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에선 샤넬 오픈런 체험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오픈런’은 말 그대로 개장시간 이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매장 오픈과 함께 달려가는 것을 뜻한다. 코로나19 이후 보상 심리 때문인지 명품 소비가 하늘을 찌르고 있어 샤넬이나 에르메스 매장에서 원하는 명품을 사려면 오픈런은 기본이고 5~6시간의 대기도 다반사란다.
지난해 전세계 명품 매출은 2869억달러로 전년(3544억달러)보다 19% 감소했지만 우리나라는 125억420만달러로 2019년(125억1730만 달러)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침체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한국이 명품 브랜드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뜨거운 명품 열풍을 두고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분출된 ‘보복소비’로 분석하기도 하고, 가격을 올려도 소비량이 늘어나는 '베블런 효과', 과시욕, 허영심, 동조심리가 함께 어우러져 발현되는 '밴드왜건 효과'까지 꼽기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분석은 소위 MZ세대들이 ‘플렉스(FLEX)’ 문화다. 플렉스는 요즘 젊은 층에서 가진 돈의 상당 부분을 고가 제품 구매에 ‘지르다’ 그래서 ‘과시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된다고 한다.
명품 소비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지만, ‘샤넬런’, ‘샤테크’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일부 중고품은 신상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명품 선호풍조에 편승해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올해만 해도 벌써 수 차례 가격을 인상했다고 하니 뒷맛이 씁쓸하다.
프라다 5점, 루이비통 19점, 에르메스 24점…공급망 인권평가는 낙제점
도가 지나친 일각의 명품 소비행태와 명품 브랜드들의 콧대 높은 마케팅을 보면서 영국의 비영리기구인 '노더체인'(KnowTheChain)이 지난해 발표한 명품 브랜드들의 공급망 인권관리 성적표가 떠올랐다. 노더체인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IT, 식음료, 의류∙신발 부문의 상위 179 개 회사를 2년마다 평가하는데, IT 부문에서 삼성전자가 100점 만점에 69점을 받아 처음으로 2위에 오른 것이 국내 언론에도 큰 관심을 모았는데, 당시 명품 브랜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의류∙신발 부문 37개 기업 가운데 주요 명품 브랜드의 점수를 살펴보면, 우선 3대 명품 브랜드인 ‘에루샤’ 중 루이비통(LVMH)은 100점 만점에 19점으로 29위, 에르메스(Hermes)는 24점으로 26위에 랭크됐다. 샤넬은 비상장회사여서 평가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사정이 더 나을 것 같지는 않다. 이탈리아 프라다는 5점(35위), 미국의 코치(Tapestry)는 16점(33위)으로 거의 꼴찌 수준이었고 구찌와 발렌시아가를 보유한 Kering그룹은 41점(21위)이었다. 대부분 낙제점이었다.
노더체인은 이처럼 낮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프라다가 올해 초 주주들에게 1억 달러의 배당금을 제시한 것을 두고 “(명품 브랜드의) 높은 가격표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더 강한 투명성과 존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5개 회사의 가장 큰 투자자가 모두 ESG 투자자였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노더체인에 따르면 미국의 자산운용사인 인베스코와 뱅가드는 각각 프라다와 풋락커(13점, 34위)의 가장 큰 투자자다. 노더체인은 “두 투자자 모두 공개적으로 불평등 해결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공급망의 불평등을 해결하고 공급망 근로자들에게 양질의 근로와 생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높은 가격표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의 직격탄은 공급망의 최종 단계에 있는 노동자들을 향했다고 노더체인은 지적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막판에 주문을 바꾸거나 납기를 재촉하면 이는 곧 공급망 노동자들의 초과근무를 초래하고, 인건비를 고려하지 않은 가격책정이나 대금지급 지연은 곧바로 임금체불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공급망 노동자들은 갑자기 주문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몇 달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견뎌야 했다.
공급망 노동자들의 어려움과는 대조적으로, 지난해 국내에서 3대 명품 브랜드의 실적은 놀랍다. 루이비통코리아는 1조468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3대 명품 중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3.4%나 뛰었다. 영업이익은 1519억원, 당기 순이익은 703억원을 기록했다. 에르메스코리아도 전년보다 15.8% 증가한 4191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매출액은 루이비통의 절반이지만 영업이익은 1334억원, 순이익은 986억원으로 더 높다. 처음으로 실적을 공개한 샤넬코리아는 매출 9296억원으로 전년(1조639억원) 대비 13% 감소했지만 면세사업을 제외한 국내사업만 놓고 보면 26% 늘었다. 영업이익은 1491억원, 당기순이익은 1069억원으로 가장 높았다.
중국과 한국 시장에서 고가정책으로 매출 신기록을 갱신하면서도 공급망의 약한고리인 노동자들의 강제노동이나 임금체불 등 인권 개선에는 인색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명품 열풍이 계속되어도 좋은 지 문제제기를 던져본다. 불현듯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하인사(hindsight)님은...

'하인사(hindsight, 필명)'는 뒤늦은 깨달음, 뒤늦은 지혜라는 뜻입니다.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모두 인류의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의미이지요. 하인사님은 대기업 홍보팀에서 20년 가량 일했습니다. 회사의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기획하면서 CSR 업무와 인연을 맺게 됐으며, 회사 CSR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ESG 이슈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고민했습니다. 2021년부터 <임팩트온>에서 【하인사의 이슈리뷰】를 매주 연재, ESG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