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의 고향'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플랫폼 종사자를 개인 사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하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AP통신·CNN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고등 법원은 20일 작년 11월 캘리포니아주 주민투표를 통해 가결된 '주민발의안 제22호'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주민발의안 제22호'는 운전·배달기사를 노동자가 아닌 독립 계약자로 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2020년 1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우버·리프트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운전·배달기사를 독립계약자(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분류하는 AB5법이 시행됐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AB5법 시행에 따라 운전 및 배달 종사자들에게 유급 병가나 보험 등 노동법상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했다.
고용 부담이 높아진 플랫폼 사업자들은 요금 인상과 사업 철수 등이 불가피하다며 AB5법 시행에 격렬히 반대했다. 몇 차례 항소까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의회와 법원의 반대에 직면한 플랫폼 사업자들은 사안을 주민 투표에 붙였다. 그 결과 작년 11월 3일 대선 투표와 함께 진행된 캘리포니아주 주민투표에서 AB5법과 상반된 내용을 담은 '주민발의안 제22호'가 58.3%의 찬성표를 받아 가결됐다. 주민들은 우버 운전기사를 사업자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는 또다시 뒤집힌다. 지난 20일 캘리포니아 고등 법원은 판결을 통해 작년 11월 진행된 주민투표 결과를 부정하고, 플랫폼 종사자를 다시 노동자로 인정했다. 사업자→노동자→사업자→노동자를 반복한 것이다. 이와 관련 우버 측은 “판결이 다수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의 의지를 무시하고, 논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모두 어긋난다”며 또다시 항소 의사를 밝혔다.
플랫폼 종사자, 노동자로 인정받는 사례 늘어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 종사자가 늘면서 이들의 법적 지위와 권익 보호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쟁점은 플랫폼 종사자들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다. 국내의 경우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보호대상이 되며,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노조를 설립한 뒤 사측과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최근엔 국적을 막론하고 플랫폼 종사자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해주는 법적 판례가 쌓이고 있는 추세다.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플랫폼의 '이용자를 통한 근로자 별점 평가'와 '알고리즘에 따른 업무 배정'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종사자는 계약상 업무 위탁에 따른 개인사업자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업자가 이들에게 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국내의 경우 2019년 11월 노동부가 요기요 소속 배달대행 라이더를 근로자로 판단한 것을 시작으로, 작년 11월 배달의민족이 라이더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는 등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해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업자의 지휘·감독 여부 일일히 판단하기 어려워
개별 판례는 쌓이고 있지만 플랫폼의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인정하는 일괄적인 법 적용은 어려워 보인다. 플랫폼과 플랫폼 종사자 사이에는 그 수 만큼이나 다양한 고용 형태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카카오모빌리티는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과 단체교섭 하라"라는 취지의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중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통상 대리기사는 카카오T뿐 아니라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고, 대리운전비도 승객에게 직접 받기 때문에 근로자가 아닌 독립 사업자라는 주장이다. 대리기사의 경우 출퇴근 여부나 근무시간·장소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자 국회는 플랫폼 종사자를 기존 고용 형태와 달리 별도로 규정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을 통해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3권은 보장하지 못하더라도 공정한 계약, 산재보험, 공제조합 등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입법 취지를 밝히고 있다. 해당 법안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으로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별도 법률을 만들어 플랫폼 노동자가 기존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공식 성명을 통해 "법안은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도 사라지게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