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 부는 그린래시 바람…디젤차 운행 제한 연기 결정
- 지지측, 정부 구성 협상 카드 사용…전환 지원 없는 규제 강화 안 돼 - 녹색당, 연기 반대…EU에 281억원 벌금 낼 수 있어
유럽연합(EU)의 수도 벨기에 브뤼셀이 디젤차량 운행 금지 계획을 2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블룸버그는 5일(현지시각) 전했다.
브뤼셀의 연기 조치는 유럽 대륙 전반에서 불고 있는 그린래시 바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린래시란 기후변화 대응에 반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유럽연합은 그린래시의 영향으로 최근 EU 삼림벌채규정(EUDR)의 시행일을 12개월 연기하기도 했다.
유로5 적용, 2025년에서 2027년으로 연기
브뤼셀 의회는 4일(현지시각) 2025년부터 저배출지역(Low Emission Zone, LEZ)에서 유로5 기준을 만족하지 않는 디젤 차량들의 운행을 금지하는 계획을 2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브뤼셀은 유럽연합의 본부가 위치한 도시인만큼 정치적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로5가 적용되면 브뤼셀에 등록된 약 60만 대의 승용차와 15만 대의 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현지 언론 브뤼셀 타임스는 지난 18일(현지시각) 전했다.
브뤼셀의 LEZ는 161㎢에 달하며, 300개가량의 도로 표지판으로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유럽의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5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차량이 이 지역에서 운행하면 350유로(약 52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은 3개월에 최대 1회로 제한된다. 새로 적용되는 유로5에 해당하는 차량이 규정을 처음 위반하면 경고로 끝나고, 두 번째 위반부터 벌금을 부과받게 된다.
이 도시는 도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18년부터 저배출지역을 설정하고 있다. 브뤼셀은 2030년부터 디젤 차량, 2035년부터 가솔린 차량의 단계적 폐지를 계획하고 있다. LEZ는 해당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초석으로 활용되고 있다.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는 숫자를 더해갈수록 더 엄격한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담고 있다. 유로5는 2011년과 2015년 사이에 처음 등록된 차량에 적용되는 배출가스 기준이다. 유로6는 2014년 이후에 제조된 차량에 적용된다. 유로7은 2025년부터 승용차 및 경상용차에, 2027년부터 대형 상용차에 적용된다.
지지측, 정부 구성 협상 카드 사용…전환 지원 없는 규제 강화 안 돼
이 같은 결정은 유럽 전역에서 기후변화 대응 법안들이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번 연기 결정은 벨기에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이뤄졌으며, 지역 정치의 압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연기 결정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3개 정당이 주도했으며,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녹색당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브뤼셀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어를 모두 공용어로 사용하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지방정부들이 모여 언어권 공동체 정부도 구성하고 있다. 벨기에 중앙정부는 국회와 지방의회, 언어권 의회의 동의를 모두 받아야 총리를 선출하고 내각을 꾸릴 수 있기에, EU의 구성과 운영에 가장 닮은 국가로 평가받는다.
프랑스어권 정당들은 정부 구성 협상 카드로 유로6 도입 연기안을 내건 것으로 확인된다. 벨기에는 지난 6월 연방 선거를 치른 이후 새 정부 구성에 난항을 겪어왔다. 연립정부 구성 협상단장을 맡았던 네덜란드어 사용 정당인 새플레미시연대(N-VA) 바르트 더 베버르 대표는 지난 8월 5개 정당과의 연정 구성에 실패하고 사임했다.
연기를 지지하는 정당들은 코로나19와 에너지 위기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차량을 교체할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약 3만5000명의 브뤼셀 주민들에게 전환 준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벨기에 프랑스어권의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Les Engages) 소속의 크리스토프 드 뵈켈라에 의원은 “저배출지역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시민들에게 충분히 전환할 수 있는 지원을 제공하지 못했기에 적응할 시간을 더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녹색당, 연기 반대…EU에 281억원 벌금 낼 수 있어
녹색당은 디젤차량의 지속적인 운행이 브뤼셀의 공기질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수준의 벌금을 EU에 내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브뤼셀 기후 전환 및 환경부 장관인 알랭 마롱은 저배출지역 기준에 대한 강화 일정이 2년 연기되면, 2030년까지 추가로 188킬로톤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배출하게 된다고 브뤼셀 타임스를 통해 전했다.
이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7% 줄여야 하는 EU의 기준에 못 미치는 43% 수준이다. 마롱 장관은 2030년 부담 분담 방식에 따라 1900만유로(약 281억원)의 벌금을 내야 할 것으로 계산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