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존재 목적을 반영한 성명서, 통합보고서 발간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베네핏 코퍼레이션' 형태로의 전환
미국 대기업 CEO 188명을 회원으로 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은 작년 8월 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는 가치선언문(Statement on the Purpose of a Corporation)을 발표했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고객 가치 제공, 임직원 투자, 협력 업체와의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 지역사회 지원, 환경보호, 장기적인 주주 가치 창출’이라는 내용이다. 이 성명에는 제이미 다이먼(JP모건),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팀 쿡(애플), 메리 배라(GM) 등 181명이 서명했다.
1972년 설립된 BRT는 3∼4년에 한 번씩 성명서를 발표해 왔다. 특히 지난 성명서에는 1997년부터 기재됐던 “회사는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이 폐지됐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이었다.
한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실체가 없으며, 기업 이미지를 위한 홍보 수단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5월 23일자 기사에서 기업들이 가치선언문에 따라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하고 CSR을 실천하기 위해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기업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한다. 즉,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정의하고, 부정적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행동 성명을 발표해야 한다. 선임 사외이사, 지배구조위원회가 앞장서 이루어야 하며, 각 기업의 특성에 따른 특수성이 반영되어야 한다.
둘째, 투자자와 이해관계자가 기업의 목적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통합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통합보고서에는 ESG 공시를 위해 사용되는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 Global Reporting Initiativ), 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SASB, 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을 채택해 주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셋째, 새로운 지배구조 형태가 필요하다. 명시적으로 CSR 선언을 언급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기업 공약이나 목표 선언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35개 미국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에서 승인한 영리 법인 유형인 '베네핏 코퍼레이션'(benefit corporation) 형태를 강조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베네핏 코퍼레이션'은 기업의 이익창출과 사회적 책임을 정관에 구체적으로 명시해 CSR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한편, 블랙록과 뱅가드 등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들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끊임없이 기업들에게 CSR 활동을 요구하고 지속가능한 가치를 실천한 기업들에게 우선하여 투자하는 등 투표권의 영향력으로 기업과 시장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
국내에서 '베네핏 코퍼레이션'으로 향해가는 기업은 SK그룹이다. 2017년 기존 정관에 '지속가능한 이윤 창출'이라는 문구를 빼고 '회사는 이해관계자 간 행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문구로 변경했다. SK그룹의 상장 계열사들도 잇따라 기업의 핵심 가치에 '사회적 가치, 행복, 조화'와 같은 키워드를 넣었다. 또한 SK그룹은 2018년 재무제표에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성과로 표시하는 ‘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 시스템을 만들었다. SK그룹은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한 활동을 실천하는 것에서 나아가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고 화폐 단위로 측정해 이해관계자들에게 끊임없이 알리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 이후 전 세계 자본시장을 지배했던 ‘주주 자본주의’가 점점 퇴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들은 이해관계자(stakeholder) 만족을 최우선 경영 목표로 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GM·JP모건·HSBC·엑슨모빌 등은 사회적 책임을 위해 배당 및 자사주 매입 중단을 선언했다.
투자기관이나 자산운용사도 기업들에게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국제기업지배구조연대(ICGN)는 지난달 23일 투자 대상 기업들에 "배당을 늘리기보다 종업원 해고를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주의의 원칙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