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쯤, 한 기업에 특강을 하러 갔다. 월요 아침 회의를 앞둔 CEO와 임원들은 다소 침울해 있었다. 유통업의 특성상, 비가 오면 매출액이 줄어든다고 했다. 전날인 일요일엔 하루 종일 비가 왔다. 그런데, 사실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앞으로가 더 큰일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은 더욱 심해지고 장마는 더 길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기후 전망을 담은 자료가 많지만, 기억에 남는 건 우리나라가 2030년이면 습도와 고온이 동반되는 ‘습구온도(wet bulb temperature, 상대습도가 100도가 되는 온도)’가 35도를 넘어서 야외에서 5~6시간밖에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WMO세계기상기구, 2020 세계 기후변화보고서)

이렇게 되면 노동생산성은 급격히 낮아질 것이며, 오프라인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수많은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사업 전략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과연 국내 기업들은 ‘기후와 매출의 상관관계’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국내 대기업 전문 경영인 대다수는 기후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 듣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임기는 평균 3.6년이다(CEO스코어, 2010년 이후 347개 기업 전현직 대표이사 1582명 재임기간 조사) 오너 대표이사의 재직 평균인 11.7년에 비해 현저히 짧다. 3.6년 안에 재무적인 성과를 내기에도 벅찰 텐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장기 전략을 짠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기후 리스크를 챙기는 건 기업 가치 하락으로 ‘내 돈’이 날아갈 위험이 있는 오너 경영인이나 주주들, 아니면 (미래에 닥칠 ‘나’의 위기가 된다는 점에서) 밀레니얼 세대인 젊은 직원들이나 소비자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나서진 않는다. 애초에 ‘공유지의 비극’은 예견돼 있었다. ‘공기’와 ‘물’ ‘기후’ 등의 공유지는 개인이나 단체의 이기심(이익) 앞에서 고갈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셈이다.
그럼 이걸 누가 해결할까. 지금까지 수많은 환경 NGO들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원칙으로 기후위기를 접근해왔다. 멸종 위기를 알리며 협박도 하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위기상황을 알려도 세상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비즈니스 생태학’의 저자 폴호켄은 이를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눈앞의 온갖 걱정에 시달릴 때, 환경문제는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미래의 문제일 뿐이다. 마치 기르던 개는 없어지고, 애들은 싸워 대고, 저녁밥은 타버리고, 사친회(PTA, 미국의 학부모모임)에 늦었는데 애 보는 사람은 안 오고 카펫에 수프까지 막 엎지른 상황에 여론조사원이 찾아와 동네 외곽의 쓰레기 매립지 조성안에 관한 의견을 묻는 상황과 비슷하다.”(29p)
기후라는 이슈에 대해 국가가 나선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 말고는 해결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의회가 ‘기후법’을 통과시켰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1990년 기준 55%까지 감축하고, 2050년까지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법규화했다. 현지에선 “역사적인 날”이라고 한다. 그 의미는 간단치 않다. 이제 기후는 자율적이거나 혹은 느슨한 규범의 형태에서, ‘안지키면 제재를 받는’ 법적인 테두리에 들어왔다.
앞으로 탄소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규제가 등장할 것이다. 이전까지 '타이타닉호에 고인 물을 티스푼으로 떠내는 것만큼 소용없던 일(폴 호켄은 회사 식당에서 알루미늄 캔을 재활용하거나 행사용으로 나무를 심거나 하는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은 줄어들 것이다.
대신 오염 유발자, 즉 탄소 생산자인 기업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규제가 이뤄질 전망이다. 탄소를 제품 생산 원가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가 올해 말이면 4만5000개의 전 제품에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제공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앞으로 모든 제품에 탄소 칼로리(carbon calorie) 표기를 의무화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소비자들에게 저탄소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려면, 탄소 칼로리 표기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과연 우리 기업 오너와 CEO들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