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6이 화제가 되는 바람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달 초 미국 기업의 주주총회에 큰 영향을 미칠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지침이 개정됐다. 바뀐 지침에 미 상공회의소는 반발하고, 기업들은 ESG 관련 주주 제안이 강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바뀐 지침에 따르면, 앞으로 회사 경영진은 경영 현안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주주 총회 안건을 자의적으로 배제할 수 없도록 했다. 주주총회에서 기후변화·인종 문제 등 ESG 문제와 관련된 주주제안을 이전보다 더 쉽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SEC는 경영진이 특정 안건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주주총회 상정 보류 허가를 내달라고 요청할 때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SEC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세우고 제출하라는 주주제안에 대해 회사 측이 주총 안건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다. 하지만 변경된 지침에 따라 이 같은 제외는 쉽게 이뤄지기 힘들 전망이다. 

SEC는 또 인권 등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주주제안에 대해, 해당 이슈가 특정기업과의 관련성보다는 기업의 통상적인 업무를 초월하는 등 광범위한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이슈인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기업책임에 관한 인터페이스센터 대표인 조쉬 지너(Josh Zinner)는 파이낸셜 타임즈에 “SEC의 정책변화로 인해 주주 결의안 제출을 찬성하는 위임 투표(proxy voting) 싸움으로 기울게 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더 많은 주주 결의안이 제출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블랙록, SSGA, 뱅가드 등 세계3대 자산운용사는 최근 더 많은 환경, 사회 관련 주주제안을 지지하고 있는 추세다. 

 

ESG 관련 주주총회 안건 제출 활발해질 전망

미 상공회의소는 강력 반발 

이런 흐름은 사실상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SEC에 기후공시를 추진하는 등 ESG 이슈를 강화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한 예로, 지난달 말 애플의 주주총회에서는 6건의 주주제안이 올라왔다. 애플의 공급망에서의 강제노동 의혹, 애플 앱스토에서 삭제할 앱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등 투명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이었다. 또 애플기기가 얼마나 쉽게 수리될 수 있는지(소비자 수리권 이슈), 비공개 계약을 사용하는지, 더 많은 지속가능성 조치들을 통합하는 것 등도 있었다. 

애플은 SEC에 이같은 주주제안을 철회시켜달라고 요청했다.  통상 SEC는 이같은 기업 철회 요청에 대해 응하는 관행이었으나, 이런 관행이 계속될지 주목되고 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수백 개의 기업이 주주제안과 관련해 ‘비조치의견서’를 받으러 왔었다”며 “새로운 지침이 기업과 주주에게 더 명확한 이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조치의견서는 기업이 취하려는 정책 등에 대해 SEC 등 금융당국이 향후 제재조치 여부를 명확히 밝혀 회신하는 문서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즈는 “이제 미국 기업들은 SEC의 지침 개정에 따라 연례 주총 투표에서 기후변화와 인권 관련한 주주 결의안을 차단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주들이 이전보다 쉽게 행동에 나설 수 있게 될 전망이다. SEC는 씨티그룹이 인종 평등 관련 감사를 실시하라는 주주 제안을 주총 안건에서 제외하지 못하도록 결정한 바 있다. 엑손모빌에 대해서도 기후변화 관련 주주 제안을 배제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미 상공회의소는 “우리는 SEC가 이 결정을 즉각 번복할 것을 촉구한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선 상태다. 

 

기업들, 주총 투표보다 조용한 협상 가능성 

하지만 시대적 압력으로 인해 일부 기업들의 경우 바뀐 지침에 적응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창고형 할인매장 코스트코가 대표적 사례다. 코스트코는 최근 탄소배출량 감축목표를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주주 제안을 철회해달라는 싸움을 포기했다. 이 주주제안은 오는 1월 열리게 될 주총에서 표결에 붙여질 예정이다. 주주제안을 제출한 그린센추리자산운용의 레슬리 새뮤엘리치(Leslie Samuelrich) 대표는 “코스트코 청원은 투자자들이 기업에 야심찬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직접 요청하는 제안에 투표할 수 있는 첫번째 기회가 될 것”이라고 FT에 밝혔다. 

변호사들은 “기업들이 주주 표결에 맞서기보다는 환경론자들과 조용히 협상하고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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