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마비,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실제,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7%나 상승했으며, 영국 또한 5.5%의 물가상승률을 보여 30년만의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기요금, 원자재 가격, 화석연료 가격이 상승하면서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논란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탄소중립 경제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미국과 유럽의 정책적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친환경 재정지원 정책에 제동 걸릴 수도"
美 조 바이든 (Joe Biden) 대통령은 더나은재건(Build Back Better) 법안을 통해 약 5500억달러 규모(한화 약 656조원)의 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운송 분야 재정 지원을 도모했다. 하지만 지난 달, 민주당의 조 맨친(Joe Manchin) 상원의원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이유로 이에 반대하면서 법안의 상원통과가 좌절됐다.
또한 ABC뉴스가 지난 12월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70%가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대응 방식에 반대한다고 답했기에, 해당 법안 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
유럽에서도 친환경 에너지전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럽 내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가 급등한 에너지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EU 소속 19개국의 에너지 가격이 지난 한 달간 무려 26%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에 "급작스러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인플레이션과 경제약화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듯, 이달 초에 발표된 유럽연합의 그린 택소노미 초안에는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추가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럽 중앙은행의 이사 이사벨 슈나벨 (Isabel Schnabel)은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대응 기조가 강해지면서 에너지 가격의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저탄소경제 전환이 중기적으로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현재 유럽중앙은행은 일시적인 에너지 수요 문제가 안정화되면 에너지 가격 또한 정상 범주로 회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압박이 거세질 경우, 유럽의 친환경 재정지원정책에도 영향이 갈 수 밖에 없다.
"인플레이션 압박 일시적,
친환경 에너지의 인플레이션 기여도 크지 않아"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탄소중립경제 전환의 인플레이션 압박이 일시적이며, 이로 인한 경제적 영향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례로 유럽중앙은행의 수석경제위원 필립 레인(Philip Lane)은 "이번 에너지 가격급등은 코로나19의 특수성으로 인한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마비로 에너지 수요가 급락해 가격이 떨어졌다가 최근 수요가 회복하면서 가격이 튀어오른 것일 뿐"이라고 일각의 에너지 인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했다. 일시적인 에너지 수요- 공급의 미스매치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의 인플레이션 리스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산유국들이 에너지수요 회복 국면을 노려 의도적으로 에너지 가격상승을 부추긴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에너지 시장분석업체 우드 맥킨지(Wood Mackenzie)의 VP 알랜 겔더(Alan Gelder)는 "OPEC을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이 코로나 19의 경제쇼크에서 회복하기 위해 공급을 제한하고, 화석연료 가격을 의도적으로 높이고 있다"며 "이들은 국가예산을 활용해 일정 수준의 높은 유가를 유지하려고 들 것"이라고 글로벌 에너지 가격상승의 이유를 분석했다.
이어 그는 "바이든 정권의 기후변화 정책이나 ESG 행동주의 등이 글로벌 에너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재생에너지 전환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석유가스업계 또한 이러한 추세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을 늘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컬럼비아 대학교 글로벌 정책 연구센터의 로버트 존스톤(Robert Johnston)박사는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석유가스업체들은 원유 생산량을 늘리기보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확대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화석연료투자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 2021년 화석연료투자 중단을 선언한 기관의 숫자는 역대최고치를 경신했지만, 화석연료 업계의 수익률은 여전히 건재하다. ICLN, TAN, QCLN 등의 재생에너지 ETF는 -30%에서 -40%대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2022년 1월 기준) XLE, XOP 등의 화석연료 ETF는 60% 이상의 높은 연간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박과 화석연료업계의 공급 제한 움직임 가운데, 친환경에너지 전환과 투자 촉진이 차질 없이 이루어 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