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기후 약속 무색…말레이 석유화학공장에 1조원 대출한 美수출입은행
- 바이든의 투자 중단 선언은 유명무실…쌓여가는 화석연료 지원금
미국 수출입은행이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석유화학 공장 건설 프로젝트에 6억9000만달러(약 9358억원) 규모의 대출을 승인했다고 해외 미디어 블룸버그는 11일(현지시각) 전했다.
주요 환경단체들은 수출입 은행의 대출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한 약속에 반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탄소배출량이 많은 해외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다른 33개국과 함께 이런 지원을 중단하기로 약속하는 '청정에너지 전환 파트너십(CETP)'에 서명한 바 있다.
수출입은행, 말레이 석유공장에 1조원 대출
수출입 은행의 대출금은 말레이시아 남주 조호루주에 위치한 펜게랑 에너지 단지에 항공유, 디젤 등 다양한 석유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해당 공장은 셰브론, 에퀴노르, 태국 국영회사인 PTT와 같은 거대 에너지 기업들이 공급과 인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장은 연간 650만톤의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용량을 갖추게 된다. 생산 제품은 연간 72만5000톤의 항공유, 플라스틱의 원료로 사용되는 89만4000톤의 경질 나프타, 43만2000톤의 저유황 연료유 등으로 구성됐다.
수출입 은행은 이번 투자로 미국의 수출업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함과 동시에 탄소배출을 방지할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장인 레타 조 루이스는 “이 거래는 미국과 말레이시아가 글로벌 경제의 탈탄소화에 대한 의지를 강화하고 글로벌 에너지원을 다각화함으로 에너지 안보를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수혜기업으로는 미국의 우주항공 및 에너지·환경 분야 기술 전문 기업인 하니웰 UOP가 지목됐다. 하니웰 UOP는 이번 프로젝트의 설계를 맡았고, 해당 공장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수출입은행은 하니웰의 기술을 통해 줄일 수 있는 탄소 배출량이 30%가량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니웰은 2035년 탄소중립 목표를 발표한 바 있으며, 국내에서는 지난달 삼성 E&A가 하니웰과 발전소에 탄소포집 설비의 공동 구축에 관한 협력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의 투자 중단 선언은 유명무실…쌓여가는 화석연료 지원금
수출입은행은 이번 대출 승인으로 2023년 5월 이후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약 22억달러(약 3조원)를 지원하게 된 것으로 집계됐다. 블룸버그는 이번 대출 승인을 발판으로 새로운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이 계속될 수 있다고 전했다.
국제지속가능발전연구소(IISD)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에만 10개의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32억달러(약 4조3000억원)를 지원했다. 수출입은행은 바레인에서 300개의 석유 및 가스 유정을 개발하기 위해 5억달러(약6700억원)를 지원하는 등 전체 투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이라크의 가스 발전소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2억9700만달러(약 4027억원)의 대출도 승인했다.
은행은 이달 가이아나의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6억4600만달러(약 8760억원) 규모의 대출을 승인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이아나에서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이 3개의 광구에서 55만배럴이 넘는 원유를 생산 중이며 2027년말까지 120만배럴 이상으로 생산량을 확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환경단체들은 수출입은행 헌장에 따른 행정부의 권한을 이용하여 화석연료 대출 신청을 거부하도록 촉구했다. 글로벌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의 에릭 피카 대표는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 공약에 진정성이 있음을 증명하려면, 행정부는 수출입 은행이 오염 사업을 지원하는 것을 막는 즉각적이고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