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온>은 2030 MZ세대 싱크탱크 <안테나살롱>과 함께 매달 ESG 관련 이슈로 유튜브 대담을 진행,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월 1회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7월 이슈는 '그린워싱'입니다. <편집자주>


본사 압수수색, 벌금 부과, 소송, 금융지원 중단. 최근 몇 달 사이 ‘그린워싱’이라는 테마 뒤에 동원된 표현들이다. 단어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아직도 그린워싱을 도덕적 훈계의 영역으로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단견의 소치다. 그린워싱은 윤리적으로 그릇된 행위이기 때문에 비판받는 단계를 일찍이 넘어섰다.

얼마 전만 해도 그린워싱을 주제로 한 글에서 가장 많이 추출된 키워드 중 하나는 불매운동이었다. 물론 소비자의 자발적 규합을 통한 대(對) 기업 압박은 가공할 위력을 지닌다. 기업 입장에서는 ‘여론’에 맞선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데 이제 그 부담과 압박의 방정식이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사법적, 행정적 제재까지 더해졌으니 말이다.

 

금융업 내 그린워싱의 후과, 그린워싱 대응법의 무게 추 이동

특히 금융산업에서 그린워싱이 운위되는 맥락은 특기할 만하다. 그린워싱은 옳지 못한 행위니깐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공허한 주장은 사실상 동어반복에 다름 아니다. 그린워싱이 기실 투자자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오도(誤導)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계령이 내려진 것이다. 말 그대로 그릇된(誤) 길(導)로 이끌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정교하고 치밀한 분석 아래 진행되어야 하는 투자행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곧바로 재무적 손실을 가져오며, 무고한 다수의 투자자들이 겪는 극심한 경제적·정서적 고통이 그 후과(後果)이다.

특정 펀드의 정보 일부를 잘못 기재하거나 아예 누락해버리는 경우, 선의의 투자자는 이 불완전한 정보를 믿고 돈과 시간을 허비하게 될 수 있다. 혹은 어떤 금융회사가 ESG 투자를 한다고 대내외적으로 떠들썩하게 공표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낮은 조달금리 등 유무형의 제도적 혜택을 향유하기만 한다면? 이 과정에서도 피해자가 속출하기 마련이다. 간교한 ‘모방 범죄’를 통해 업계 전체가 혼탁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 투자자는 개인대로 기관 투자자는 기관대로 생채기가 난다.

그린워싱에 대응하는 무게의 추가 불매운동과 같은 시민사회에서 발아된 저항적 캠페인에서 금융감독기관이 법적 수단을 강구하는 행정적 규제로 옮겨가고 있다. 환경단체나 소비자단체가 언급되는 빈도가 높았던 그린워싱과 관련한 기사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 등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린워싱이라는 영화의 주연과 조연이 교체되었고, 심지어 장르도 바뀐 것이다.

 

기준, 데이터, 그리고 도그마 탈피

바야흐로 그린워싱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 중지를 모아야 하는 시점이다. 먼저 그린워싱의 기준을 보다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 척도와 준거가 단단하게 확립되어야, 이전과 비교해 개선 여부를 체크할 수 있고, 비판이든 상찬이든 일관된 기준 아래 이뤄질 수 있다. 테라초이스(TerraChoice)가 제시한 규준은 그 나름의 유의미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이미 10여 년이 지난 연구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국가 및 지역별, 산업별, 분야별 세분화를 통한 업데이트가 시급하다. 선진국과 개도국에서 벌어지는 그린워싱의 결이 다를 터이고, 소비재와 금융상품의 특질 차이도 클 것이다.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체계적인 기준이 수립되어도 정량적인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으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대체투자 업계로 치면, 도심 오피스 빌딩의 용수나 에너지 사용량 추이 등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정보가 확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린워싱은 ‘모호함’을 숙주로 삼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도그마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룹에서 선보이는 모든 신규 투자 상품이 ESG 펀드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유럽계 금융사의 CEO는 결국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모든’과 같은 수식어의 남발은 늘 반례 및 허점의 발견과 그에 따른 반론 제기의 위험성을 배태한다. ‘제로(Zero)’, ‘노(No)’ 등의 접두어 사용도 마찬가지다. 캐치프레이즈로는 매혹적일지 모르겠으나, 100개 중 99개를 잘해도 1개의 오류가 발생하면? 의도가 어떠하였든 ‘제로’나 ‘노’의 정의를 의미론적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이런 류의 어법이 노정하는 태생적 한계다. 이때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은 비교급이다. ‘저감’도 의미 있는 활동이며, ‘레스(less)’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효익도 만만치 않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장기화와 극심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경제학 교과서에서 개념상으로나 겨우 들어봤던 자이언트 스텝 등으로 인해 근자에 ESG에 대한 공격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난데없이 ESG 무용론, 위기론 등의 대항논리가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상황이다. 분별없는 그린워싱 때문에 ESG 자체가 ’누아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김민석 팀장은

 

 

김민석 팀장(listen-listen@nate.com)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재직 중이다. 브랜드전략팀 팀장과 ESG LAB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행정학·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외부전문가 자문위원,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외부 전문위원, 서울에너지공사 시민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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