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부동산 투자사들이 ‘넷제로’를 공개적으로 약속했지만, 실제 이행에서는 절반 이상이 최소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물의 건설·운영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자산운용사의 소극적 대응이 투자자와 기후 모두에 중대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책임투자 캠페인 단체 셰어액션(ShareAction)은 13일 발표한 첫 번째 부동산 운용사 벤치마크 보고서에서 16개 글로벌 부동산 투자사의 기후대응 성과를 평가했다. 이들이 운용하는 비상장 부동산 자산 규모는 2024년 기준 1조6600억달러에 달해 뉴욕시 전체 부동산 시장 가치와 맞먹는다.
건물 배출, 글로벌 3분의 1 차지…16곳 중 단 1곳만 공시 기준 충족
셰어액션의 에이든 실슨-토마스 선임 리서치 매니저는 “건설 및 건물 운영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는 운용사들이 반드시 재무 리스크로 인식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동산 산업의 규모를 고려할 때 운용사들의 책임 있는 기후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평가 대상 16개사 가운데 12개 공시 기준을 모두 충족한 곳은 덴마크의 노르딕부동산파트너스(NREP) 한 곳뿐이었다. 6곳은 7~9개 항목을 충족했고, 나머지 9곳은 5개 미만에 그쳤다. 특히 블랙스톤(Blackstone), 스타우드캐피탈그룹(Starwood Capital Group), 그레이스타(Greystar) 등은 단 하나의 기준도 충족하지 못했다.
다만 긍정적 변화도 감지된다. 13개 기업은 2050년 또는 그 이전까지 넷제로 달성을 약속했으며, 하임스타덴(Heimstaden)도 조만간 목표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평가 자산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블랙스톤과 스타우드캐피탈그룹은 여전히 목표를 내놓지 않았다.
넷제로 목표를 공표한 13곳 모두가 ‘임대주 운영 배출량’을 포함했지만, 캐피타랜드(CapitaLand), 브룩필드(Brookfield) 등 4곳은 ‘세입자 운영 배출량’을 제외했다. 이는 공장·오피스 건물의 경우 세입자 에너지 사용이 전체 배출의 90% 이상(공장), 55% 이상(오피스)을 차지한다는 글로벌 부동산사 JLL의 분석과 괴리를 보인다.
또한 8곳은 건설 자재 채굴·생산·운송·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기 내재 탄소배출량을 산정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는 건물 관련 배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항목이다.
중간 목표 설정도 미흡하다. 6곳은 중간 목표 자체가 없었고, 중간 목표를 제시한 곳도 포트폴리오의 절반 수준인 평균 49%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16개사 중 6곳만이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의 검증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5곳만이 넷제로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ZAM)에 가입했다. 다만 NZAM은 2025년 초부터 내부 검토를 이유로 회원사 목표 검증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배출량 공시 누락 심각…‘넷제로’ 신뢰성 흔들려
목표 설정뿐 아니라 온실가스와 에너지 사용 공시에서도 취약점이 드러났다. 블랙스톤, 그레이스타, 라살 투자운용(LaSalle Investment Management), 파트너스그룹(Partners Group), 프레이미아 REIM(Praemia REIM), 스타우드캐피탈그룹 등 6곳은 기업 운영 외 활동 배출량과 에너지 데이터를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ESR그룹, 브룩필드, 캐피타랜드는 일부만 공시했으나 세입자 배출, 탄소·에너지 집약도 등 핵심 지표는 누락됐다. 직접 보유 자산의 스코프 1·2·3 배출량과 에너지 집약도를 임대주·세입자 기준 모두에서 공시한 기업은 7곳에 불과했으며, 신축 개발의 초기 내재 탄소까지 공개한 곳은 NREP뿐이었다.
자산별 탈탄소 전략 공개도 제한적이다. 7곳만이 감사 절차, 투자 비용 추정 방식 등을 포함한 체계적 접근을 밝히고 있었으며, 구체적 수치 기반 정보를 제시한 곳은 NREP, 파트리치아(Patrizia), 세빌스 투자운용(Savills Investment Management) 등 3곳뿐이었다.
실슨-토마스는 “일부 운용사는 기후 대응에 의지를 보이지만, 대다수의 무관심이 부동산 산업의 넷제로 전환을 늦추고 있다”고 경고했다.
셰어액션은 모든 부동산 운용사에 12개 기후 공시 기준을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주요 항목은 ▲모든 배출 범위를 포함한 넷제로 목표 수립 ▲포트폴리오 전체를 대상으로 한 중간 목표 설정 ▲운영 및 내재 탄소 정보 공개 ▲세부 에너지 집약도 수치 공시 등이다.
보고서는 또한 자산 보유자(Asset Owners)들이 운용사의 기후 대응을 적극 감시해야 하며, 개별 펀드 단위가 아닌 전체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