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국내에서는 ‘ESG’가 메인 스트림화되고 있지만, 사실 ESG는 1990년대 말 IMF 이후 '지속가능경영'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한 영역으로 존재해왔다. 기업과 사회의 관심이 적을 때, 묵묵히 그 길을 걸어온 인물들이 구석구석에 있다. 김정남 삼정KPMG 상무도 그러한 인물이다.
김 상무는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2004년 환경과 지속가능성 컨설팅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2013년부터는 삼정KPMG에서 지속가능경영컨설팅을 담당해오고 있다. 모두가 ESG를 얘기하고 있는 시대를 맞이한 그의 소감은 어떨까.
Q. ESG가 이렇게 메인 스트림의 중요한 화두가 될지 예상했는가?
국내에서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더 빨라질 것이다. 한국에서 ESG 관련 몇 번의 큰 흐름이 있었다. IMF 직후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윤리경영이 강조되었고 2000년 초중반에는 유럽의 제품환경규제 강화에 국내 핵심 산업인 전기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은 협력사들과 함께 대중〮소〮 그린 파트너십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2000년 중반 이후 ‘저탄소 녹색성장’을 화두로 기후변화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고 인권, 노동, 반부패 등 CSR과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속가능경영이든, CSR이든 기업 입장에서 재무성과와 연계성이 불분명한 환경경영과 CSR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 블랙록 래리핑크 회장의 주주 서한을 계기로 그런 논란이 상당 수준 불식됐다. ESG에 대한 경영진 책임을 요구하는 주주 관여가 확대되면서 ESG는 최고경영진이 직접 챙겨야 하는 이슈가 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ESG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가속화됐다면, 준비가 부족한 우리 기업들에 ESG의 갑작스러운 대두는 ‘혁명’이라고 할 만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요구와 흐름은 더 거세고 빨라질 것이다. 예전에는 몇몇 전문가, 특정부서에서 고민하던 게 금융, 정책, 기업 모든 분야에서 ESG를 얘기하게 됐고, 집단지성이 생기면서 훨씬 빠르게 발전되고 있다.
Q. 글로벌 ESG 흐름보다 국내는 출발이 늦었다. 그만큼 방향과 속도 모두 중요한데, 현재의 ESG 흐름이 잘 잡혀가고 있다고 보는가?
ESG 출발은 잘했는데, 궁극적으로 기업의 목적(purpose)과 체질 개선을 통한 경영체계(시스템)가 발전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단순히 외부의 ESG 평가대응, 정보공시 정도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공공, 국민연금의 역할이 매우 크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발표된 2025년부터 지속가능경영 정보의 단계적 공시 의무화도 좀 더 앞당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SG는 결국 글로벌 경영의 표준이 되고 있으며, 새로운 경영철학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방향으로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반 경영도 그렇지만 ESG경영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산업 내 글로벌 기업과의 상대평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적절한 방향과 속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Q. 글로벌 기업의 협력업체로서 이들의 공급망에 포함된 국내 대기업의 경우, 여러 가지 압박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힘든 상황이다. 현재 기업들이 겪는 큰 고민은 무엇인가?
우선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 재생에너지 관련한 국내 인프라가 아직 미흡하다. 또 강화되는 협력사 ESG 관리 부문의 점검도 시급하다.
특히 생물다양성, 생태계보호, 인권이나 다양성 등 글로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ESG 이슈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기업의 체감도가 낮다. 하지만 많은 국내 기업들이 이미 글로벌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이슈에 대한 관심 증대가 필요하고 해외의 사업장과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관리를 확대해야 한다.
Q. 일부에서는 ESG가 하나의 유행이라 버블이 꺼질 것으로 보기도 한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기존의 CSR은 기업 활동의 환경, 사회, 경제적 긍정과 부정적 영향을 중요하게 봤다면, ESG는 그러한 영향이 미치는 재무적 영향이나 기업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기업이 존재하는 한 기업가치에 대한 경영진과 사회의 관심은 지속될 것이며 ESG가 여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면, ESG를 버블이나 유행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Q.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봤을 때, 국내 ESG 현재 상황이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EU는 일관성 있게 기업의 지속가능성, 투명한 정보공시, ESG 투자, 금융시장 보호 등의 측면으로 관련 정책을 발전시켜 왔다. 올해 발표된 해 ‘EU 공급망 실사 의무화’에 관한 정책은 50만 건이 넘는 각계각층의 의견이 수렴될 만큼 논란이 크다. EU는 이러한 논란이 기업의 장기적 생존과 성장, 사회와 환경, 투자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필요한 혼란이라고 받아들이며 관련 지침을 준비 중인 것 같다. 즉, 세밀하게 정책을 하나씩 발전시키고 확대시킨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국은 SEC(증권거래위원회)에서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는 모든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데, 매우 포괄적이고도 시장 지향적인 정책으로 ESG를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최근 ESG 관련 정책이 활발해지고 기업과 경영진에게 더욱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과 시장,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장기적인 비전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Q. 기업 입장에서 ESG 경영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너무 큰 부담이라는 이야기도 많다.
일부 기업에서는 ESG 경영을 외부의 ESG 평가점수를 잘 받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 ESG를 통한 기업의 철학과 목적이 변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초기에는 좀 더 단순하게 ESG를 리스크 관리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실 기업이 기회와 수익 창출을 위한 관리와 투자활동은 이미 자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관심과 투자가 미흡한 ESG 분야에서의 부정적 영향으로 발생하는 리스크에 관심이 높다. 기업은 자신이 속한 산업의 핵심 ESG 이슈에 대한 리스크 관리 역량과 성과를 잘 커뮤니케이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Q. 하지만 현실적으로 ESG 평가점수가 공개되면서, 기업들은 ESG 평가 대응에 대한 고민도 많다.
평가기관이 너무 많아서 어떤 평가기관에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글로벌에 600개 넘는 평가기관이 있고, 정보공시 표준은 3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은 어렵고 비효율적이다. 투자자 신뢰도와 활용도가 높은 평가기관 1~2개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또한, 산업내에서 산업특성을 반영한 평가지표를 개발해 평가하고 적절한 검증을 거쳐 공개하는 것도 방안일 수 있다.
Q. 국내 기업에서 ESG경영이 정착되려면 어떤 여건이 필요할까?
우선 최고경영진의 관심과 ESG 기반의 의사결정 구조로의 변화다. 이를 위해서는 ESG를 총괄하는 C-Level 전담경영진이 필요하다. ESG 경영의 정착을 위해 다양한 ESG 유관부서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있어서 특정 분야의 하위 팀으로는 어려움이 클 수 있다.
또한 실질적 변화를 위해서는 ESG성과가 경영진 평가와 보상에 연계되고 전사 ESG 관리지표가 명확해야 한다. 이를 위한 ESG KPI 도입도 필요하다. IT를 활용한 ESG 역량진단, 관리와 개선을 효율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ESG 기반의 비즈모델(Biz. Model) 변화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ESG에 의한 이슈와 리스크가 큰 사업에 대한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의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ESG 이슈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공급망 이슈와 생물다양성 이슈가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우리 기업들은 두 이슈 모두 이해와 준비가 미흡한데 관련 이슈 대응을 위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