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국부펀드, 방위산업 네거티브 스크리닝 폐지 검토
노르웨이 정치권이 세계 최대 국부펀드의 방산업체 투자금지 정책의 철폐를 요구하고 나섰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2000년대 초부터 핵무기나 집속탄 부품 제조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해 왔다. 이 정책은 보잉, 에어버스, 록히드마틴, 하니웰 등 주요 방산업체 전반으로 확대 적용됐다.
ESG 투자에서는 전통적으로 환경 파괴, 무기 생산 등 '죄악 산업'으로 불리는 부문을 배제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해 방위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노르웨이 정치권, "방산산업 투자 배제는 아이러니"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각) 중도파인 보수당과 진보당이 올해 9월 의회 선거를 앞두고 이 투자 제한 정책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고 보도했다.
전 총리이자 현 보수당 대표인 에르나 솔베르그는 "노르웨이가 핵무기를 만드는 기업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며 "방위산업에 투자할 수 없게 하는 현재의 제한을 제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당 의원 한스 안드레아스 리미는 노스롭 그루먼, BAE 시스템즈, 제너럴 다이내믹스, 사프란 등 기업 투자를 막는 금지 조항을 철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리미 의원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나토 회원국이고,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같은 기업들로부터 장비를 구매하면서도 그들에게 투자할 수 없다는 건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전 세계 상장 주식의 평균 1.5%, 유럽 상장 주식의 2.5%를 보유하고 있어, 투자 정책의 변화는 글로벌 투자업계에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르웨이 중앙은행 총재 이다 볼덴 바케도 "윤리적 판단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열어둬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 전 총재 마리오 드라기가 지난해 발표한 일명 ‘드라기 보고서’에 따르면, EU 규정은 지속가능성을 표방하는 투자 펀드가 지뢰나 집속탄과 같은 이른바 '논란이 많은' 무기를 제조하는 기업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규정은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를 제조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에 명시적인 제한을 두지 않기에 투자자의 해석에 달려 있다고 FT는 전했다.
방위산업, 친ESG vs 반ESG 논쟁 재점화
방산업체에 대한 투자 제한이 재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노르웨이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커지고 있다고 FT는 28일(현지시각) 전했다. 이 논쟁은 2022년 EU가 소셜 택소노미를 발표할 때도 한 차례 등장한 바 있다.
유럽의 ESG 투자자들은 방산 산업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는 경향이 강했다. 유럽 ESG 펀드의 방산업종 투자 비중은 평균 0.5%에 불과해 1.3% 수준인 일반 펀드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으로 확인된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방위산업의 주가가 크게 상승하면서 ESG 펀드도 이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게 됐다. 모닝스타의 유럽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지수는 2022년 초 이후 175% 상승한 것으로 확인된다.
영국에서는 노동당 소속 의원 100명이 금융기관들에게 "방위산업 투자를 배제하는 ESG 메커니즘을 재고하라"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프랑스 금융시장 규제 당국은 "지속가능한 금융 규제가 방위산업 자금 조달에 부당한 장애물을 만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기독민주당도 "포탄이나 탱크 제조기업 투자 관련 ESG 장애물을 제거하겠다"고 공약했다.
프랑스 지속가능 투자사 미로바의 대표 필립 자우아티는 "방산 산업은 ESG 투자자들이 외면해 온 금융의 사각지대"라며 "오히려 ESG 투자자들이 개입함으로써 산업의 투명성과 윤리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