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증권시장청(ESMA)이 29일(현지시각)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의 감독 원칙을 담은 공식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가운데, 투자상품 명칭에 ESG 관련 용어를 사용하는 데 대한 집행 방식은 유럽 각국 금융감독당국 간에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2025년 5월부터 기존 펀드에도 ESG 펀드명 가이드라인이 적용되기 시작함에 따라, ‘그린워싱’에 대한 사후 감독 기준이 국가별로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공시정보 감독 기준 공식화…“투자자 관점에서 실질성 점검”
ESMA는 이날 ‘지속가능성 정보 집행 가이드라인(Guidelines on Enforcement of Sustainability Information, GLESI)’을 발표하고, 각국 감독당국이 기업이 보고한 ESG 정보의 적절성, 일관성, 비교가능성을 감독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2025년 1월부터 시행되며, CSRD 및 회계지침에 따라 공시된 ESG 정보에 대해 감독당국이 어떻게 점검·조치할 것인지를 명확히 제시한 것이다.
특히 ESMA는 Scope 1·2·3 온실가스 배출량, 기후 리스크, 공급망 인권 등 핵심 항목이 성실히 공시되었는지를 점검하고, 중대한 정보 누락이나 왜곡은 감독 조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부정확한 공시를 확인할 경우, 재공시(reissuance), 정정 공시(corrective note), 과거 수치 재작성(restatement) 등을 요구하는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했다.
특히 회계기준 및 지속가능성 공시가 결합된 구조에서, 중대한 허위공시나 누락은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는 신용등급 하락, 자금조달 비용 증가, 투자자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 실질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지속가능성 공시를 단순 보고가 아닌 감독 대상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는 점에서, 향후 ESG 공시의 신뢰성과 법적 책임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펀드명 규제는 ‘벌금형’부터 ‘대화 유도’까지…각국 대응 온도차
반면, 이미 지난해 발표된 ‘ESG 관련 용어 사용 펀드명 가이드라인’에 대해 각국 감독당국이 어떤 방식으로 집행할지에 대해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기존 펀드가 해당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시한인 2025년 5월이 되면서, 일부 국가는 행정처분 및 벌금 부과까지 명시한 반면, 일부 국가는 ‘대화’ 중심의 유연한 감독 접근을 예고했다.
오스트리아는 가이드라인 위반 시 최대 6만유로(약 8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고, 노르웨이, 크로아티아, 벨기에, 스페인 등은 위반 정도에 따라 시정명령 또는 행정 제재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리투아니아, 리히텐슈타인도 기존 법령 내 제재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반면 룩셈부르크,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독일 등은 감독당국과 펀드매니저 간의 ‘대화 채널’을 통해 자율 시정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독일 금융감독청(BaFin)은 “펀드명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벌금이 부과되지는 않는다”고 밝히며, 사안별 판단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에스토니아, 핀란드 등은 별도의 감독 방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번 ESMA의 공식 가이드라인은 기업 대상 공시에 대해 집행 기준의 통일과 강화 방향을 제시한 반면, 펀드명 가이드라인에 대한 국가별 해석과 대응은 여전히 분화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감독당국 간의 접근 차이는 향후 ESG 규제의 집행 일관성과 시장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지난 3월 일부 ESG 펀드명을 변경하며 해당 가이드라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바 있다. 감독당국의 집행 방식과 별개로,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해 자발적으로 명칭 변경에 나설 가능성도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