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검(劍)이 물에 빠지자 급히 배에 표시를 하였다. 그리고 한참 후 배가 멈추자, 그 표시를 따라 검을 구하러 강물에 들어갔다.”

중국 전국시대 때 진나라 재상 여불휘가 식자(識者)들과 공동으로 편집한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찰금편(察今篇)’에 실린, ‘각주구검’(刻舟求劍) 고사다. 직역하면 ‘배에 표시를 하여 칼을 구한다’이다. 세상의 변화에 어둡고 어리석어 과거의 사고나 방식을 고집하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 또는 그러한 행동을 비판할 때 이 고사성어를 인용하곤 한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최근 ‘탈석탄 금고’ 정책을 도입하면서 이 각주구검의 우를 범하고 있다. ‘탈석탄 금고’는 자금의 관리·운용 등의 업무를 담당할 금융기관, 즉 은행 평가항목에 ‘탈석탄 선언 여부, 석탄발전 투자 규모와 비중, 기존 석탄발전 투자금 철회 계획 수립 여부 및 이행 수준’ 등 각종 탈석탄 지표를 반영하여 선정한 금고를 말한다.

금고의 운영과 관리는 안전성, 수익성, 공공성이 원칙이지만 특정한 정책 목표 달성에 효과적인 수단이다. 탈석탄 금고는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은행의 탈석탄 선언을 유도하여 석탄금융 종식을 앞당기자는 목적으로 필자가 제안한 정책이다. 현재 ‘탈석탄 금고’를 선언한 지자체와 교육청은 총 64개(광역자치단체 9개, 기초자치단체 44개, 시·도교육청 11개)로, 이들의 올해 금고 규모는 211조5027억 원에 이른다. 이처럼 탈석탄 금고는 크게 확산되었다. 

 

탈석탄 선언 지표는 이제 변별력 상실 

조직과 금융포트폴리오의 탄소중립 선언, 기존 투자금의 출구계획 등 새로운 지표 반영해야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자체와 교육청의 탈석탄 금고 평가지표가 ‘변화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탈석탄 선언 여부’다. 현재 탈석탄을 선언한 금융기관은 총 100개로, 금고 지정 대상인 은행은 11개가 동참했다. IBK기업은행을 제외한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DGB대구은행, BNK부산은행, BNK경남은행, 전북은행, 광주은행, 제주은행이다. IBK기업은행은 대외적으로 공표만 하지 않았을 뿐, 금융위원회와 조율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탈석탄을 선언할 준비가 되어 있다.

탈석탄 금고를 최초로 제안한 2019년 5월 당시에는 탈석탄 금융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은행이 한군데도 없었다. 당시에는 ‘탈석탄 선언 여부’라는 지표가 매우 중요했던 이유다. 하지만 두 해 사이에 180도 달라졌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지자체와 교육청이 금고 지정 조례 또는 규칙을 개정해 이 지표를 기계적으로 넣고 있다. 변별력은 물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은행들의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한다는 정책적 목표도 이미 상실한 지표다. ‘변화된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지자체와 교육청의 무지와 나태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필자는 올해 4월 ‘탈석탄 금고’를 이제 ‘탄소중립 금고’로 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탄소중립 금고’는 지구평균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고자 하는 국제사회와 국내의 기후목표 달성을 위하여 2050년 이내 탄소중립을 ‘조직’은 물론 ‘금융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선언하고, 이에 따른 이행계획을 마련하여 공표하며, 목표달성을 위한 기후금융 활동을 적극 실행하는 금융기관으로 지정한 금고라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탄소중립 선언 여부(조직+금융 포트폴리오)와 이에 따른 이행계획 수립 및 대내외적 공표 ▲기존 석탄발전 투자금의 출구계획 수립 여부 및 이행실적 ▲기후금융 국제 이니셔티브 참여 및 활동 실적을 지표로 제시했다. 마침 올해 4월 243개 광역·기초 지자체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탄소중립 금고’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탈석탄’은 탄소중립 달성에 필수다. 그런 점에서 ‘탈석탄 선언 여부’는 이제 변별력을 상실했지만 ‘기존 석탄투자금의 출구계획 수립 여부와 이행실적’은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게 이 지표는 사실 상당한 난제(難題)다. 시민사회에서도 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이 지표를 충족한 금융기관은 아직 전무하다. 하지만 지자체와 교육청이 이 지표를 채택한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탈석탄 선언 여부’ 지표를 통하여 은행의 탈석탄 금융 선언을 유도한 경험이 이를 증명해 준다. 울산광역시 교육청이 이 지표를 반영했다.

기후금융 국제 이니셔티브는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하여 어떤 활동이 반드시 필요한지의 관점에서 기준을 정할 수 있다. 즉 기후관련 정보공개 요구(CDP, TCFD), 이 정보를 토대로 한 금융 배출량 산정(PCAF), 과학에 기반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SBTi), 탄소중립 관련 국제적 협력(Net-Zero Asset Banking Alliance), 기존 석탄발전소 투자금의 2030년 내 출구계획 수립 및 이행(PPCA), 대형 개발사업이 기후 등 환경파괴 또는 인권침해 문제가 있을 경우 대출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 준수(Equator Principles), 책임은행원칙(PRB)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서울시는 ‘녹색금융 이행실적’으로 이 지표를 반영했다. 

 

'탈석탄 금고'는 이제 '탄소중립 금고'로 전환해야

이제 ‘탈석탄 금고’는 ‘탄소중립 금고’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표도 당연히 변화된 현실과 취지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탈석탄 금고’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탈석탄 선언 여부’ 지표는 삭제하고 ‘기존 석탄투자금의 출구계획 수립 여부와 이행실적’을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은행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더 높은 목표로 나아가도록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금고 지정을 위한 조례나 규칙을 개정 중인 지자체와 교육청이 있다면, 잠시 멈추고 이 사안을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

탈석탄 금고, 탄소중립 금고는 은행을 직접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은행의 기후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책이다. 막대한 시장 규모 때문이다. 실제로 지역통합재정(지자체 ‘일반회계+공기업특별회계+기타특별회계+기금’+교육청+지방공기업+지방자체단체 출자·출연기관)을 중심으로 한 금고시장은 2021년 예산 기준으로 528조2850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 영향력도 시대정신을 반영한, 지표가 설정되어야만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한 각주구검 고사는 다음 글로 그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배(舟)는 이미 움직였으나 검(劍)은 움직이지 않았다. 검을 구하는 일이 이와 같으니 어리석지 않는가. 옛법(故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이와 같다. 시간(時)은 이미 흘렀으나 법(法)은 바뀌지 않았다. 이로써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종오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이종오 사무국장은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2007년 설립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사무국장으로, 10년 넘게 지속가능경영과 ESG, 책임투자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다. 

현재 CDP한국위원회 사무국장이자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 한국벤처투자 소셜임팩트 민간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사용 심의위원회 위원, Korea Beyond Coal 운영위원 등으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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