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식품·농업 산업이 ‘탄소 데이터의 국제 표준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지속가능성 플랫폼 하우굿(HowGood)이 자사 데이터 시스템을 ‘탄소 투명성을 위한 파트너십(Partnership for Carbon Transparency, 이하 PACT)’ 표준에 맞춰 업그레이드했다고 4일(현지시각) 지속가능미디어 트렐리스가 밝혔다.
전 세계 기업들이 제품 단위 탄소 발자국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 점점 속도를 내고 있어, 향후 소비자들은 식품 포장에 표시된 탄소 배출량을 더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전망이다.
글로벌 기업 100여곳 참여… "탄소 데이터, 이메일 주고받듯 간편"
이번 프로젝트는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가 주도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PACT는 기업별·산업별로 제각각이던 탄소 발자국 계산 방식을 통일하고, 상호 운용 가능한 글로벌 표준 데이터 포맷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 간 탄소 정보의 ‘언어장벽’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PACT에 따르면, 현재 기업들은 탄소배출량 계산 방식은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A기업은 생산 공정까지만 계산하고, B기업은 원자재부터 폐기까지 계산하다보니, 탄소배출량 비교나 공급망까지 포함할 경우 기준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PACT는 이런 상황을 이메일로 비유한다. 즉, 이전에는 각 회사가 자기만의 이메일 시스템을 써서 서로 메일이 안 통했지만 지금은 모든 이메일이 서로 호환되듯이, 제품별 탄소 데이터도 같은 포맷으로 이메일을 주고받듯 간편하게 전송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PACT의 방법론은 일명, 탄소데이터 공유를 위한 '회계 기준서'에 해당하는 셈이다. 현재 이 표준(PACT Specification)을 도입한 기업은 프록터앤드갬블(P&G), 도요타, 마스터카드, EY, 딜로이트 등 100여 곳에 달한다.
또한 SAP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표준을 자사 소프트웨어 솔루션에 내장해, 기업이 내부 ERP(전사자원관리) 시스템에서 탄소 데이터를 자동으로 교환할 수 있게 했다.
하우굿, 식품 데이터 9만개 공개… 식품 부문 최초 합류
이번에 PACT 표준에 합류한 하우굿(HowGood)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식품·농업 분야 지속가능성 데이터 플랫폼 기업이다. 전 세계 식품 제조사와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원재료의 환경영향, 탄소배출, 토양 및 수자원 사용량 등을 평가해주는 서비스로, 현재 약 70개국 60만 개 식품 제품의 지속가능성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하우굿은 최근 9만여 개의 농업 및 식품 관련 배출계수(Emission Factor)를 PACT 표준에 맞춰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데이터는 식품 제조사나 유통기업이 각 제품의 ‘탄소 발자국’을 계산할 때 직접 사용할 수 있다.
하우굿의 고객사 중에는 미국 대형 유통그룹 아홀드 델하이즈(Ahold Delhaize)가 포함된다. 이 회사는 푸드라이언(Food Lion)과 자이언트 푸드(Giant Food) 등 2000개 이상의 슈퍼마켓 체인을 운영하는 유통 대기업이다. 아홀드 델하이즈의 환경 담당 부사장 그랜트 스프릭(Grant Sprick)은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을 보다 세밀하게 측정하고, 저탄소 제품을 더 쉽게 식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탄소 데이터가 비즈니스 지표로 자리잡을 것”
하우굿의 최고제품책임자 니나 드팔마(Nina DePalma)는 “PACT는 탄소 발자국 데이터를 기업의 핵심 경영 지표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이제 지속가능성 데이터도 매출, 비용, 재고처럼 IT시스템이 관리해야 할 ‘비즈니스 데이터’가 됐다”고 말했다.
PACT 프로젝트를 이끄는 나아마 아브니-카도시(Naama Avni-Kadosh)는 “이제 식품과 농업 부문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도 협력 네트워크를 확장 중”이라며 “기업들이 PACT 데이터를 연구개발(R&D), 조달, 전략 수립 등에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 움직임은 ‘탄소 정보의 표준화’가 ESG 경영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각자 방식으로 탄소 배출을 계산해 비교가 어려웠지만, PACT 표준이 확산되면 ‘탄소 데이터의 국제 언어’가 통일된다.
특히 식품·농업처럼 공급망이 길고 복잡한 산업에서는, 이러한 데이터 통합이 실질적 감축 경쟁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즉, 앞으로는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공개하느냐”보다 “누가 더 신뢰할 수 있고 비교 가능한 데이터를 제공하느냐”가 새로운 ESG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