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전은 충남 당진시 우강면에 위치한 ‘소들섬’에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주민들이 결성한 시민단체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소사사)’이 송전탑 건설 반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소사사가 제기한 세 가지 주장을 중심으로 소사사, 당진시, 한전 각각의 입장을 살펴봤다. 과연 한전은 법적으로 소들섬에 송전탑을 지을 수 없는 것일까? 이러한 갈등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1978년 제정된 '전원개발촉진접'의 문제, 지자체간 송전탑 지중화의 형평성 등 다양한 쟁점이 담겨있다. 


 

소들섬 송전탑 갈등의 시작

한전은 2008년부터 한 송전탑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는 충남 서북부 지역의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당진시에서 소들섬을 통과해 아산시로 이어지는 총 36km 구간에 345kV의 고압 송전탑 및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송전탑 부지에 포함된 충남 당진시 우강면의 ‘소들섬’은 해마다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찾는 철새 도래지다. 충남발전연구원 생태조사에 따르면 소들섬 일대에는 흰꼬리수리, 수원청개구리, 노랑부리저어새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1~2급 개체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소들섬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소사사의 주장1, “한전은 별도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받았어야 한다” vs. 한전 "2013년 환경부 환경영향평가 통과했다" 

한전은 이 지역에 송전탑을 건설하기 위한 절차로 2013년에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했고, 2015년에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의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을 받았다. 또한 작년 10월에는 당진시로부터 ‘개발행위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철새 도래지인 소들섬 일대에 송전탑이 건설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진시민들은 반대에 나섰다. 주민들은 민간단체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하 소사사)’을 결성했다. 그리고 소사사는 한전이 ‘소규모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사사의 유이계 공동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전이 소규모환경영향평가도 없이 야생생물 보호구역을 파헤치고 있는데도, 책임을 회피하고 환경보존의 사각지대로 만들어 놓은 기후환경과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진시를 비판하기도 했다.

당진시청이나 한전의 입장은 좀 다르다. 당진시청 도시과 개발허가팀의 관계자는 “개발 허가 당시에는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한 사업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 대상인지는 검토하지 못했다”고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한전의 경우 이 사안은 2013년 이미 환경부 평가 통과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는데, 정종선 금강유역환경청장은 지난 10월 11일 국감 질의에서 "개별 송전탑의 진입도로 등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해당 사항에 관한 평가는 한전이) 이미 환경영향평가에 포함돼서 받았다"라고 말했다.  

소사사의 주장2, “당진시는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을 근거로 한전의 공사를 제한해야 한다” vs. 한전 "야생동물 보호구역 지정은 공사 이후라, 소급적용 안돼"

소사사의 김영란·유이계 공동대표는 당진시의 공사 허가 직후인 작년 10월부터 당진시청 앞에서 102일간 천막을 치고 시위했다. 시위의 주된 내용은 소들섬 일대를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1월 28일, 오랜 시위 끝에 환경부는 소들섬을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소사사의 김영란 공동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1월 28일 삽교호 소들섬과 인근이 야생생물보호구역 지정되었다”라며 "당진시는 야생생물보호법에 의거해 행위제한과 출입제한 등의 행정명령을 발동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송전탑 건설은 중단되지 않았다.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의 시점이 공사 허가 이후였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절차가 끝난 후의 뒤늦은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으로는 당진시가 한전에게 공사 중지를 요구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어떤 지역이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의 이용·개발 등이 제한된다. 따라서 애초부터 소들섬이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더라면 한전이 송전탑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인허가를 거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들섬은 한전이 공사를 위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서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이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당진시청 기후환경과 환경정책팀 관계자는 “행정법의 신뢰보호원칙에 따라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을 소급 적용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신뢰보호원칙’이란 행정기관이 발한 행정작용에 대한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이번 사례에 적용해보면, 관련 행정기관들의 인허가를 거치고 이에 따라 사업을 계획·추진한 한전의 신뢰를 보호해줘야 한다. 따라서 뒤늦게 지정된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을 근거로 당진시가 한전의 공사를 중지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편 한전의 관계자도 이에 관련한 인터뷰에서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의 경우 소급 적용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철탑 공사에는 문제가 없다”라고 밝히며 당진시청의 관계자와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소사사의 주장3, “한전은 당진시의 공사중지명령에 관한 법원의 판단으로 인해 철탑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 vs. 한전 "공사중지명령은 철탑이 아니라 진입로와 야적장이다"

지난 3월 30일 당진시는 야생생물 보호대책을 마련하고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한전에 공사중지명령을 내렸다. 이에 한전은 법원에 당진시의 공사중지명령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이와 함께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즉 한전은 당진시의 공사중지명령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소송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공사중지명령의 집행을 멈춰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본안소송(취소소송)의 1심 판결은 올해 11월 23일에 내려질 예정인 한편, 지난 4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1심에서 대전지방법원은 신청을 인용했다. 즉 본안판결 전까지는 한전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5월의 2심에서는 대전고등법원이 신청을 기각했다. 이어서 지난 8월 대법원은 해당 사건이 상고의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2심에 대한 한전의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처분을 내렸다.  

이에 따라 소사사는 한전이 철탑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심에서 공사중지명령에 대한 한전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고, 이에 대한 한전의 상고도 기각됐기 때문이다. 즉 소소사의 주장은 11월의 본안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전이 당진시의 공사중지명령에 따라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철탑 공사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이에 관해 소소사의 김영란 공동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한전은 소들섬 일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든 공사를 중단하고 본안소송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라며 “한전에 대해 당진시가 별도로 공사중지명령을 내리고 고발 조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당진시청 도시과 개발허가팀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당초에 당진시가 내린 공사중지명령은 ‘철탑’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진입로 및 야적장(공사자재 등을 쌓아두는 곳)’에 관한 것이었다. 즉 당진시의 공사중지명령이 철탑 공사에 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전이 철탑 공사를 한다고 해서 공사중지명령을 어기는 것이 아니므로 당진시가 고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진시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2심 결정 후 공사를 중지하지 않는 한전에게 고발을 검토하였으나, 고문변호사 네 분의 공통의견은 '침익적(이익을 침해하는) 처분'의 경우 엄격하게 법령을 해석해야 하는데, 야적장 및 진입로를 조성하는 공사가 아닌 철탑 공사를 위해 단순히 이동하고 자재를 적치하는 행위는 공사중지에 해당되지 않아 고발할 수 없다는 자문을 받았다”라며 “따라서 산자부에서 승인을 받아 철탑 공사는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사중지를 위반하지 않는 한전에 대해 추가적인 조치는 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당진시청 관계자는 진입로와 야적장 공사에 관해 “한전은 가처분 신청 1심을 승소한 후 진입로와 야적장에 대한 공사를 마무리했다”라고 말했다. 즉 3심 시점에서는 공사중지명령의 대상인 공사가 이미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한편 한전의 관계자는 이와 관련된 질문에서 “철탑 부지는 정부에서 승인해준 것이며, 공사중지명령은 철탑 부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철탑 부지까지 가는 진입로와 재료 적치장에 대한 것이었다”라며 당진시 측과 동일한 답변을 내놓았다.

 

한전 관계자, “지중화 불가능한 이유는 지자체 간 형평성 문제”

한전이 소들섬에서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소들섬의 생태적 가치를 완전히 무시해버릴 수도 없다. 송전탑을 지으면서 소들섬의 생태계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방법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지중화’다.

지중화는 송전선로를 지하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들섬에서 지중화가 이루어지면 송전선로가 지하에 깔리게 되므로 지상에 철탑을 지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소소사를 비롯한 주민들은 이전부터 계속해서 지중화를 요구해왔다. 소소사의 김영란 상임대표는 지난 9월 ‘당진시 야생생물 보호구역 관리위원회’에서도 한전에 지중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한전은 보도자료를 통해 송전선로를 지하화하려면 1km당 300억원이 추가로 들어, 총 3.3km인 소들섬 구간에는 약 1000억원 가량의 추가적인 공사비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한전 관계자의 입장을 직접 들어본 결과, 지중화가 어려운 주된 이유는 비용 문제가 아니라 ‘지자체 간 형평성 문제’였다.

한전 관계자는 “송전탑의 지중화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며, 이미 당진시 구간의 송전선로 6km를 지중화한 상황에서 비용 문제로 지중화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한전 관계자는 “철탑이 당진시에는 27개, 아산시에는 45개가 있는데 당진시는 약 6km가 지중화된 반면 아산시는 지중화가 제로(zero)”라며 “당진시에서 삽교호(소들섬이 위치한 호수)에서 그 반대편(아산시)을 보면 그곳에도 철새들이 있지만 이미 철탑이 다 들어섰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들섬 구간까지 지중화를 하게 되면 당진시와 아산시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당진시청 관계자, “70년도 제정, 현 시대 반영 못하는 전원개발촉진법 개정 필요해”

그렇다면 한전이 공사를 위해 수많은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갈등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관해 당진시청 도시과 개발허가팀 관계자는 “70년도 개발시기에 만들어져 현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원개발촉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한전이 2015년에 거쳤던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른 산자부의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이 실질적으로 너무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진시청 관계자는 “전원개발촉진법은 산자부의 승인이 나면 기타 사항들도 허가 받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너무도 미약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전원개발촉진법이 ‘인허가 의제’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허가 의제란 민원인이 불필요한 절차를 중복적으로 거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된 인허가를 받으면 다른 법규에 따른 인허가 등도 함께 받았다고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민원인은 주된 인허가를 받으면 관련된 다른 인허가도 모두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즉, 민원인이 전원개발촉진법상 산자부의 승인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당진시와 같은 지자체의 개발행위 허가도 받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지자체가 환경 보호 등을 이유로 개발행위 허가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진시청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어떤 법도 전원개발촉진법처럼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법은 없다”라며, “지방자치단체의 법률적인 한계 및 권한 부족으로 인해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다”라며 관련 조항 변경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전원개발촉진법이 제정되던 1978년 무렵에는 정부가 국가적으로 개발을 주도하던 시기였지만, 현재 개발만큼 환경 보호도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전원개발촉진법에서 다른 법률의 인허가를 의제하는 상황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제기한 것이다. 


김병희 그린워싱 탐사대 청년기자 

김병희 청년기자(유세이버스 15기)는 연세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환경정책과 그린워싱, ESG 경영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올바른 정책, 기업의 올바른 경영, 소비자의 올바른 인식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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