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의 영향으로 자산이 피해를 입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ESG 리스크는 어느 부서에서 관리하는게 맞을까?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감독 당국이 모인 녹색금융협의체(NGFS, 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는 ‘이사회’라고 답변한다.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2일 '기후·환경 관련 금융리스크의 증가와 적절한 리스크 지배구조 확립 필요성' 보고서에서 NGFS의 가이드라인을 소개하며 “금융사들은 기후·환경 위험 관리를 위해 전사적으로 역할 배분을 해야 하며, 고위 경영진의 책임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NGFS는 지난 5월 금융당국이 기후·환경 리스크를 감독하는 방법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간하며 “지배구조에 리스크 관리 체계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와 환경 리스크에 대한 논의와 의사결정은 기업 지배구조상 가장 상위 기구인 이사회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사회 보고 체계, 승인, 검토 관리 기준 등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감독당국들은 이사회 구성원이나 고위 경영진을 임명할 때 활용되는 적격성 심사에 기후·환경 리스크를 반영시키는 방법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리스크 위원회의 의장, 감사위원회 의장, 최고리스크관리자 등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기후 관련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기후·환경 리스크를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중있게 다루기 위해서다. 학계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 임명을 통해 이사회가 전문성을 가질 것도 권고한다.
이 연구위원은 NGFS의 가이드라인 내용을 인용하며 국내 금융사들의 대응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회사들은 아직 기후·환경 금융 리스크 인지 수준이 낮고 대응 체계도 취약하다"며 "대응 노력이 일부 대형 금융사에 한정돼있고 위험 노출 분석, 관리 전담 조직, 의사결정 체계 계획은 없거나 취약하다"고 말했다.
ESG를 투자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자산운용본부를 만드는 등 경영전략으로 활용하는 곳은 있지만, 기후·환경 리스크를 이사회까지 올려서 대응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BNK금융은 지주 전략기획부에 ESG 경영 담당 부서를 만들고, NH농협금융그룹도 사업전략부문에 ESG업무 전담 부서를 신설하긴 했지만 리스크로 식별하는 수준은 아니다. 이 연구위원은 “기후·환경 리스크 관련 업무는 조직 내에서 충분한 위상을 가질 수 있도록 상위 경영진, 이사회나 이사회 내 위원회 구성원이 책임을 져야 하고, 이사회 수준의 관여는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나마 4대 금융지주(신한금융·KB금융·우리금융·하나금융)는 이사회 수준의 사안으로 기후·환경 리스크를 다루고 있다. 2015년 국내 금융권 최초로 이사회 내 사회책임경영위원회를 만든 신한금융은 지난해 이사회 산하 '지속가능경영협의회'를 신설했다. KB금융은 이사회 내 모든 사내·외이사가 참여하는 ESG위원회를 설치했다.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은 이사회 내부는 아니지만 회장이 주도하는 혁신금융추진위원회, 혁신금융협의회를 만들었다. 이중 하나금융은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내년까지 이사회 내 ESG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연구위원은 “기후환경 리스크 관리를 위해선 전사적 차원의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배분하고, 이사회와 고위 경영진의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정규모 이상 금융회사의 경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기후 관련 공시에 해당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사회의 적격성에 대해서도 평가할 것도 권고했다. 개별 이사가 아닌 이사회 차원에서 전문성을 확보했는지 평가하고, 리스크를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평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평가시 기후·환경 또는 ESG 리스크 전문가를 확보했을 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내년 초 녹색금융협의체(NGFS) 가입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는 환경부와 함께 지난 8월부터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기후위기에 금융권이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NGFS에 가입하게 되면,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 평가 방식이 달라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의 채권은 리스크가 큰 위험자산으로 간주 돼, 이에 투자한 금융사들에게 충당금을 더 쌓도록 강제하는 식이다. 이 연구위원은 “기후위기로 촉발된 금융리스크 급증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금융당국이 기후·환경 리스크 감독 지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