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월드, 패션 기업 중 최초로 ESG 채권 발행했으나 실패
1000억원 발행 앞두고 사전 청약에서 10억원 주문받는 데 그쳐

이랜드그룹이 국내 패션업계 최초로 ESG 채권을 발행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픽사베이
이랜드그룹이 국내 패션업계 최초로 ESG 채권을 발행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픽사베이

 

이랜드그룹이 국내 패션 기업 중 최초로 대규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을 발행했으나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ESG 채권 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친환경 건축사업과 소외 이웃 지원에 쓸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투자수요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랜드월드는 이날 오는 17일 2년 만기 최대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10억원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나머지 990억원 중 800억원은 지원사격에 나선 산업은행의 기업 유동성지원기구(SPV)가, 190억원은 주관사와 인수단으로 참여한 KB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이 인수한다. 

이와 반대로, CJ제일제당은 한 달여 전, CJ그룹 계열사 최초로 ESG 채권 발행에 크게 성공해 비교된다. CJ제일제당은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1조1800억원의 자금이 몰렸고, 기관투자가들의 수요를 고려해 3700억원으로 증액 발행했다. 당시 채권 발행 시장의 분위기는 우호적이지 않았는데, 결과는 시장의 예상과 반대였다.

이와 관련해, 증권업계는 CJ제일제당이 일부 회사채를 ESG 채권의 일종인 사회적 채권으로 발행하고, ESG 채권 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 중 일부를 중소협력사를 위한 금융지원에 사용하는 등 사회책임 투자자금을 끌어들인 것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신용등급이 ‘AA’로, 10단계로 나눠진 회사채 ‘투자 적격’ 등급 중 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등급에 속한 것도 큰 몫을 했다. 

 

낮은 신용등급과 부정적인 시장 환경이 영향 미쳐

이랜드월드의 채권 발행 실패를 두고, 채권 발행 시장 환경이 부정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먼저, 지난 9월 이후 국고채 금리가 크게 뛰면서 채권 중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회사채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기업들의 신용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인 회사채 스프레드(국고채와의 금리 차이)는 올 초 31bp(1bp=0.01%포인트) 선에서 이달 3일에는 51.3bp까지 확대돼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예정된 추가 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의 신용 위험이 불거진 상황이었다.

또한 ‘BBB’로 낮은 신용등급이 발목을 잡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랜드월드가 속한 BBB 등급은 회사채 투자 적격 등급 중 밑에서 두 번째로 낮은 등급이다. 이에 이랜드월드가 금리를 연 4.5~5.5%로 높게 제시해 증권사 개인투자자들의 수요를 노렸지만, 최근 몇 년간 실적 악화에 시달린 것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해 개인투자자들의 인기를 끌지 못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랜드월드는 앞으로 SPV의 지원이 끝나기 전에 회사채를 발행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본시장과 소통하면서 지속적인 자금 조달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랜드월드 관계자는 “단계적 일상 회복과 보복 소비 심리로 수익성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면서 “비효율 사업을 털어내고 대대적으로 사업부 개편을 해온 만큼 내년에 본격적인 반등세가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녹색금융 촉진 특별법(녹색금융촉진법)’이 조기 제정됐다면, 이랜드월드의 ESG 채권 발행이 이 정도로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녹색금융촉진법이 저탄소・친환경 기업의 금융지원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만큼, 증권업계의 ESG 채권 투자 시 세제 혜택이 있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현재 금융 및 증권업계는 녹색금융촉진법이 통과되면, 금융사의 녹색 금융 촉진을 위한 새로운 전략・목표・이행계획 수립과 금융상품 개발 등 의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녹색 금융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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