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팜은 비영리단체이기도 하지만 영국 전역에 700개가 넘는 채리티숍(Charity Shop)을 운영한다. 영국에선 동네마다 2~3개의 옥스팜이 있다. 불필요한 중고물품을 기부하고, 기꺼이 구매하는 생활이 매우 보편화돼 있다. 1948년에 세워졌으니, 무려 80년의 ‘당근마켓’ 역사가 있는 셈이다.
옥스팜 자체 브랜드 제품도 판매하는데, 이 때문인지 일찌감치 공정무역(Fair Trade)을 시도해 왔다. 공정무역이란 물품을 조달해 오는 개발도상국의 소농가에 제값을 주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이러한 정신은 현재 EU의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에 녹아 있다.
레이첼 윌쇼(Rachel Wilshaw) 노동자 인권 선임 매니저 인터뷰
기업 인권 관련 캠페인을 전담해 온 레이첼 윌쇼(Rachel Wilshaw)는 옥스팜 캠페인의 ‘산 증인’이다. 1987년부터 옥스팜에 입사해, 무려 36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그녀에게 공급망 인권 실사에 대한 현장 뒷얘기를 들어봤다.
Q. ‘비하인드 더 브랜드(Behind the Brands)’ 캠페인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하는데, 어떤 형태였는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했던 캠페인이다. 톱 10위 글로벌 식음료기업(Unilever, Nestle, Coca-Cola, Kellogg’s, Mars, Mondelez, General Mills, Pepsico, Danone, Associated British Foods)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토지, 여성, 농민, 노동자, 기후변화, 물, 투명성 등 총 7개 평가항목으로 지속가능성을 평가해 대중에게 점수표를 공개했다.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경쟁을 유도한 셈이다. 경쟁업체에 뒤지기 싫었던 기업들이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캠페인 말미에는 모든 기업의 지속가능성 관리 수준이 높아졌다. 커다란 성공이었다. 기업 지속가능성 평가를 하는 캠페인 모델이 유행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Q. ‘비하인드 더 바코드(Behind the Barcode)’ 캠페인은 후속 캠페인인가.
그렇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됐다. 유럽의 주요 유통업체(Tesco, Sainsbury’s, Asda/Walmart, Morrisons, Aldi UK and Lidl UK)들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했다. 주로 ‘투명성과 책임성, 생활임금(Living wage), 계약(Contracts)’ 등의 소셜이슈를 평가했다.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임금’ 분야였다. 개발도상국의 근로자들이 법적인 계약 관계를 통해 최저임금은 보장받는지, 소규모 농가의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받는지, 임금은 정해진 주기에 따라 지급되는지 등이었다.
Q. ‘공정무역 이니셔티브(Ethical Trading Initiative, ETI)’에서도 역할을 해왔는데, 이런 이니셔티브의 역할은 무엇인가.
기업, 노동조합(Trade Unions), NGO 이렇게 3자 협력기구다. 수많은 NGO와 노동조합이 멤버로 참여했기 때문에 영향력이 매우 큰 곳이다. ETI와 같은 다자간 이해관계자 협력기구를 통해, 기업 인권분야 개선을 할 때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포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NGO는 캠페인을 통해 기업의 드러나지 않은 인권 문제를 논의하고, 노사관계를 중재하는 가교역할을 맡는다. 기업은 NGO, 노동조합과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수립해 공급망 현지의 인권실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게 된다. 노동조합의 경우, 국제 이니셔티브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와 요구를 더 잘 반영시킨다.
Q. 옥스팜의 ‘비하인드 더 바코드’와 같은 캠페인은 기업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많은 이들이 캠페인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공적인 캠페인은 기업의 정책과 행동을 극적으로 바꾼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캠페인을 통해 기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옥스팜은 ‘비판적 친구(Critical Friend)’ 접근방식을 쓰고 있다. 이는 ▲기업 내부의 구성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기업이 잘하는 점과 개선할 점을 지적하고 ▲기업이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협력하는 것이다.
Q. ‘비판적 친구’ 접근방식은 일반적인 파트너십과 어떻게 다른가.
파트너십은 양측이 이익 관계로 묶여있기 때문에, 변화를 위한 행동을 제언하는 데 제한이 따른다.
옥스팜과 유니레버가 ‘비판적 친구’의 좋은 사례다. 옥스팜과 유니레버의 베트남 호치민 인권실사 모니터링을 위해 맨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현지 노동자들과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옥스팜이 베트남의 인권문제를 부각해서, 대중들의 비판을 끌어내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시간을 보내며, 옥스팜이 현지의 노동인권을 개선하려 한다는 진심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인터뷰할 때도, 유니레버나 협력사 관계자가 아무도 없는 환경을 조성한 이후 심층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인권 이슈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행동도 제언했다.
Q. 옥스팜과 유니레버의 신뢰가 20년 동안 쌓여온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옥스팜에서 유니레버의 공급망 인권 관리체계에서 부정적인 부분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옥스팜은 이에 대한 언론 플레이나 대중 캠페인을 하지 않고, 유니레버가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기존 NGO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형태의 깊은 관계를 기업과 맺을 수 있었다.
Q. 개발도상국에서 인권 실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현지 근로자 인터뷰를 매우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뷰할 때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관리자의 눈 밖에서 근로자의 인터뷰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되도록이면 직장 밖 다른 장소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통역사를 동반해 공장 내 시설에서 인터뷰를 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직원들은 불편함을 느껴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성추행 경험과 같은 민감한 질문은 인터뷰 장소나 인원 등의 요인이 매우 중요하다.
익명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채널을 알려주는 방법도 좋다. 익명성 보장은 근로자와의 신뢰 형성 및 권리 보호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터뷰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옥스팜에서도 여러 방법을 시도해 왔는데, 여성과 남성을 분리해 인터뷰를 수행하거나, 비슷한 경험이나 이슈를 겪은 인원들과 그룹 인터뷰를 하는 등 여러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Q. 기업에서는 인권 리스크를 파악했더라도, 이를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비용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업종 내에서 인권 분야의 개선을 원하는 ‘타깃 기업’이 있을 수 있다. 인권 분야의 리더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권 관리의 필요성을 지니고, 개선 의지를 보이는 기업들이 있다. 이러한 기업들과 협력해 인권 관리의 모델 케이스를 만들고, 이를 부각시키는 방법이 있다. 인권 관리를 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별점이 보이도록 부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동종업계의 다른 기업들도 따라올 수밖에 없는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Q. 선도 기업들의 경우 인권관리 체계를 갖추기 위해 핵심적으로 중요시하는 과정이 무엇인가.
기업의 중대인권이슈(Salient Human Rights Issues)를 도출하고 리스크를 분석해야 한다. 인권영향 평가를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기업의 공급망 가치사슬 내의 인권상황은 어떻고, 주요 인권 이슈는 무엇인지,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심층 분석하는 것이다.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NGO는 개발도상국 현지에서 더 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 인권 분야에서 심층적인 리스크 분석의 강점이 있다.
레이첼은 마지막으로 “공급망 인권 분야에 관심을 갖는 초창기 기업은 감사(audit)에 집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방식보다는 인권 분야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근본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단계가 온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진행(옥스퍼드)=박란희 대표 & 편집장
정리= 송선우 editor
☞2023 옥스팜Ⅹ임팩트온 ESG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글로벌 기업, 인권실사 어떻게 대응하나(유니레버와 옥스팜 사례를 중심으로)
일시: 2023년 9월 14일(목) 오후 2시~5시
행사안내: https://www.oxfam.or.kr/esg-conference-2023/
신청페이지: 컨퍼런스 참가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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