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SEC, 기업에 주주제안 거부권한 확대…행동주의 장벽 생겨

2025-02-14     송준호 editor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2일(현지시각) 기업들이 주주제안을 더 쉽게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새 지침은 주주제안이 기업의 자산, 순이익, 총매출에 대한 경제적 영향을 명확히 증명하지 못하면 거부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이는 SEC가 최근 기후 공시 규칙을 사실상 해체하는 시점에 나온 조치로, ESG 관련 주주제안이 대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은 전했다.

SEC는 주주제안 거부권과 관련된 지침을 수정했다. / 픽사베이

 

ESG 관련 안건, 재무적 영향 증명 못 하면 배제

SEC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이던 2021년, 주주총회 안건을 경영진이 자의적으로 배제할 수 없도록 하는 지침을 개정한 바 있다. 주주총회에서 기후변화·인종 문제 등 ESG 문제와 관련된 주주제안을 이전보다 더 쉽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바뀐 신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은 SEC에 무조치(No-action letter)를 더 쉽게 요청할 수 있게 됐다. 무조치는 주주제안이 회사의 일상적인 사업과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관련성이 현저히 낮은 경우에 제외할 수 있도록 SEC에 요청하는 절차를 말한다. 즉, SEC가 배제를 승인한 제안에 대해서는 기업이 안건에서 제외해도 SEC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존 지침은 주주제안이 기업의 자산·순이익·총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5% 미만인 경우에 기업이 거부할 수 있지만, 사회적·윤리적 중요성이 높은 경우에는 수용하도록 규정했다.

새 지침은 ESG 관련 중요성 높더라도 재무적으로 5%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안건이라면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즉, 주주제안이 사업 실적과의 연관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통과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또한, 주주제안이 구체적인 정책이나 실행 계획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경영간섭(Micromanagement)으로 무조치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 

기업이 주주제안을 거부할 때도 이전에는 이사회가 해당 제안을 검토한 근거를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새 지침은 이를 필수 요구사항에서 제외하여, 이사회 분석 없이도 법적 논리를 충분히 정리한다면 주주 제안을 거부할 수 있게 됐다.  

 

크렌쇼 SEC 위원 ‘정치적 의도’ 비판…ESG 행동주의 위축될 것

SEC는 성명에서 이번 조처에 대해 "기업과 주주에게 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ESG 관련 주주제안을 막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주행동주의 전문 변호사 샌포드 루이스는 "기업들이 주주제안을 경영 간섭이라며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민주당 소속의 캐롤라인 크렌쇼 SEC 위원은 "주주제안 절차가 정치적 메시지의 표적이 됐고, 기업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려는 세력들의 '샌드백'이 됐다"며 정책 변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책을 변경한 시점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크렌쇼 위원은 "2025년 주주총회 시즌이 코앞인데 기업은 제안에 대한 거부요청서를 새로 작성해야 하고, 주주들은 이미 제출한 제안을 수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