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CSR)은 자율의 영역일까, 강제의 영역일까. 

2010년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사회적 책임 국제표준(ISO 26000)을 발표할 때만 해도 이는 인증이 아닌, 가이드라인 형태의 자율지침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점점 유럽을 중심으로 CSR과 같은 비재무 정보 공시에 관한 규제 법안들이 속속 시행되면서, 자율의 영역을 넘어 강제의 성격으로 가고 있다. 결국 한국 수출기업에 새로운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일 ‘CSR에 관한 국내‧외 논의 동향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CSR 관련 인증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일 ‘CSR에 관한 국내‧외 논의 동향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CSR 관련 인증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픽사베이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일 ‘CSR에 관한 국내‧외 논의 동향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CSR 관련 인증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픽사베이

EU는 특히 2014년 종업원 500인 이상 기업의 비재무 정보 공시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키며, 유럽 지역 내외 협력기업에 경영 투명성을 요구하는 등 CSR 규범화에 앞장서 왔다. 최근에는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을 넘어 ESG(환경개선·사회책무 이행·건전한 지배구조 정착) 공시까지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전은경 입법조사관은 “CSR의 규범화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더라도 주요국 및 국제기구에서 규범화 기조가 강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우리나라는 해외거래 비중이 높아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 2003년 이후 ‘산업발전법’에 근거해 지속가능경영 실태조사(KoBEX SMTM)를 실시하고 있고, 2013년 5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자본의 변동에 대한 주요 사항을 의무 보고하도록 한다. 한국거래소 또한 2017년 3월 ‘기업지배구조 핵심원칙’에 따른 기업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도록 했지만, CSR에서 강조하는 경영 투명성보다 시장 투명성을 높이는 정책이라는 한계가 있다. 의무 공시 내용에 담기는 내용 또한 ▲발행주식총수의 5% 이상 주식을 보유한 경우 ▲보유지분 변동 ▲주주 권리 ▲이사회 기능 ▲내부감사 등 CSR의 개념 중 ‘기업경영은 공정한 규칙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법적 책임만을 강조한 형태다.

정작 기업이 CSR 평가에 가지고 있는 애로사항은 일관된 기준의 부재다. 2018년 1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수출 기업 120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CSR 활동에 대한 평가에 대해 ▲서로 다른 인증과 중복 자료요구(59%) ▲영업비밀 등 과도한 정보 요구(47.5%) ▲비용부담(41%) 등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국내 수출기업들의 CSR 관련 애로사항 및 정책 수요는 인증 관련 사항에 집중돼 있는 셈이다. 

이에 전은경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도 해외의 인증제도와 호환 가능한 인증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CSR 관련 인증제도를 신설하고 법적 근거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수출기업들이 중복 자료 요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KoBEX 및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CSR 플랫폼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다양한 분야의 인증을 모아서 볼 수 있는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CSR 규범화에 대응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입법조사관은 “중소기업의 경우 CSR에 대한 분야별 대응 여력이 충분치 않다”며 “CSR 규범화 기조로 국내 중소기업이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배제될 위험이 있는 만큼, 기업 규모별로 인증 부담을 차별화하도록 국제적 합의를 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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