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EV) 산업이 양방향 충전 기술로 새로운 전력시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배터리 수요 급감과 공급 과잉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기업 차지포인트와 전력관리 기업 이튼은 차량 배터리를 전력망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충전소를 공개했다.
차지포인트는 현재 미국 내 약 3만5000기의 급속 충전기를 운영 중이며, 이번 신제품을 통해 대규모 차량을 보유한 기업 고객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차량이 유휴 상태일 때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판매해 운행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차지포인트·이튼, 양방향 충전 공개…BNEF “美 배터리 수요 전망 56% 급감”
릭 윌머 차지포인트 CEO는 세금 혜택이나 보조금 없이도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보다 저렴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튼의 에너지전환 부문 총괄 폴 라이언 부사장도 “기업들이 태양광, 풍력, 배터리 등 분산형 에너지원을 늘리고 있는데, 이제 EV도 배터리 자산으로 편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의 주요 고객은 배송업체, 차량공유업체, 건설업체 등 일정하고 큰 전력 수요를 가진 기업들이었다. 차지포인트는 이번 신제품을 통해 이들 기업이 단순한 전력 소비자가 아니라 전력망의 ‘에너지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업무 종료 후 주차된 차량이 전력 수요가 가장 높은 시간대와 맞물리면 인근 건물 전력공급 등에 활용돼 추가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책 후퇴로 EV 판매 1400만대 감소, 배터리 과잉 불가피
그러나 시장 전망은 어둡다. 블룸버그NEF(BNEF)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지원 축소로 인해 2030년까지 미국 배터리 수요가 약 378기가와트시(GWh)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 전망치보다 56% 낮은 수준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 이미 193GWh의 생산능력이 가동 중이며, 2030년까지 추가로 428GWh 규모가 구축될 예정이다.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수요를 크게 웃도는 생산능력 과잉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BNEF는 공급 과잉이 현실화될 경우, 차량을 분산형 배터리 저장 장치로 활용한다는 신기술의 전략적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터리는 EV의 핵심 부품으로, 바이든 행정부 시절 연방 인센티브 확대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EV 세액공제를 단계적으로 철회하면서 2030년까지 미국 내 EV 판매량이 약 1400만대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배터리 제조업체들의 수요 기반도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BNEF 무역·공급망 담당 애널리스트 매슈 헤일스는 “전기차 보급에는 안정적인 정책 지원이 여전히 중요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 지원을 사실상 무너뜨렸다”고 평가했다.
다수 배터리 제조업체, 설비 투자 계획 보류 또는 철회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전기차 외에도 전력회사라는 또 다른 주요 수요처도 잃을 위기에 놓여 있다. 최근 전력사들은 대규모 배터리를 활용해 정전 위험을 완화하고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저장해왔다. 지난해 기준 미국 내 유틸리티 규모 배터리 누적 설치 용량은 26GW에 달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세액공제 요건으로 중국산 배터리 소재와 부품을 배제하는 규정을 도입하면서 에너지저장 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BNEF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양극재 생산능력의 88%, 음극재의 96%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어 대체 공급망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헤일스는 “요건이 비현실적이거나 까다로워 미국 내 에너지저장 신규 투자를 제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터리 수요 증가로 인한 공급 과잉 해소가 아니라, 제조업체들의 투자 보류·철회로 공급 과잉이 현실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이미 투자를 접고 있다. 코어파워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배터리 공장 계획을 철회했으며, 암프리우스 테크놀로지(Amprius Technologies)는 지난 6월 1억9000만달러(약 2638억원) 규모의 콜로라도 공장 건설을 중단했다. 같은 달 스텔란티스도 일리노이주 배터리 공장 계획을 철회했다.
헤일스는 “수요 위축과 정부 지원 축소가 맞물리면서 추가적인 공장 취소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미국 제조업의 희망에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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