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당선되어도 탄소정책 안 바뀌는 두 가지 이유
미국 대선의 결과가 탄소정책의 노선을 바꿀지 여부가 산업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후보가 유리해진 대선판에서, 그가 재집권하면 파리 기후협정을 또 탈퇴하겠다는 발언을 하는 등 기후 정책의 퇴보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두 가지 이유로 현 행정부에서 만들어진 탄소정책 노선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판 탄소국경조정제도 마련 중…중국 견제 위해 공화당에서도 발의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첫 번째 이유로 지목됐다. 탄소정책이 보호무역주의와 연계되면서 무역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전된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탄소 정책은 탄소국경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 기후특사이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설계한 존 포데스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포데스타 기후 특사는 “글로벌 무역 시스템은 거래 상품에 내재된 탄소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며 “이를 검토하여 정책 프레임워크로 구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데스타 기후특사는 지난 4월 글로벌 상거래와 제조업에서 탄소 감축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무역 태스크포스를 창설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탄소국경세는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정책을 먼저 내고 전 세계 제도적 환경을 선도하고 있다. 포데스타 기후 특사에 따르면,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검토하는 이유는 CBAM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탄소중립 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으로 확인된다.
그는 “EU가 정책을 조금 더 빠르게 실행했을 뿐이며, 우리가 CBAM에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EU와 미국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중국)에 산업 기반을 그냥 내주지 않겠다라는 동일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다고 해도, 탄소국경세는 환경이 아닌 무역 규제로 인식되기에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에서도 탄소국경세에 대한 정책 발의가 발견되고 있다.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과 빌 캐시디는 지난해 다른 국가의 탄소집약적 상품을 규제하는 ‘해외오염수수료법’을 도입하는 법안을 제안한 바 있다. 당시 캐시디 의원은 “미국 산업이 제조하는 제품의 낮은 탄소 집약도가 중국을 고립하고 명확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어야 한다”며 법안 도입의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뿔난 연금 수급자들, 정치인은 ESG 투자에서 손 떼라
정치인이 ESG 관련 투자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에서 커지고 있는 현상이 두 번째 이유로 거론된다. 목소리를 내는 주체는 연금 수급자들이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공화당이 주도하는 안티ESG 움직임이 금융업계에 너무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2023년 총 165개의 안티ESG법안이 발의됐으며, 이 중 19개가 통과됐다. 올해는 76개 법안이 발의됐다.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이런 흐름이 강화되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SG 투자를 주창하던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소송을 피하고자 넷제로투자자연합(NZAOA)과 같은 글로벌 이니셔티브에서 잇달아 탈퇴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 래리핑크도 “ESG라는 용어가 너무 정치화되어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ESG투자는 거대 기관투자자인 연기금들을 중심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58개 연기금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ESG가 일시적으로는 후퇴했으나 장기적으로 투자의 핵심이 된다”는 의견이 다수로 확인됐다.
연기금이 정치적 압력에도 ESG 투자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의 고객인 연금 수급자들이 연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 수급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창설된 비영리단체 ‘번영과 안전한 은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sperity and a Secure Retirement)’은 “미국인의 투자 결정에 정치가 낄 자리는 없다”라며 “우리는 ESG를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수탁자 의무가 있는 투자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찬성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회장이자 은퇴한 소방관인 팀 힐은 FT에 “우리는 좌파든 우파든 정치인이 신탁 의무에 간섭하여 정치적, 사회적 의제를 수행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연기금을 두고 “현재의 정치적 또는 사회적 의제를 실행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돈의 항아리로 보는 것에 대해 노동 단체와 연금 수급자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번영과 안전한 은퇴를 위한 동맹은 8000억 달러(약 1112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건설 노조 연합, 미국 최대의 전기 기술자 노조 등 13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블랙록도 이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블랙록은 성명을 통해 “이 단체를 지원하게 되어 자랑스럽다”며 “수탁자로서 우리의 사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재정적인 안정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