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배출권거래제는 2015년부터 시행됐다. 제4차 배출권거래제를 앞두고 있는 지금, 제도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시기가 왔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과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시장 기능'을 활용하여 비용-효과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거래량을 파악하는 것과 거래를 통해 형성된 시장 가격이 시장 참여자들의 행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바꾸는 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배출 수요와 할당량 균형 이뤄...거래 참여할 동기 낮아

한국의 배출권 시장은 할당량과 실제 배출량이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의 배출권 할당량, 실제 배출량, 거래량을 비교한 결과, 배출권 거래량은 할당량과 실제 배출량의 차이가 증가하는 시기에 함께 늘어나는 경향이 관측된다. 

이는 곧, 한국의 배출권 시장에서 기업들의 실제 배출 수요와 정부가 제공한 할당량이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뜻한다. 기업들은 대부분 정부로부터 받은 할당량 내에서 배출량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배출권 거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기가 낮으며, 결과적으로 배출권 거래 시장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2024년 한국 배출권거래제 배출권할당량, 배출량, 및 거래량/플랜잇

시장 회전율은 시장 활성화 정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다. 이는 전체 할당량 대비 거래량의 비율이다. 한국 배출권 시장의 회전율은 2015년 0.2%에서 시작하여 2024년 17.6%까지 상승했다. 회전율은 2023년 급격히 증가했는데, 주요 원인은 기업들의 잉여배출권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들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남긴 잉여배출권은 총 7451만 톤에 달한다. 특히 포스코는 태풍 힌남노로 인한 제철소 가동 중단 등 기업의 감축 노력과 무관한 외부 요인에 의해 많은 잉여배출권이 발생했다.

2015년~2024년 한국 배출권거래제 시장 회전율/플랜잇

유럽의 EU-ETS는 현물과 선물 시장이 존재하여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지만, 2023년 기준 EU-ETS의 배출총량(Cap)은 약 1억5000만 톤인데 비해 유럽 에너지거래소(EEX)에서 거래된 배출권은 약 9억3000만 톤에 달한다. 이는 대부분의 배출권을 유상으로 할당하여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탄소가격이 투자 동인 아냐...수요 정책 조정 필요해

배출권거래제의 핵심기능은 탄소가격을 통해 기업들에 저탄소 투자를 유도하는 데 있다. 배출권 가격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실제 한국의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주요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명시된 주요 온실가스 감축 사업의 온실가스 당 투자비용은 배출권 가격보다 대부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높은 배출권 가격으로 비용을 낮추기 위해 투자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장기 전략적 차원에서 감축사업을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2022년 이후 바이오매스 발전소와 같은 일부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고 CCUS 실증사업에 대한 투자가 있었다. 이 역시 배출권 가격의 신호보다는 시장 외적 요인이 더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된다. 즉, 기업들은 현재 배출권거래제에서 탄소가격을 기업들이 주요 투자 결정의 지표로 삼고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2015년 ~ 2024년 한국 배출권거래제 시장 가격 및 주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기업 온실가스 감축사업/플랜잇
2015년 ~ 2024년 한국 배출권거래제 시장 가격 및 주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기업 온실가스 감축사업/플랜잇

한국 배출권거래제는 낮은 거래량과 낮은 가격이라는 구조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거래량과 가격이 낮으면 시장은 효율적인 가격 신호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기업의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사업 투자를 방해할 수 있다. 

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먼저 시장 유동성을 직접적으로 높이기 위해 배출권 공급을 늘리는 방식이 한 가지다. 여기에는 이월제한 규제 완화, 상쇄배출권 확대, 자발적 탄소시장과의 연계 등이 있다. 다음은 배출권에 대한 수요를 높이는 방법이다. 이는 유상할당 비율을 높이거나, 전체 할당량을 감소시키는 방법이 있다.

현재의 낮은 탄소가격을 고려했을 때, 효과적인 접근방법은 후자다. 잉여 공급량이 존재하고, 가격이 낮은 상황에서 공급을 늘리는 방식은 오히려 탄소가격을 더 하락시켜, 기업의 감축 동기를 약화시킬 것이다. 반면, 유상할당 확대나 할당량 감소는 탄소가격을 높여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투자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결국, 배출권거래제는 ‘비용-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시장 기반 제도이다. 현재 낮은 가격과 낮은 거래량으로는 해당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출권 수요 측면의 정책적 조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 박진수 대표는

박진수 대표는 기후환경 전문가로 2024년 에너지 정책 연구기관인 플랜잇(PLANiT)을 공동설립했다. 플랜잇은 정량적 모델 기반으로 기업, 국가, 및 지역의 전환 경로를 연구하는 연구소다. 박 대표는 2019년 2050저탄소사회비전포럼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런던정경대학교(LSE)에서 환경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탄소버블: 기후위기는 어떻게 경제위기를 초래하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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