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면서 많은 상(Award)을 받았다. 물론 내가 받은 게 아니라 회사나 CEO가 받은 상이지만. 존경 받는 기업, 일하기 좋은 기업,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머큐리 어워드(Mercury Award), 투명경영대상, 금탑산업훈장, 대한민국 CEO 대상…. 어떤 상은 모종의 ‘협찬’이 수반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상은 상금을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상은 경영실적이나 성과가 좋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일 뿐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언론사나 협회에서 주는 이런 상들은 쉽게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받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꾸준히 실적과 성과를 축적하고 회사의 리소스를 동원해 적기(適期)를 노려 공략하면 웬만한 상은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전력투구를 했지만 유일하게 받지 못한 상이 있다. 세계적인 경제채널인 CNBC에서 아시아 11개국 최고 경영자를 선발해 시상하는 아시아비즈니스 리더스어워드(Asia Business Leaders Awards, ABLA), 번역하면 ‘아시아 최고경영자 대상’ 정도. 우리 CEO가 후보에 추천(Nominate)되었다는 주최측의 연락을 받고 검색해보니 국내에선 상을 받은 CEO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명예로운 상이기도 했다. 얼굴 보기도 쉽지 않는 CEO를 설득해 CNBC 관계자와 인터뷰도 하고, 방대한 분량의 자료도 제출하고 수상 소식만 기다렸다. 하지만 보기 좋게 물을 먹었다.
무모한 도전! DJSI World 지수
ABLA 못지 않게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처음 임원이 되고 목표관리(MBO) 성과 목표를 설정하는데, 실무자가 들고 온 ESG 목표를 보고 호기를 부렸다. 그 때만 해도 생소했던 DJSI 평가점수를 전년 대비 120%로 높이자고 한 것이다. 실무자가 깜짝 놀라면서 “그러면 아마 성과급 못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만만치 않았다. 아니 거의 불가능했다. 기본적으로 상대평가라서 나만 잘한다고 점수가 오르는 게 아니었다. 나보다 경쟁기업들이 더 잘 하면 오히려 평가점수는 하락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DJSI 평가기간이 되어 평가항목을 하나씩 따져보니 단기간에 점수를 높일 수 있는 건 이미 다 했고,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중장기적인 과제로 추진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무식한 질문. “왜 우린 처음부터 월드(World)에 도전하지 않고, 아시아(Asia)도 아닌 코리아(Korea)지수에 편입되어 있냐?”고 물었더랬다. ESG 평가점수보다 우선 시가총액이 적어 대상이 안 된다는 것도 모르고….
목표가 바뀌었다. 코리아 지수에 편입되어 있어도 평가점수는 월드 지수 평균을 넘어서자고. 점수를 올리기 위해 비용은 들지 않고 경영진에게 보고하고 재가만 받으면 되는 일부터 시작했다. 나아가 경영진들이 민감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지배구조도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투자가 수반되는 환경관련 사항도 3~4년의 시간을 두고 추진했다. 그 결과 어떤 항목은 월드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총점 기준으로는 월드 평균에 근접하긴 했어도 넘어서지는 못했다.
ESG 평가점수를 잘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ESG를 잘 한다는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점수를 높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면서 깨달은 건 ESG 경영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기업은 아무리 노력해도 높은 평가점수를 받기가 쉽지 않고, 반대로 ESG 경영시스템이 잘 갖춰진 기업이라면 높은 평가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ESG평가 점수도 ESG를 잘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ESG 원년 기업들의 성적표는?
“ESG 원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ESG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 한 해여서 올해는 국내외 주요기관의 평가결과도 어떻게 나왔을 지 궁금했다. 물론 많은 기업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인 ESG 경영을 추진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평가의 5할 이상은 내년에 반영되는 게 맞다. 그래도 많은 유의미한 변화가 눈에 띄었다.
며칠 전 발표된 2021년 DJSI 평가결과를 보니 DJSI 월드 지수에 편입된 회사가 21개로 지난해보다 4개가 늘었다. 특히 월드 지수에 신규로 편입된 회사가 6개나 됐다. SK텔레콤이나 현대자동차, 현대글로비스, 현대모비스 4개 회사는 평가점수가 높아져서 월드 지수에 편입됐고, 올해 처음 평가에 참여한 카카오와 삼성바이오로직스 2개 회사는 단번에 월드 지수에 편입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우리금융지주, LG이노텍, SK케미칼 3개 회사가 새롭게 평가 참여해 DJSI에 편입된 회사도 45개로 늘었다.
DJSI보다 먼저 발표된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평가등급은 더욱 고무적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7개 평가등급 가운데 세번째로 높은 우수 등급(A)에 포함된 기업이 지난해 92개사보다 10.3%p 높은 171개사로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점수가 높아졌다는 건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각 영역별 평가를 보면 보통(B)과 취약(C)에 포진했던 기업들이 대거 우수(A)와 양호(B+)로 상향 이동한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성적이 저조했던 학생이 마음 잡고 공부를 하면 50점에서 80점이나 90점으로 성적을 올리기는 쉽다. 그러나 90점을 넘는 학생이 1~2점 올리기는 쉽지 않다. 아니 90점대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DJSI 평가점수를 보면서 13년 연속 DJSI 지수에 편입된 회사들에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 하인사님은...
'하인사(hindsight, 필명)'는 뒤늦은 깨달음, 뒤늦은 지혜라는 뜻입니다.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모두 인류의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의미이지요. 하인사님은 대기업 홍보팀에서 20년 가량 일했습니다. 회사의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기획하면서 CSR 업무와 인연을 맺게 됐으며, 회사 CSR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ESG 이슈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고민했습니다. 2021년부터 <임팩트온>에서 【하인사의 이슈리뷰】를 연재, ESG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