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상품 공급과정을 감시하는 국제 비영리기구인 '노더체인(KnowTheChain)'은 세계 패션업체 64곳이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 위협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지난달 발표했다. 작년 11월부터 올 2월까지 공급망의 투명성, 조달방식, 인권침해가 있을 경우의 구제조치 등 10개 지표를 평가해, 기업 순위와 사례를 제시했다.
평가 결과에 앞서, 노더체인은 전세계 의류 공급망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코로나19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직업군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의류 공급망 근로자들은 최소 임금을 받았지만, WHO(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3개월동안 전세계 의류 공급망 근로자들이 최소 30억달러(3조2900억원) 소득을 잃은 것으로 추정했다. 더불어, 방글라데시, 인도 등 개발도상국에 위치한 패션업계 공급망의 75%의 근로자가 코로나19 가운데 대출을 받거나 빚을 진 적이 있다고 보고됐다. 코로나19는 빈곤, 차별, 노동권 침해, 이동 제한을 보다 극대화시켜 패션업계 공급망이 노동 착취와 강제 노동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더체인 보고서는 의류업계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공통된 인권 이슈로 ▲성차별, 학대 등의 취약한 노동 환경 ▲결사의 자유와 단체 교섭권 부재 ▲고용 조건 불안정성 ▲부채 구속(Debt Bondage)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등을 꼽았다.
그중 '부채 구속'은 많은 근로자들이 채용 대행사로부터 일자리를 알선받는 대가로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 이로 인해 빚을 지거나 보다 낮은 급여로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일례로 말레이시아 의류 공급업체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주 노동자들이 지불하는 수수료는 최소 745달러(84만원)에서 최대 4356달러(495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때문에 의류 공급망의 상당한 근로자들이 "단지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집을 팔거나 땅을 저당 잡히고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의류 공급망 근로자 중 80%가량이 여성인데, 높은 수준의 성차별, 성희롱, 학대가 작업장에서 꾸준히 발생하지만 신고 수단 부족으로 적절히 보호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근로자들은 대게 고용주가 제공하는 열악한 숙소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례로 인도 공급업체 일부 근로자들은 공장 바닥을 숙소로 제공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면 쫓겨난다는 공장주 압박에 새벽 3시까지 근무하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 새벽 5시부터 다시 근무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노동 인권 침해가 패션계 공급망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이들에게 생산을 주문하고 공급받는 글로벌 패션 기업이 적절한 대응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더체인 보고에 따르면, 앞서 언급된 공급망 인권 이슈 대응에 있어 조사 대상 기업이 지표 평가에서 평균 50점에 밑돌았다. 그중 명품 브랜드 업체는 평균 31점을 받아, 공급망 근로자 인권 대처에 가장 소극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이탈리아 명품업체 프라다는 5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프라다가 2021년 초, 주주들에게는 1억달러(1136억6000만원)의 배당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나 공급망보다는 주주 이익에 보다 신경을 쓰고 있다고 노더체인은 지적헸다.
노더체인 평가에 한국 시장에서도 익숙한 일본의 ABC마트와 시마무라, 유니클로 운영사인 패스트리테일링, 무인양품(MUJI) 운영사인 료힌게이카쿠, 스포츠 용품 전문사 아식스 등 5개 회사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 최고 등급인 '충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평가받은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특히, 료힌게이카쿠와 패스트리테일링, 시마무라는 "중국의 거래처가 위구르족의 강제노동에 관여돼 있다는 의혹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올초 유니클로 셔츠에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신장면화'를 사용한 의혹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수출물량이 압수되기도 해, 낮은 점수 받았다. 이에 있어, 산케이신문은 "중국에서 면 등을 조달하는 일본기업이 간접적으로 인권침해에 가담한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글로벌 의류업체 가운데는 룰루레몬과 아디다스 등은 최고 등급을 받았다. 이들 기업은 이주 노동자 권리 보호 프로그램과 더불어 공급망에서 책임 있는 채용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세부 사항과 그 성과를 공개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더체인 패션업계 공급망 인권 대응 평가 보고서는 다음 주소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s://knowthechain.org/wp-content/uploads/2021-KTC-AF-Benchmark-Report.pd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