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후 특사, 기업에 탄소배출권 판매… COP 참석자들 "탄소배출권 답 아냐”
미국, 개발도상국의 화석연료 사용 줄이려 기업에게 탄소배출권을 판매해 기금 충당할 계획
존 케리 미국 기후 특사는 지난 9일(현지시각)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기후정상회담 연설에서,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하고 기업의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는 자발적 시장을 제안했다.
존 케리 기후 특사는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기업은 탄소를 감축할 방법을 찾고 있다”라며 “이번 계획은 민간 부문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인책인 셈”이라고 말했다. 케리 특사는 자선사업과 기업 등 민간자금으로 개발도상국의 청정에너지 개발을 지원하는 기금 1000억달러(약 133조 원)를 조성해 온실가스를 13~23억톤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 연구 및 컨설팅 회사인 클라이밋 어드바이저(Climate Advisers)는 9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에너지 전환 가속화(Energy Transition Accelerator)’라고 불리는 케리 특사의 상쇄 프로그램이 2030년까지 7700만~1390억달러(약 1024억~185조원)를 동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충분한 수의 기업이 참여하고 개발도상국이 앞장서고 있다는 가정 아래서 나온 수치다.
그러나 이 계획은 자금 조달 방식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은 개발도상국의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기금을 조성하기보다 기업에게 탄소배출권을 판매해 기금을 충당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이 석탄화력 발전소와 같은 화석연료 인프라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게 민간기업 등이 재원을 조성하면, 민간이 탄소를 감축하는데 기여한 만큼 탄소배출권을 발급할 예정이다.
COP27의 의제처럼 부유한 국가가 기후로 인해 손해를 본 개발도상국에게 보상 등의 제도를 통해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은 파리 기후 협정 때부터 언급되어 왔지만, 실제 기금 등 자금 측면에서 실현된 것은 거의 없다.
현재 경제적 혼란, 높은 인플레이션 및 치솟는 에너지 가격에 직면한 많은 국가는 다른 나라의 기후 프로젝트에 대한 납세자 자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케리 특사 팀은 또한 기후 원조에 수십억 달러를 확보하는 것이 미국 의회에서 힘든 싸움이라는 걸 알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국가 기후 고문 지나 매카시(Gina McCarthy)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약 110억달러(약 14조원)의 자금 지원 약속을 이행하려면 행정부가 민간 부문을 활용하는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케리 특사는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 및 베조스 어스 펀드(Bezos Earth Fund)와 협력하고 있으며,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스탠다드 차타드 뱅크(Standard Chartered Bank), 펩시코(PepsiCo)가 이미 이 계획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석연료 기업은 계획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COP27 참석자들의 반응, ‘탄소배출권은 답 아니다'
기후 위기에 약한 개발도상국에 더 많은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지만, COP27의 일부 참여자와 전문가들은 케리 특사의 계획에 반발했다.
그들은 탄소배출을 상쇄한다는 개념이 ‘그린워싱’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탄소배출권 상쇄를 구매하도록 허용되면 배출량을 줄이려는 의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말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8일(현지시각) “탄소배출권 시장에 기준, 규제 및 엄격성이 부재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라며 “탄소 크레딧과 같은 노력보다는 실제 배출량 감축을 통해 도달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재생에너지는 확대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비영리단체 ‘참여 과학자 연합(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의 기후 및 에너지 프로그램의 정책 이사이자 수석 경제학자인 레이첼 클리투스(Rachel Cleetus)는 “이 제안이 개발도상국에게 필요한 ‘실제 공공 재정’을 대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탄소배출권은 이미 산불, 홍수 등 기후 손실과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세계에서 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소득 및 중간 소득 국가의 기업이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오염을 허용할 위험이 있는 의심스러운 탄소 상쇄 계획보다, 더 부유한 국가의 보조금을 기반으로 한 공공 재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는 자발적 시장을 추진하는 건 미국만이 아니다. 최근 아프리카 탄소 시장 이니셔티브(African Carbon Markets Initiative)가 출범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2030년까지 연간 3억 개의 탄소배출권을 생성하고, 60억달러(약 8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UN 기후 챔피언의 아프리카 특별 고문인 보골로 케네웬도(Bogolo Kenewendo)는 파이낸셜 타임스를 통해 “이 계획이 화석연료 회사에 생명줄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지역 사회가 세계의 생태계를 유지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프리카 공동체와 정부인 자산 소유자를 위한 가치를 여는 것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