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금융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영국 중앙은행, 즉 '영란은행(Bank of England, BOE)'이 8일 '기후변화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작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실시되는 이번 테스트의 목적은 영국 내 대형 은행 및 보험사가 기후 변화에 따라 어떤 금융 리스크를 겪게 될지 확인하고, 대응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영란은행은 매년 은행 부도(bank solvency)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고 2년에 한번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 따른 테스트(Biennial exploratory scenario,BES)를 한다. 이번 기후변화 스트레스 테스트는 BES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세 가지 시나리오
물리적 리스크와 이행리스크 검토
영란은행은 기후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물리적 리스크(physical risk)와 이행 리스크(transition risk)로 구분했다. 물리적 리스크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의 규모와 빈도가 증가해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을 말한다. 이행 리스크는 저탄소 경제(low-carbon economy)로 가는 과정에서 환경 정책과 규제 등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혼란이나 손실을 말한다.
영란은행은 30년(2021~2050년)을 기준으로 된 시나리오 3개를 제시했다. 시나리오별로 ▲조기 대응(Early Action) ▲지연 대응(Late Action) ▲무대응(No Additional Action)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탄소 가격 상승, 재생 에너지 전환, 자연재해 같은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점검하게 된다.
조기 대응은 2021년 탄소 중립 경제로의 이행을 시작, 2050년 이행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다. 지연 대응은 2031년부터 전환이 시작되지만 2050년에 이행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다. 무대응은 탄소 배출 감축 조치가 이행되지 않아 2050년에 이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다.
영란은행 보고서의 표에 따르면, 각각의 시나리오와 리스크별로 차이가 났다.
조기 대응은 물리적 리스크 보다는 이행 리스크가 높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2021년 탄소 중립 경제를 시작하면서 탄소세를 포함한 정책을 펴내기 시작한다. 2050년에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8℃ 이내로 오른다. 탄소 가격은 점진적으로 상승하며 재생 에너지가 개발되고 천천히 보급되기 시작한다.
그림자 탄소 가격(Shadow Carbon Price)은 21년 최고가 1톤당 30달러(3만원)에서 30년 동안 최고 900달러(약 100만원)까지 오른다. 그림자 탄소 가격은 시스템이나 기술, 연료 변화 등을 통해 온실 가스 1톤을 줄이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탄소 배출량이 높은 일부 산업에는 이 시나리오가 악재로 작용하겠지만, 친환경 기술 개발처럼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GDP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본다. 영국의 평균 GDP 성장률은 5년 단위로 측정되는데 1.4%, 1.5%, 1.6%로 0.1%씩 안정적으로 증가한다. 조기 대응은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기 때문에 물리적, 이행 리스크 모두 낮은 편이다.
지연 대응의 경우, 이행 리스크를 주로 보게 된다. 지연 대응 시나리오 역시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8℃ 이하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기 대응보다 10년 늦게 탄소 중립 이행을 시작한 만큼 탄소 배출량 감축 조치 정책 규제가 강력하다. 그 여파로 31년부터 탄소 가격이 급등하고 탄소 집약도가 높은 산업은 크게 침체된다. 그림자 탄소 가격은 2030년까지 30 달러로 변화가 없다가 31년부터 20년 동안 톤당 최고 1100달러(약 122만원) 이상으로 급격히 오른다. 높은 탄소 가격은 탄소 정책 규제 강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31년부터 50년까지 첫 번째 시나리오보다 좌초 자산 리스크가 클 것을 예상된다.
GDP 성장 추세를 보면, 첫 5년은 1.5%로 조기 대응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인다. 강력한 정책 시행으로 인한 관련 산업 급등 현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음 5년 무렵에는 무리한 정책 시행 때문에 산업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GDP 성장률이 크게 떨어진다. 이때 영국은 GDP 성장률 0.1%로 급격한 침체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5년 무렵 영국은 GDP 성장률 1.6%로 성장세를 회복하면서 불안하지만 결국 조기 대응과 같은 목표 수준을 달성하게 된다.
지연 대응의 경우 탄소 중립 이행 시기가 10년 늦어진 만큼 물리적, 전환 리스크가 조기 대응보다 크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도 결과적으로 2050 탄소 중립은 달성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무대응 시나리오에서는 앞의 두 시나리오와는 달리 물리적 리스크가 이행 리스크보다 훨씬 크다. 이 경우에는 기후 변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경제 전반에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폭염, 가뭄, 열대성 사이클론, 홍수와 같은 강도 높은 자연재해가 점차 많아지는 급성 위험이 있다. 평균 기온, 해수면 상승과 강수량이 증가하는 만성적인 문제도 발생한다. 기후 위기로 영국 해수면은 현재 수준에서 0.39m 상승한다.
무대응 시나리오에서는 그림자 탄소가격이 2050년에도 여전히 30 달러다. 탄소가격이 변하지 않은 이유는 탄소 중립정책에 따른 경제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 때문에 지구 온도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3.3℃ 이상 상승하고, 강도 높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서 GDP 성장률은 10년 간 1.4% 성장을 유지하다가 마지막 시기에 1.2%로 떨어진다. 경제 성장 전망이 불확실하고 영구적으로 하락세를 기록하게 된다. 무대응은 탄소 중립 이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행 리스크는 낮고 물리적 리스크는 높다. 이 시나리오는 2050 탄소 중립도 달성하지 못한다.
한은과 금감원도 기후변화 기준 마련
영란은행 방법론과 시행법 참고할 만
이 테스트는 영국의 주요 은행사 7곳과 보험사 11곳이 참여한다. 은행은 바클레이즈(Barclays), HSBC, 로이드(Lloyds Banking Group), 보험사는 아비바(Aviva), M&G, AIG, 알리안츠(Allianz Holdings plc)와 같은 곳이 참여한다. 참여 기관은 영국 내 가계 및 기업 여신의 70%와 생명보험 자산의 65%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주요 금융기관이 참여한 만큼 테스트 결과가 2050년까지 기후변화에 따른 영국의 경제 구조 형성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영란은행측은 "이 테스트는 20년 말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했고 기후변화 관련 익스포저를 측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테스트 결과는 2022년 5월에 발표된다. 영란은행은 이행 리스크인 온실가스, 화석연료 배출과 재생에너지 대체와 해수면 상승, 폭염과 같은 물리적 리스크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리스크가 거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각 리스크에 대한 대응 방식도 제안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영란은행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은행도 '기후변화 및 정책이 산업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보고서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변화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저탄소 또는 고탄소 기업과 산업을 분류하는 기준 등 기후변화 관련 기준이 필요한데 한은은 금융 감독원과 협력해서 관련 기준부터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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