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건물과 수송 분야에도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ETS)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세계 기후정상회의에서 “에너지 발전과 산업뿐 아니라 교통과 건물을 위한 배출권 거래도 할 것”이라며 “탄소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며, 자연은 더 이상 그 대가를 치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EU 정상들은 오는 5월 25일 브뤼셀에 모이기로 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5일 보도했다.
EU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55%까지 줄여야 하는 감축 목표를 가지고 있다. 2005년 세계 최초로 도입된 EU의 배출권 거래제(ETS)는 EU 탄소시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세계 최대 규모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이 큰 발전부문과 산업계에 유상할당, 무상할당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해주고, 기업이 할당량만큼 감축하지 못할 경우 배출권을 사오는 형태로 설계 돼있다. 한마디로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시장이다.
이러한 탄소시장을 건물과 수송으로까지 확대한다는 것은 과감할 뿐만 아니라 정책적 리스크가 매우 높다고 알려져 왔다. 건물과 수송 분야는 2019년 EU 집행위원회가 새로 출범한 이후부터 논의만 되어왔을 뿐 진전을 보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도로교통(수송) 부문에까지 탄소 가격을 매기게 되면 당장 석유나 가스 등 연료가격이 인상될 것이고, 이는 생계형으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치명적인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프랑스에서 2018년 일어난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가 재연될 수 있다.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환경오염 방지를 이유로 1년 동안 경유 유류세 23%, 휘발유 유류세 15%를 인상했는데, 새해에 이를 추가로 인상하겠다고 하자 그해 11월 정부의 유류세 인상을 반대하며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에선 자동차 사고발생을 대비해 항상 노란 조끼를 싣고 다녀야 하는데, 시위대들이 이 옷을 입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처음에는 당장 피해가 큰 트럭과 택시운전사들이 시위에 참여했으나, 이후 시민들까지 가세해 ‘마크롱 대통령 퇴진 시위’로까지 번졌다. 이들은 “정부가 환경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전기차 수요를 확대해 대기업을 지원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새로운 배출권 거래 시스템 도입 가능성 높아
하지만 EU는 오는 6월에 내놓은 ‘에너지 및 기후법 패키지’에 건물과 수송에 관한 배출권 거래제 확대 방안을 내놓기로 큰 틀을 정했다. 왜냐하면, 당장 10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을 55% 감축하려면, 강력한 탄소정책이 필요한데 이미 성공적으로 안착한 배출권 거래제를 활용하는 것이 새로운 규제안보다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EU의 탄소 배출권 가격은 지난주 톤당 47유로를 달성하며,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모건스탠리는 배출권 거래제 변화로 탄소 배출권 가격이 오는 6월에는 60유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U는 세계 최대 탄소 배출권 거래시장으로, 세계 배출량의 40%를 차지한다.
기존의 EU 배출권거래제에 건물과 수송을 추가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해외 언론에서는 “별도의 신규 시스템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건물과 차량에 관한 엄격한 탄소 배출 기준, 에너지 효율 달성 요구사항 등을 세분화해 명시할 예정이다.
디데리크 삼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기후위원장은 폴리티코가 주최한 온라인 행사를 통해 “별도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하되,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 ETS 탄소시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건물과 관련해 EU는 이미 지난해 10월 유럽 내 모든 건물에 ‘에너지 성능 표준’을 의무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유럽에 있는 수백만 개의 건물은 EU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에너지 총 소비량의 40%를 차지한다.
EU는 유럽 전역 건물의 개보수율을 높이기 위한 ‘리노베이션 웨이브(Renovation Wave)’ 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주거용 건물과 비주거용 건물의 연간 개보수 비율을 최소 2배 이상 높이겠다고 밝혔다.
당시 비영리 규제지원사업 수석고문 루이즈 선덜랜드(Louise Sunderland)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규제 조치를 더 많이 마련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사회 주택의 개보수 비율을 크게 끌어올린 네덜란드의 에너지 성능 기준을 대표 사례로 제시했다. 네덜란드 사무실의 경우 2023년까지 에너지 성능 등급 C일 경우, 200만여 개 사회주택은 내년까지 B 표준을 충족해야 하며, 이를 충족하지 못할 시 임대가 불가능하다.
이외에도 EU는 건축물 리노베이션에 문화, 예술적인 아이디어를 입혀 지속가능하면서도 창의적인 건물을 만들자는 ‘신유럽 바우하우스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웹사이트(https://europa.eu/new-european-bauhaus/index_en)에 지속가능한 건물 아이디어도 받고 있다. 유기적인 건축자재 사용을 장려하는 방법, 기후 해결책을 위해 디자인을 적용하는 방법, 기차역이나 오페라 하우스를 지속가능한 건물로 바꾸는 방법 등을 논의하는 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