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재무장관, “EU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법 거부”

2022-06-22     송준호 editor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이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EU의 계획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독일 재무장관의 반대가 EU의 중요한 녹색 의제를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린드너 장관은 지난 21일(현지시각) 베를린에서 독일 산업연맹(BDI)이 개최한 행사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면, 풍선효과처럼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부족한 만큼을 충당하게 되므로 “잘못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EU의회 법안 표결, 분열된 독일 연립정부

EU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량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이번 법안은 ‘핏포55’, 즉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까지 줄이겠다는 EU의 그린딜 공약의 핵심 중 하나다. 

EU 의회는 8일(현지시각) 이 법안에 찬성함에 따라 유럽연합의 전기차 전환 속도는 한층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법안이 의회 투표에서 통과됨에 따라, 찬반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독일의 자동차 로비단체인 VDA는 표결에 강력히 반발했다. VDA는 이 결정이 “시민, 시장, 혁신, 현대 기술 전반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이 사안에 대해 정치권의 의견이 하나로 합치되지 않았다. 린드너 장관은 기업 친화 성향의 자유민주당(FDP)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그는 “독일은 내연기관 금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린드너 장관은 “독일은 그럼에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이 BDI 행사에서 연설 중인 모습/ntv Nachrichten

반면, 스테피 렘케 독일 환경부 장관은 21일(현지 시각) 현지언론인 DPA 뉴스에 독일 정부가 “2035년부터 배기가스 배출이 없는 자동차만을 허용하자는 유럽 위원회와 의회의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독일의 연립정부를 이끄는 중도좌파계열의 사회민주당은 이에 대한 입장을 아직 내놓지 않았다. 

 

분열, 자동차 산업으로 확대…환경단체는 정치권에 합의 촉구

독일 연립정부가 법안을 두고 분열하면서, 유럽 자동차 산업으로 분열 양상이 확대되고 있다. 다국적 자동차 기업인 스텔란티스는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라는 로비단체에서 가장 큰 회원 중 하나이다. 스텔란티스는 ACEA에서 나와서 이 법안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실행하는 단체를 만들었다. 

카를루스 타바루스 스텔란티스 CEO는 규제 당국이 자동차 제조업체들에게 전기차 산업 모델을 강요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비판해왔다. 

그는 올해 초 유럽 매체들을 통해 “전기차 기술은 업계가 선택한 게 아니라, 정치인들이 선택한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다”면서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대체하는 방안을 업계에 강요하는 것 말고도, 자동차 탄소배출량을 더 빠르고 경제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자동차 회사들은 EU 법안에 동의를 표했다. 랄프 브랜드스테터(Ralf Brandstaetter) 폭스바겐 사장은 "이번 투표는, 전기차 전환의 방향성을 거스를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2030년까지 “시장 여건이 되는 곳”이라면 2030년까지 모두 전기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카를루스 타바루스 스텔란티스 사장(왼쪽)과 랄프 브랜드스테터 폭스바겐 사장(오른쪽)/스텔란티스, 폭스바겐

환경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환경 및 자연보호연맹(the German Federation for the Environment and Nature Conservation)은 “내연기관차는 단종된 모델”이라며 “독일이 EU의 제안을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오랜기간 배터리-전기 산업의 미래로 가는 길을 걸어온 기업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줄리아 폴리스카노바 T&E(Transport & Environment) 선임이사는 “법안은 정부 내에서 모두 합의된 사항이지만, 자유민주당은 이를 거부하는 일부 지지자들을 위해 이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사민당과 녹색당은 이 법안이 통과되도록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원전 3기의 수명 연장을 반대하지 않으며,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독일 정부와 전력회사들은 원전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석탄 화력 발전소에 조금더 의존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