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조원 녹색금융 마련해도 수요 없어…정부의 강력한 기후 정책 시그널 필요해
- 한국은행, 연구 넘어 시장조성자 역할 해야…녹색 상품 개발과 정책, 기후공시 요구
- 한국은행, 기후공시 내부 검토 중…녹색금융 활성화 위한 실무 토론 이어져
기후변화 대응에 금융의 역할이 무엇일지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개최됐다. 녹색전환연구소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의 기후금융 어디까지 와 있나, 그 선결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녹색전환연구소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송출됐다.
녹색전환연구소의 이유진 소장은 “기후위기 대응이 곧 산업과 경제의 대전환 정책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녹색금융과 전환금융에 대한 법이 필요하다”며 “산업의 전환을 위해서는 어떤 법과 제도가 필요한지 논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420조원 녹색금융 마련해도 수요 없어…정부의 강력한 기후 정책 시그널 필요해
“녹색은 규제의 영역이다. 금융은 실물시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정부의 정책이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 자금을 아무리 투입해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김종대 SDG 연구소장(전 인하대학교 교수)가 기조발제에서 한 말이다. 김종대 소장은 “녹색 프로젝트가 많으면 녹색금융은 자연히 활성화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재는 그 프로젝트가 적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종대 연구소장은 “2021년 한국의 녹색채권 발행금액은 12조5000억원에 이르렀지만 2022년 5조8000억원으로 감소하였으며 2023년 다소 증가하여 7조4000억원, 올해 8월까지 발행액은 6조3000억원 정도로 1분기와 2분기에 발행이 집중되는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지난해와 유사할 것”이라며 “녹색채권 시장은 2021년 급증한 이후 침체 혹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종대 소장은 “2024년 3월 금융위는 2030년까지 정책금융 420조원을 공급하겠다고 하지만, 한국의 기후금융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부가 시장 발전에 대한 확실한 신호를 투자자에게 전달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기업이 녹색 프리미엄을 자발적으로 감수하여 녹색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정부가 강력한 완화(mitigation) 정책을 펴서 금융 자금이 투입될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연구 넘어 시장조성자 역할 해야…녹색 상품 개발과 정책, 기후공시 요구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녹색금융과 전환금융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기원 선임연구원은 “영국의 싱크탱크 포지티브 머니의 G20 중앙은행 기후대응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D-로 낮은 평가됐는데 조금 더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최기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은행은 다양한 정책을 연구하고 검토하는 데 특화되어 있는데, 연구해 제안한 정책의 파급력이 부족하다”며 “이는 한은 내부에서 시장 중립성과 관련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최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2021년 발간한 기후변화와 한국의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10개의 기후대응 정책을 제안했는데 2개만 계획대로 이행된 게 아쉽다”며 “위험을 적극 해결하기보다는 분석하는 데 자원을 할당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원은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 프로그램 신설 ▲그린리모델링 지원대출 ▲녹색채권의 적격담보 인정과 기후 기여 반영 ▲한은 자산⋅대출⋅담보의 탈탄소화 ▲녹색채권 매입프로그램(GPP) ▲기후공시를 개선사항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행이 다양한 녹색 상품개발과 정책 마련으로 시장조성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고, 진행하고 있는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도 자산 운용에 반영해야 한다”며 “특히 국제 기준에 맞는 한국은행 자체 기후공시로 기업과 금융기관의 기후공시를 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법 개정이 필요하며,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기후위기 대응 통화신용정책 협의체를 구성해서 정책 과제를 도출해 국회에 보고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은행, 기후공시 내부 검토 중…녹색금융 활성화 위한 실무 토론 이어져
토론 좌장을 맡은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녹색금융의 현황과 활성화를 위한 실무적인 방안을 물었다.
한국은행은 최기원 선임연구원이 제기한 개선사항에 대해 답했다. 이대건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연구팀 팀장은 “앞서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을 말씀해 주셨는데, 중앙은행의 역할 범위 안에서 노력하겠다”며 “외화자산에 있어서는 ESG를 반영한 투자자산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대건 팀장은 “기후공시에도 책임을 많이 느끼고 있으며 솔선수범해서 제시해야 금융기관과 기업들도 빠르게 진행하리라고 생각된다”며 “다만, 스코프3에는 금융중개대출, 담보대출, 외화자산운용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될 수 있어서 공개 가능한 범위를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측 패널들은 금융배출량 산정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했다.
유인식 IBK 기업은행 경영전략그룹 ESG경영부 부장은 “자본시장의 기후리스크 관리와 산업의 녹색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금융배출량의 산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IBK 기업은행은 2021년부터 금융배출량을 산정해 오고 있다. 유인식 부장은 “금융배출량 산정은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권고안을 바탕으로 추정하고 예측하는 게 기본인데, 측정하지 않은 값에 대한 소송 등의 문제를 금융기관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와 같은 국제표준 제정기관들도 추정과 예측을 당연하게 보는데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며,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에서 면제해 주는 세이프 하버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기관에 면책특권이 부여되는 게 제일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녹색금융공사를 설립해 선도하면 금융기관들도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은하 신한금융지주 ESG기획팀 부장은 “신한금융은 고탄소 업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지 않고 2022년 전환금융계획을 세우고, 23년부터 전환금융을 시작하고 있다”며 “전환금융은 단기적으로 금융배출량이 늘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저탄소 전환에 꼭 필요하므로 금융당국이 이에 대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하 부장은 “금융배출량 산정을 위해 중소기업들의 탄소배출량 정보가 필요한데, 정부 주도로 산재된 배출량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측정 방법론도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투자자 패널들은 투자할 수 있는 녹색 산업의 육성과 투자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승우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한국은 녹색분류체계가 개정되고 녹색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며 “이에 부합하는 녹색채권을 발행하는 기업들은 거의 없고 투자자들도 수익성 문제로 적극적인 투자를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우 CFO는 “녹색금융 투자자들에게 세제혜택 등을 통해 수익을 일부 보전하여 수요를 촉진하고, 기관투자자와 연기금이 녹색금융을 투자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채 수요가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 수요가 높기에 녹색국채의 발행을 확대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석 삼천리자산운용 부사장(CIO)은 “글로벌 투자자들은 탄소 감축효과와 산업 규모가 큰 에너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기후금융이 활성화되기에 재생에너지 보급현황이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창석 부사장은 “국내 신재생에너지의 77%를 차지하는 태양광 설비용량은 정치, 사회적 문제 등으로 2020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이 부사장은 “금융감독원이 태양광을 안정성이 높은 투자자산이라고 입증했으나 산업이 위축돼 투자 기회도 함께 줄었기 때문에 정부는 산업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전했다.
정부와 컨설팅 부문 패널은 중소⋅중견기업이 기후 금융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초점을 맞춰 의견을 제시했다.
이한경 에코앤파트너스 대표는 “중소⋅중견기업들이 탄소 감축을 요구받는 유럽발 무역규제로 인해 기후금융 접근성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며 “해당 기업들이 녹색 여신을 받기 위해서는 자사가 택소노미 적격임을 해석하고 증명해야 하는데, 이를 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한경 대표는 “택소노미 적격성을 대신 평가해줄 수 있는 자문 등의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권유이 금융위원회 산업금융과 과장은 “은행들이 중소⋅중견기업들의 탄소배출량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해당 기업들이 직접 정보를 생산하고 제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산업부 주도로 탄소배출량 정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고, 정책금융의 지원을 긴급한 산업별로 어떻게 제공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유이 과장은 “K-택소노미가 엄격하다는 의견과 중소기업이 이를 기반으로 적격성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하는데, 금융감독원이 녹색여신에 K-택소노미를 적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위해 연말까지 작업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