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투자자들, 올 상반기에만 2조 넘게 뺐다..."팔리지도 않는데 불까지"

2024-08-09     이재영 editor

전기차 산업에 악재가 거듭되고 있다.      

7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전기차 시장 둔화와 트럼프의 재집권 우려로 올해 7월 31일까지 글로벌 전기차 관련 펀드에서 총 16억달러(약 2조2054억원)가 순유출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인출된 전체 환매액을 초과하는 수치다.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 픽사베이 

 

전기차 투자는 반(反)트럼프 투자…

버핏도 BYD 지분 대거 정리

홍콩 자산운용사 로베코(Robeco) 포트폴리어 매니저 비키 치(Vicki Chi)는 “전기차 투자는 반(反)트럼프 투자가 되었다”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전기차 산업에 대한 지원이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도로에 전기차는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수익을 내는 회사는 거의 없으며 마진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회사 또한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트럼프는 자신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를 의식한 듯 3일(현지시각) 애틀랜타 유세에서 “나는 자동차 산업의 일부인 전기차를 지지한다”며 전기차를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차 등과 동등하게 취급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전기차 캐즘에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EPFR은 중국 전기차 관련 펀드 올해 상반기 환매액이 약 5억달러(약 6891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한국, 일본의 전기차 관련 펀드들도 2분기 순유출을 기록했다.

EV 펀드 유출 추이 / EPFR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또한 전기차 투자 규모를 축소했다. 블룸버그는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2년 전 20% 이상을 보유했던 중국 전기차업체 BYD의 보유 지분을 지난 7월 5% 미만으로 줄였다고 보도했다.  

BYD는 2023년 4분기 세계 최대 전기차업체 테슬라를 꺾고 글로벌 판매량 1위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순이익 300억위안(약 5조7615억원)을 기록, 전년 166억위안(약 3조1880억원) 대비 약 두 배 가까운 성과를 달성한 바 있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주가는 별개… 수익성 없으면 ‘꽝’

월가 또한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전기차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JP모건은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한 세금 공제 혜택이 철회될 수 있으며, 연방정부 차원의 전기차 인프라 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당선으로 전기차 보조금이 철회된다면 수익성에 어느 정도 타격을 입겠지만, 경쟁사들은 더욱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자, 자동차 기업들은 몸사리기에 들어갔다. 올해 2월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은 2025년까지 전체 자동차 판매 비중의 5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5년 연기한다고 밝혔으며, 포드자동차 또한 2026년까지 전기차 부문 이익률을 8%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취소했다. 7월에는 폭스바겐의 포르쉐가 2030년 신차 판매의 8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철회했으며, 현대차·기아 또한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올인 전략을 철회하고 하이브리드차 보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래도 전기차 전환이 멈춰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서치업체 블룸버그NEF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전기차 연간 판매량이 지난해 1390만대에서 2027년 3000만대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현재 경제성 있는 기술만으로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할 경우의 시나리오를 반영한 전망치다.

그러나 전기차 확대가 반드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제니슨 어소시에이츠(Jennison Associates) 포트폴리오 매니저 라지 샨트(Raj Shant)는 “소비자 수요나 시장 점유율 증대는 수익 보장과 거리가 멀다”며 전기차 시장이 성장해도 수익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주가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니슨 어소시에이츠는 테슬라 초기 투자자로 많은 수익을 올린 바 있다.

한편 지난 5일 인천 대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으로 국내에서는 SNS를 중심으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주차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두고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캐즘’이 더 심각해지는 게 아니냐 우려하면서도 문제의 전기차 배터리가 중국산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K-배터리에 수요가 몰리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