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의 한 장면이 현실세계에서도 벌어졌다. 영화에선 과학자들이 혜성의 충돌을 경고했지만, 현실 세계에선 그린워싱 광고를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과학자 450명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기업과 주요 광고회사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특히 광고로 인해 기후위기의 위험을 축소하거나 잘못된 인상을 준다며 그린워싱을 중단하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기후 과학자들의 연합인 클린 크리에이티브즈(Clean Creatives)는 “과학자들의 데이터를 난독하거나 축소하려는 광고들과 이런 광고가 일으키는 기후 비상사태의 위험성 축소에 진저리가 난다”면서 “기후위기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광고회사들은 화석연료 기업들과 모든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편지는 에델만, WPP, IPG 등 주요 광고회사들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유니레버, 노스페이스 등 지속가능성 목표를 제시한 CEO들에게 보내졌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모인 것은 처음이다. 기후위기 부정주의자에 대항하며 지난 1000년간 북반구 기온 중 20세기 기온이 가장 높다는 ‘하키스틱 곡선’을 제시한 마이클 만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대기과학과 교수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등을 쓴 나사 고다드 우주연구소 소속 케이트 마블 박사, 2019년 타임지 ‘세상을 구할 여성’에 선정된 기후운동가 캐서린 윌킨슨 박사가 참여했다.
이 서한은 지난달 클라이밋 체인지(Climate Change) 저널에 소개된 논문의 내용에서 비롯됐다. 브라운대학 로버트 J. 브룰 환경사회학부 초빙교수는 ‘기후위기 정치에서 광고회사의 역할’이란 논문을 발표하며 기후위기 대응 행동을 방해하기 위해 고안된 홍보, 광고, 마케팅 기관의 캠페인 수백 건을 열거한 바 있다. 특히 브룰 교수는 “발전과 가스, 석유회사는 광고에 가장 많은 돈을 뿌리고 있다”며 “조직적인 PR활동을 통해 그린워싱을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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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들은 “우리의 목표는 항상 고객이 기후위기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WPP 또한 “우리가 생산하는 콘텐츠에 엄격한 표준을 적용하고,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논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에델만의 경우 과학적인 원칙을 도입해 내부 고객 검토를 시행하기도 했다. 다만 모든 화석연료 회사와 거래를 중단하진 않았다.
이에 클린 크리에이티브즈는 “광고회사들이 진짜 기후 해결책을 내놓고 싶다면, 기후 입법을 방해하는 모든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PR 및 광고 회사가 석유 및 가스 회사가 기후 변화를 악화시키거나 회사가 기후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그린워싱을 일으키는 사례에 대한 조사는 입법부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미국 하원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기후위기 그린워싱을 위해 사용된 자금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하며 엑손모빌 대런 우즈 CEO, 쉘의 그레첸 왓킨스 CEO와 BP 관계자, 미국석유연구소(API)와 미국 상공회의소 소장을 소집한 바 있다.
이 청문회를 주도한 민주당 로 카나 의원은 “석유회사들이 정부의 환경 정책을 막기 위해 막대한 로비와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빅 오일(Big Oil) 회사들의 광고 캠페인에 주목했다. 1970년대에는 화석연료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캠페인이 진행됐다면, 지금은 녹색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한 캠페인이 그린워싱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석유회사 쉐브론의 TV광고를 보면 녹색 이미지가 과잉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쉐브론의 광고에는 스티브라는 환경 전문가가 등장해 “재생에너지가 우리 지구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셰브론은 태양열과 바이오 연료 기술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지금 당장 시작돼야 한다”는 문구가 삽입됐다. 하지만 실제로 쉐브론의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는 7년간 100억달러로, 석유와 가스를 시추하는데 투입되는 매년 수십억 달러와 비교할 때 결코 크다고 볼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청문회에서 엑손모빌 등은 탄소세 등 정부의 친환경적 정책을 막기 위해 꾸준히 로비를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2015년 이후 엑손의 전체 입법 로비는 1543건 있었는데, 파리협정을 지키기 위한 로비는 단 0.06%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논문을 쓴 브라운대학 브룰 교수는 “지난 30년간 주요 석유회사들은 정부가 활동규제를 검토하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홍보활동을 대폭 강화해 왔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탄소배출량 조절에 나서면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은 상당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