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과 중국이 뭉쳤다. 사업 확장이나 M&A를 위한 평범한 만남이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중국 기업의 ESG를 감독하는 표준을 만들기 위해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SK그룹은 중국 국영자산 감독·관리위원회(SASAC)와 베이징에 공동 연구소를 설립하며 중국에 본격적으로 ESG 노하우를 전수할 예정이다.
글로벌 ESG 자금 잡아라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국 정부
SK그룹은 지난해 2월부터 중국 국영자산 감독·관리위원회(SASAC)와 손잡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중국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SK그룹과 SASAC은 작년부터 중국 최대 에너지기업 시노펙, 통신기업 차이나모바일, 자동차기업 둥팡자동차, SOC기업 중국교통건설·중국건축, 발전기업 중국화전 등 산업군별 1위인 총 7개의 초대형 공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왔다.
이번 협업은 중국 내 ESG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SASAC은 중국 국영기업을 감독하는 기관으로, 중국의 중앙행정기관인 국무원 직속 기관이다. 장관급 특별 기관의 지위를 갖고 있는 SASAC은 통신기업 차이나모바일(CHINA MOBILE), 중국석유화학(China CoPEC) 등 97개의 중국 국영기업을 관리하고 있다. SASAC의 ESG 감독은 시장에 ESG 정보를 공개하라는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영 기업에 적용할 ESG 감독 표준 구축을 시작으로, 중국 정부가 조만간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ESG 공시 의무화를 주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중국은 지난 몇 년간 기업과 자산운용사에 ESG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2016년 중국 인민은행 등 7개 부처와 위원회는 녹색금융시스템 구축 가이드라인을 발간하며 상장기업의 환경정보 공개 의무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중국 증권규제위원회(CSRC)는 반기별 보고서와 연차보고서에 오염물질 배출 현황 등 환경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회계ㆍ컨설팅 전문사인 KPMG는 “올해 말 발표될 14차 5개년 계획에서 지속가능성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이 핵심이 될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자국 자산 소유자들에게 투자 과정에 ESG 개념을 도입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상장기업 4000여개도 올해 말까지 ESG 정보를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2018년 기준 중국 증권감독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환경 관련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한 기업은 약 1100여개다.
중국이 ESG 공시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은 해외투자자들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ESG 투자자들은 ESG 등급이 낮은 국가에 투자하기를 꺼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5억 달러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인 캔드리암은 러시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ESG 등급이 낮은 국가들에 대해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ESG 투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ESG 등급이 낮을 경우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중국 ESG 정보 공시의 질은 저조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UN PRI는 올해 초 보고서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ESG 정보공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중국의 상장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발간해왔지만,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마케팅의 수단으로 보고서를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SASAC을 필두로 규제 당국이 공시 조건을 강화하고, ESG에 대한 시장 인식이 높아지면서 중국의 상장기업들도 적극적으로 ESG 정보 공시에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아시아 기업 중 ESG 경영 '으뜸' 기업 SK
중국 정부와 협업으로 색안경 벗기겠다
SK그룹은 국내에서도 ESG 경영에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추석을 맞아 전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매출, 영업이익 같은 숫자로만 우리를 보여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연계한 실적 및 주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법”이라며 ESG 경영을 강조한 바 있다. SK그룹은 사회적 가치를 경영의 중심에 두고 2013년 SUPEX추구협의회도 출범시킨 바 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사회가치위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아시아 기업들은 기후악당으로, ESG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잘못 여겨지고 있다”며 “(중국과의 협업으로) 이런 인식으로 깰 수 있을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밝혔다.
SK그룹은 독일 최대 화학기업 바스프,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 등 8개 글로벌 기업과 딜로이트·PWC 등 글로벌 4대 회계법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함께 VBA(Value Balancing Alliance·가치균형협의체)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매출과 영업이익을 재무제표에 적듯 기업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화폐 단위로 나타내는 ‘사회적 가치 회계기준’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또한 "기업의 시장 가치는 ESG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ESG를 경시하는 것이 오히려 가치에 어긋나며, 주주들은 앞으로 ESG 계획이 없는 회사에 항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향후 10년 안에 전 계열사에 ESG 요소를 경영에 포함한 통합회계 방식을 채택하게 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