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본트래커, 석유공룡 30곳 파리협약 기준 미달...평가 등급 공개

2025-04-10     송준호 editor

세계 주요 석유·가스 기업들이 파리 기후협약에서 세운 목표 달성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글로벌 싱크탱크 카본트래커가 8일(현지시각) 발표한 '파리협정 불일치 III(Paris Maligned III)'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 30개 석유·가스 생산업체 중 파리협약 목표에 근접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일부 기업은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본 트래커가 발표한 파리협정 불일치 보고서/카본 트래커

 

스페인 렙솔 D등급 최상위...영국 BP는 생산감축 포기로 F등급 추락

카본트래커는 ▲투자 포트폴리오 ▲신규 프로젝트 ▲생산 계획 ▲온실가스 감축 목표 ▲메탄 배출 목표 ▲경영진 보수 정책의 6개 지표를 기준으로 석유·가스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을 평가했다. 평가 결과는 A부터 H까지 8단계로 구분되는데,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은 기업은 스페인의 렙솔로 D등급을 받는 데 그쳤다. 

보고서는 어떤 기업도 6개 지표 중 2개 이상에서 높은 점수(3점 또는 4점)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BP는 지난해 평가에서 상위권을 기록했으나, 석유·가스 생산 감축 목표를 포기하면서 F등급으로 추락했다. 멕시코 페멕스(PEMEX)와 알제리 소나트라크(Sonatrach), 쿠웨이트 KPC, 미국 코노코필립스 등 4개 기업은 가장 낮은 H등급을 받았다.

유럽 기반 기업들이 상위 10위 중 7개를 차지했지만, BP, 에니(Eni), 에퀴노르(Equinor), 셸(Shell), 토탈에너지(TotalEnergies) 등 유럽 주요 기업들의 점수는 모두 하락했다.

신규 평가 대상에 포함된 영국 하버 에너지(Harbour Energy)는 E등급으로 비교적 양호한 평가를 받았으나, 미국 셰일 업체 오빈티브(Ovintiv)는 G등급으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보고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6개 지표에서 일관된 강점을 보이지 않는다"면서 "선코어(Suncor)와 데본(Devon) 같은 기업들은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를 승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여전히 기후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석유 공룡들에 대한 카본 트래커의 평가 결과/카본 트래커

 

대형 LNG 투자, 파리협약 목표와 충돌...투자자에게 '레드 플래그'

카본트래커는 정량적 분석을 통해 거의 모든 석유·가스 기업이 향후 몇 년간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성장 계획은 파리협약의 1.5°C 목표와 충돌하며, 많은 계획이 2°C 이하 시나리오와도 양립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생산 계획을 검토한 결과, 렙솔과 하버 에너지만이 생산량 감축을 계획하고 있었다. 렙솔은 2023년 기준으로 2030년까지 약 4% 생산량 감소를, 하버 에너지는 2025~2027년 동안 약 5%의 감소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이마저도 완만한 감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최근 승인된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들이 기업들의 장기적 기후 목표 불일치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많은 신규 승인 프로젝트 중 가장 자본 집약적인 것은 LNG 개발 사업"이라며 "이는 글로벌 LNG 공급 증가로 인한 경제적 좌초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려할 만한 추세"라고 경고했다.

리치 콜렛-화이트 카본트래커 애널리스트는 "우리의 분석은 투자자, 금융기관, 정책 입안자들이 기업들의 실제 행동을 판단할 수 있는 현실 점검 기준을 제공한다"며 "일부 정치와 시장의 역풍에도 기후 위험에 대한 투자자 참여는 특히 유럽에서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기후 목표에 부합하는 투자를 표방하는 자산운용사와 금융기관들에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배출 목표를 강화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자금 조달이 정당화되는지 재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은행과 보험사들은 신뢰할 수 있는 독립적 에너지 및 기후 시나리오에 부합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자금 조달 및 인수 결정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