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가드, 대리투표 두 배 확대…ESG 선택권 투자자에게 넘긴다

- 수익 중심 옵션 신설…ESG는 투자자가 직접 선택 - 대형 운용사들 잇단 의결권 이양...ESG 논란 피하기? 

2024-11-20     송준호 editor

세계 최대 뮤추얼펀드 운용사 뱅가드가 ESG 관련 의결권 행사 방식을 투자자가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대리 투표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한다. 2025년부터는 약 400만 명의 개인 투자자들이 2500억달러(약 384조원) 규모의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고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이 1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는 ESG를 둘러싼 찬반 양측의 압박을 피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뱅가드가 ESG에 반대하는 보수 진영의 반발은 피하면서도, 기후변화와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헌신하는 고객들은 만족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 등도 개인투자자에게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대리 투표 프로그램을 확장 중에 있다./뱅가드

 

수익 중심 옵션 신설…ESG는 투자자가 직접 선택

뱅가드는 2023년 초 '투자자 선택(Investor Choice)' 프로그램을 시범 도입했다. 현재 투자자들은 ▲제3자 ESG 중심 의결권 행사 ▲이사회 권고안 ▲뱅가드 자문 정책 ▲불참 등 4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2025년부터는 정치와 사회적 의제보다 주주가치 극대화에 중점을 둔 수익 중심(wealth-focused) 옵션이 새로 추가된다.

뱅가드의 글로벌 투자관리 책임자인 존 갤러웨이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결정은 투자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것"이라며 "투자자마다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뱅가드에 따르면, 2024년 프록시 시즌에는 약 4만 명의 투자자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중 43%가 뱅가드 자문 정책, 30.3%가 이사회 권고안을 선택했다. 투자자의 73%가 보수적인 의결권 행사 방식을 택한 것이다. 제3자 ESG 중점 정책은 24.4%가 선택하여, 주류 투자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해 수익 우선 옵션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도 해석된다.

 

대형 운용사들 잇단 의결권 이양...ESG 논란 피하기? 

뱅가드의 경쟁사들도 잇따라 의결권을 투자자에게 넘기고 있다. 

블랙록은 올해 초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의결권 행사 옵션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2조8000억달러(약 3901조원) 규모의 주식 자산에 대해 17가지 정책의 선택지가 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SSGA)도 1조7000억달러(2369조원) 규모의 자산에 대해 10가지 의결권 행사 옵션을 제공 중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규제 당국의 압박을 피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FT에 따르면,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대형 운용사들의 은행주 보유 비중이 10%를 넘을 때 추가 감사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형 운용사들이 의결권을 투자자에게 이양하는 것은 FDIC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투자자들이 각자 선택한 정책에 따라 의결권이 나뉘어 행사된다면, 단일 운용사의 영향력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우려하는 규제 당국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SG를 둘러싼 논란도 의결권 이양의 배경이 되고 있다. 뱅가드는 올해 미국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 모든 환경과 사회 관련 안건에 반대표를 던져 진보 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동시에 다른 대형 운용사들과 함께 ESG를 앞세워 미국 기업들에 깨어있는 자본주의를 강요한다는 보수 진영의 공격도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