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EU에서 쏟아지는 ESG 뉴스를 모두 소화하기가 버거울 만큼, 매일 관련 소식이 많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는 ESG 뉴스 중 이전과는 다른 흐름이 있어, <임팩트온>에서 계속 기사화하고 있는데 바로 ‘ESG의 정치화’에 관한 소식이다.
미 텍사스주를 포함한 4개주에서 공화당 의원들 주도로 ‘반ESG’ 혹은 ‘ESG금지’ 법안이 제안되거나 승인됐다. 텍사스주가 가장 선봉에 있는데, 석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주법(state law)인 ‘에너지 차별 철폐법’을 통과시키고, 지난 11일(현지시각) 글렌 헤거 감사원이 19개 자산운용사에 “보이콧한 에너지 기업에 대해 해명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블랙록, Abrdn, BNP파리바, 도이체 은행, JP모건, 노르디아은행, 슈뢰더, 스미모토 미쓰이, 스웨덴은행, UBS, 웰스파고 등 대형 자산운용사는 대부분 편지 리스트에 포함돼있다.
이번 주에도 아이다호 하원에서 “ESG 표준과 등급점수를 사용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미국 헌법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입법 절차를 방해한다”고 주장하며 ESG금지 법안을 통과시킬 전망이다. 이 제안은 ESG표준으로부터 아이다호주와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부의 위원회가 관련 법안을 작성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ESG 표준이 타깃인지는 명확치 않지만, 11월에 권고안을 제시하겠다고 한다.
와이오밍에서는 금융기관들이 ESG 등급 혹은 ESG 메트릭스를 사용해 투자를 결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위원회를 통과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나머지 웨스트 버지니아, 캔자스 등 많은 주에서 이런 유사한 법안 도입에 대한 흐름이 있다.
심지어 웨스트 버지니아의 재무부 투자위원회는 올 1월 고객들을 넷제로 목표를 향해 밀어부치기로 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의 영업허가를 받은 것을 두고 블랙록과의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 라일리 무어 주 재무장관은 지난 1월 17일 “80억 달러의 주 운영계좌에서 블랙록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석탄, 석유, 천연가스에 대한 자금조달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금융기관들과 관계를 끊을 용의가 있는 공화당 주도의 주정부 재무담당들은 15개 주정부 연합체를 결성했는데, 웨스트버지니아는 이 공약을 이행한 최초의 주였다.
심지어 민주당 출신 주지사가 있는 애리조나주의 검찰총장은 지난 3월초 60조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의 투자자그룹 이니셔티브인 ‘기후행동 100+(일명 Climate Action 100+)’에 대해 잠재적인 불법 시장 조작은 없는지 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마크 브르노비치(Mark Brnovich) 검찰총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오피니언에 기고를 통해 “ESG가 독점금지 위반일 수 있다”고 경고하며, CA100+가 ‘공조화된 음모(coordinated conspiracy)’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두 명 이상의 주주들이 불공평하거나 부적절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조정하기 위해 ‘합심해서 행동’할 경우, 엄격한 제재 규정이 있는데, CA 100+가 이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주에서는 정반대의 법안이 통과됐다. 캘리포니아의 초대형 연기금인 캘퍼스(CalPERS,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과 캘스타스(CalSTRS,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에 대해 화석연료 보유를 포기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심지어 하트랜드연구소(Heartland Institute)에서는 ‘Stopping ESG(ESG금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연구소는 ESG반대 법안 도입을 추진하고, 각 주의 입법위원회에서 ESG 반대 증언을 앞장서고 있다. 이 연구소의 홈페이지에는 미국 24개주에서 제안돼있거나 통과된 ESG반대 법안에 대해서도 공표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친ESG’와 ‘반ESG’ 목소리가 높아지면, 결국 괴로운 건 투자자와 자산운용사들이다.
당장 블랙록만 해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블랙록은 텍사스주에 긴급히 경영진을 파견해 관련 규제당국을 만났는데 이와 관련해 싱크탱크인 인플루언스맵은 최근 정보공개를 요청해 관련 이메일을 폭로했다. 텍사스의 석유 및 가스 관련 규제기관 대표는 관련 이메일에서 “블랙록의 ESG 이니셔티브가 언론에 의해 잘못 전달되었으며, 블랙록은 석유와 가스 산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고객들의 수요 때문에 ESG에너지 관련 투자를 제공하고 있을뿐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블랙록의 래리핑크 회장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정치에 관한 것이 아니요, 사회적이거나 이념적 어젠다가 아니다”라는 CEO 편지 또한 미 내부의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문구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하는 SEC(증권거래위원회)는 기후공시 의무화를 도입할 전망이다. 미국 내 논란이 어떤 식으로 커져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유럽연합에서는 최근 며칠 사이에 세계 2위 재보험사인 스위스리, 프랑스 최대 보험사인 악사(AXA)그룹 등이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보험인수를 거절하는 소식이 연일 들려오고 있다. 시장논리에 의해 몇 년 후면 좌초자산이 될 화석연료 기업을 보험사가 더이상 받지 않는다는 건, 기후변화가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수준을 넘어섰음을 의미하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미국의 논란을 보면 이러한 시장논리가 정치적 공방에 뒤섞여 갈지 자를 걷게 될지도 모르겠다. 국내 대선에서 원전이 정치적 논란이 된 것처럼,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 이런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정치가 과학을 압도하면서, 팩트(사실)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낳는 악순환의 길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