 축소되어 하던 것도 못 하게 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무자 C씨와 D씨는 “경영진이 ESG의 중요성을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중견기업 ESG 실무자 C씨는 "올해 새로 추진하려던 프로젝트들이 무산됐다"며 "기존 예산마저 삭감되고 있어 작년과 동일한 수준의 활동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D씨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대한 예산은 이미 최소화되어 동결됐지만, 삭감할 부분을 추가로 찾기 위해 사용현황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라며 “ESG 조직도 계속 축소되고 있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중견기업 ESG 실무자 D씨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제작 비용도 줄이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있으며,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나 과학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BTi)와 같은 글로벌 이니셔티브들에 참여하기 위한 예산들도 모두 삭감됐다”고 말했다. 그는 “ESG평가 대응 외에는 돈이 들지 않는 프로젝트들만 기획하여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ESG 평가 점수가 깎여도 벌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대응해야 하냐는 말을 듣는다”고 푸념했다. 

담당자들은 명확한 규제와 의무화 없이는 실질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담당자들은 관련 규제 중 특히 지속가능성 의무 공시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씨는 “기업이 움직이려면 법과 같은 강제력 있는 외부의 요구가 필수적”이라며 “국내 규제에 주로 대응하는 중견기업이 ESG 경영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자꾸 늦어지는 의무 공시가 더 이상 지연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D씨도 “교육이나 내재화로 ESG경영이 자연스레 정착되는 게 가장 좋지만, 중소⋅중견 기업에서는 ESG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얘기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며 “현 시점에서는 회사에 큰 리스크로 작용할 법 마련이 우선”이라고 같은 의견을 냈다.

공시 의무화 시점은 2025년에서 2026년 이후로 이미 한 차례 미뤄졌으며, 로드맵도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올해 상반기에 ESG 공시 도입 일정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ESG 타이틀 떼고, 일상 경영화…부서별 맞춤 교육 필요

경영환경이 어려울수록 ESG를 기업 운영에 내재화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지속가능성 솔루션 제공 기업에서 일하는 E씨는 ESG가 비즈니스와 통합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ESG는 제품 품질 관리와 같은 일상의 경영활동의 한 요소로 업무에 녹아들어야 한다"며 "중점 KPI를 매달 경영진이 점검하고, 이를 목표로 잡아 달성 비율을 관리하는 등 재무 데이터처럼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씨는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씨는 “EU의 CSDDD, 배터리여권 등 여러 규제들이 공급망 데이터를 관리하라고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라며 “n차 협력사를 포함한 공급망 전체의 리스크를 투명하게 파악하고 적시에 대응하기 위한 플랫폼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ESG 데이터 관리가 정보 공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E씨는 "단순히 데이터를 공시하는 것은 ESG 1.0도 아닌 0.1 수준"이라며 "왜 데이터를 수집하는지, 어떤 맥락에서 필요한지를 이해하고 실제 액션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ESG 교육도 조직별 맞춤형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E씨는 "리더가 속한 조직의 특성에 따라 교육 내용을 달리해야 한다"며 "구매 담당 임원에게는 공급망 리스크 관리와 협력사 역량 강화를, 인사 임원에게는 인적 자본 관리를, 최고기술경영자(CTO)에게는 제품 환경성과 전과정평가(LCA) 관련 규제를 교육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CEO나 CSO에게는 ESG 경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짚고, 경영 관점에서 ESG를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무자 B씨도 해외 규제 대응과 더불어 함께 검토해야 할 사항들을 제시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빠르면 4~5년 전에 탄소중립 목표를 세웠는데, 지금은 그때와 산업과 시장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목표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외에도 ESG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그린워싱 대응도 중요한 과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