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에너지 전환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이 된다면 어떨까.
18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는 세르비아 국민들이 유럽 최대 규모의 리튬 광산 개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르비아는 발칸반도 중앙에 위치한 동유럽 국가 중 하나로, 유럽연합(EU) 가입 후보국 중 하나다.
세르비아 리튬 광산, 유럽 3위 규모...
주민들은 환경 파괴 이유로 광산 개발 반대
세르비아는 2009년 EU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줄곧 가입 후보국에 머물러 있다.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간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해체된 후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 끊임없이 독립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몇 차례 무력 충돌이 발생한 이후에도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EU 측은 세르비아가 코소보의 유엔 가입에 동의해주면 세르비아의 신속한 EU 가입을 지원하겠다고도 했지만, 세르비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자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세르비아 서부에 위치한 자다르(Jadar) 광산 리튬 매장량이 유럽 최대 규모 수준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자다르 광산의 리튬 매장량은 약120만톤에 달하며, 이는 유럽 3위, 세계 12위에 해당한다.
이에 영국과 호주 자본으로 구성된 글로벌 광산 기업 리오 틴토(Rio Tinto Plc)는 2021년 세르비아 정부로부터 개발 허가를 획득, 대대적인 리튬 채굴 사업에 들어갔다.
문제는 광산 개발 허가가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세르비아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향상, 일자리 창출 등 광산 개발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홍보하며 무리하게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이에 세르비아 국민들은 광산 개발을 막기 위해 2021년 11월부터 2022년 1월까지 대대적인 시위에 나섰다. 결국 2022년 선거를 앞두고 세르비아 정부는 국민적 반발을 수용, 법률 개정을 철회했다.
세르비아 정부, 반대하는 국민들 겨냥 "러시아가 사주한 것"
시위 참여자, "나는 녹색차가 필요없다"
이후 상황은 또 변화했다. 중국과의 무역갈등이 심화되자 EU와 미국이 중국의 광물 공급망을 대체하기 위한 광산 탐색에 나선 것이다.
EU 가입을 희망하는 세르비아 정부와 리튬이 필요한 EU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지난해 7월 세르비아의 리튬 광산 프로젝트 재추진이 결정됐다. 그리고 올해 7월 11일(현지시각) 세르비아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2년 정부의 광산 개발 허가 취소 결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광산 개발에 더욱 속도가 붙은 것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온 지 일주일 뒤인 지난달 19일(현지시각) EU, 독일, 세르비아는 지속가능한 원자재, 배터리 공급망 및 전기차에 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EU는 이번 MOU 체결로 스마트폰과 전기차 핵심 재료인 리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다변화를 이룰 수 있게 됐다. 특히 자동차 강국 독일은 전기차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안정적인 리튬 공급망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최대 이해관계자인 지역사회 주민들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최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리튬 광산 개발 반대시위에서 한 주민은 “나는 친환경 자동차가 필요 없다. 내가 필요한 것은 깨끗한 사과와 녹색 잔디”라고 외치기도 했다.
세르비아 정부는 시위가 정치적 사주를 받은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세르비아의 EU 편입을 반대하는 러시아 세력이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EU 가입과 서방세계와의 협력을 추구하는 등 외줄타기 외교 를 보여주고 있다.
NYT는 세르비아의 리튬 광산 프로젝트가 단순한 자원 개발 그 이상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다며, 유럽의 녹색전환과 세르비아 주민들의 건강권의 충돌이 어떻게 해결되어 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논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