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주택용 전력 소비자도 기업처럼 재생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기업들은 K-RE100 등을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지만, 가정에서는 사실상 선택권이 제한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회에서 이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국회의원 박지혜 의원실과 소비자기후행동, 기후솔루션이 공동 주최한 ‘주택용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해외 주요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보장 사례를 살펴보고, 한국에서의 정책적·제도적 대안을 논의했다.
해외는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보장…IT 플랫폼 활용과 요금제 다양화
기후솔루션 최서윤 연구원은 첫 번째 발제에서 일본과 호주의 사례를 소개했다. 최서윤 연구원은 “일본은 신규 전력판매업체를 통해 소비자가 다양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비화석증서(재생에너지 증명서) 제도를 활용해 친환경 전력을 실질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호주는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그린파워(GreenPower)’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자가 전력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정 비율의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 연구원은 “호주 정부는 고객이 재생에너지 전기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전기량을 1:1로 재생에너지 인증서(LGC, large generation certificate)와 매칭하는 메커니즘을 채택했다”며 “전기소비자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10~100%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고 kWh당 4~8센트를 더 지불하는데, 하루 1호주달러(약 900원)를 더 내는 정도”라고 부연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영국 에너지 기업인 옥토퍼스 에너지의 사례를 들어, IT 기반의 전력 플랫폼을 활용하면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석광훈 박사는 “공급이 과잉되는 시간대에 전기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사전 신청자에게 무료 전기를 제공하거나, 피크 수요 시간대에는 소비자들에게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석 박사는 “영국과 독일은 전력시장 개방을 통해 다양한 전력공급사가 녹색 요금제와 PPA(전력구매계약) 등을 제공하며, 소비자들이 능동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며 “한국도 전력시장 개방과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PA 대상 확대와 VPP, ESS까지 현실화 방안 제시
지정토론에서는 주택용 재생에너지 선택권 도입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 논의됐다. 김연지 경기도 에너지산업과 과장은 “경기도는 분산형 에너지 전환과 도민 참여형 발전소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선택권이 보장될 경우 보급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영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재 재생에너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의 대상이 산업용·일반용으로 제한돼 있어 주택용 소비자가 사실상 참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가상 PPA 등 보다 유연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차병학 브이피피랩 대표는 “제주는 재생에너지가 남아도는 상황에서도 소비자가 이를 직접 사용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며 “VPP(가상발전소)와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선택권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옥기원 한겨레 기자는 전기차 충전 문제를 언급하며 “전기차 구매자의 20%가 환경 보호를 이유로 차량을 선택했지만, 충전 전력의 80% 이상이 화석연료 기반”이라며 “전기차 충전 사업자가 PPA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정책과 문양택 과장은 “현재 한국의 전력시장은 해외와 다르게 한전 중심의 구조”라며 “단순히 외국 사례를 도입하기보다 한국 전력 시스템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차경 소비자기후행동 사무총장은 “주택용 전력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문제”라며 “정부와 국회가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소비자의 기후위기 대응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