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EPA, 차량 온실가스 규제근거 철회 추진...2007년 대법원 판례 무력화
미 트럼프 정부의 환경보호청(이하 EPA)이 또다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대폭 해제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로이터가 24일(현지시각) 입수한 제안 요약본에 따르면, EPA는 앞으로 며칠 안에 경형·중형·대형 차량 및 엔진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전면 폐지할 계획이다. 핵심은 온실가스 규제를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와 과학적 판단을 모두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환경보호청(EPA)은 "청정대기법에 따라 EPA가 온실가스 배출 규제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으며, 신차와 엔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공중보건이나 복지를 위협한다는 기존 결론을 취소하겠다"는 방침을 제안서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 규제 근거인 ‘위해성 판단’ 자체를 뒤집기로
이번 규제 철폐의 이면에는 EPA와 청정대기법의 과거 역사적 배경이 담겨져있다.
미국의 대기오염과 공중보건 전체를 총괄하는 연방법인 청정대기법(Clean Air Act)는 1955년 제정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듭하며 다양한 규제를 도입해왔다.
1970년 개정으로 국가환경대기질기준(NAAQS)과 주(州) 실행 계획(State Implementation Plans) 제도를 도입하며,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와 신·개조 시설에 대한 새로운 배출 기준을 설정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이 법은 이후 1990년 개정에서 공기오염 물질 목록을 확대하고 모터 차량 배출 규제를 강화했으며, 캘리포니아는 연방 기준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채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EPA가 온실가스를 규제할 법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받은 것은 2007년 ‘매사추세츠 대 EPA’ 사건이었다. 당시 매사추세츠 등 여러 주와 환경단체들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청정대기법에 따라 규제해야 한다”며 EP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온실가스가 청정대기법이 정의한 ‘공기오염 물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EPA가 새 자동차와 엔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공중보건과 복지를 위협하는지를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 판결을 기반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을 발표해 자동차 배출가스와 각종 온실가스 규제를 도입했다. 이는 여러 소송에서 유지돼 이후 배출 규제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환경보호청(EPA)은 이번 초안에서 이 '위해성 판단' 자체를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규제 폐지 시 파장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타격 불가피
EPA는 초안에서 “EPA가 과학적 기록을 비합리적으로 분석했고 이후 연구가 해당 판단의 신뢰성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과거의 과학적 결론을 철회하고, 청정대기법이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온실가스 규제 권한을 EPA에 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제안서 요약본은 또한 배기가스 기준을 폐지하는 근거로 “배출을 줄이는 데 필요한 기술이 오히려 공중보건과 복지에 더 큰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고 로이터는 밝혔다. 앞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 행정부는 신차 배기가스 기준으로 인해 차량 가격은 상승하지만, (전기차 등으로 인한) 연료비 절감을 감안하면 소비자에게 장기적으로 비용을 절약해 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규제 폐지가 현실화되면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현행 배출 기준은 2026년 대비 2032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49%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30~2032년 판매 차량의 35~56%를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운송 부문은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9%를 차지하는 만큼, 차량 배출 기준이 사라지면 감축 목표는 사실상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전방위적 규제 해체 작업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구매 시 제공되던 최대 7500달러(약 1030만원)의 신규·중고차 세액공제는 오는 9월 30일 종료되며, 주정부의 충전소 구축 예산도 동결됐다. 아울러 최근 통과된 법률에 따라 자동차 제조사들은 2022년형 이후 연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캘리포니아주의 전기차 판매 의무화와 디젤 엔진 규제 등을 무효화하는 3건의 의회 결의안에도 서명했다. 캘리포니아의 2035년 내내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계획은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11개 주가 채택했으며, 현재 관련 법적 대응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