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는 16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입법 예고를 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2030년까지 2018년 탄소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골자로 올해 9월 제정됐다. 영국, 일본 등에 이어 전 세계 14번째로 탄소 감축 목표를 명문화한 것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을 관리하는 주축은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될 전망이다. 위원회는 감축 목표 이행현황을 매년 점검하고, 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고서를 공개하게 된다. 환경부 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해 국가 기후위기 적응대책을 수립·시행하고, 매년 추진상황을 점검해 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기후변화 영향평가도 신설됐다. 기존 환경영향평가 대상 중 에너지 관련 사업 또는 도로 건설·산지 개발,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 등의 사업에 신규 적용된다. 개발 또는 사업을 할 때 행정기관의 장과 사업자 모두 기후변화의 영향을 측정해야 한다. 행정기관 장은 국제동향 및 국가 비전 등 유관 계획과의 부합성,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및 저감 전략 등을 고려해야 한다. 사업자는 예상 온실가스 배출량 및 저감 방안, 기후변화 취약성과 위험성 평가 및 적응 방안까지 고려해 분석, 평가를 시행해야 한다.
온실가스 목표를 관리해야 하는 대상도 확대됐다.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시·도 교육청, 공공기관, 지방공사 및 지방공단, 국·공립대학,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매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 실적을 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가령 공공기관인 한국전력공사나 산하 발전 공기업, 한국가스공사 등도 감축 목표를 의무적으로 설정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3년간 업체의 모든 사업장에서 배출한 온실가스의 연평균 총량이 5만tCO₂eq(이산화탄소환산톤) 이상인 업체와 최근 3년간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이 1만5000tCO₂eq 이상인 사업장을 보유한 업체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정부의 관리를 받도록 했다. 현행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기준을 그대로 따랐다. 감축 목표를 상향했지만 관리 사업장 선정 기준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2030년까지 2017년 대비 온실가스 총배출량 24.4% 감축)을 따른 것이다.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부처들이 탄소중립을 위해 이행해야 하는 법령들도 포함됐다. 자동차 평균 에너지소비효율 기준은 산업부 장관이 정하고,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허용기준은 환경부 장관이 정하되 산업부 장관 및 국토부 장관의 의견을 듣도록 했다. 전반적인 교통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정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 상태의 영향을 5년마다 조사하고 조사 결과를 반영해 기후위기 취약지역 또는 산업에 대한 지원대책을 수립 및 시행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후대응기금의 수입과 지출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한국은행에 기금 계정을 설치해야 한다.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환경부 장관과 협의 및 지방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방 기후위기 적응대책을 수립하고, 매년 추진상황을 점검해 지방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했다.
이번 시행령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시행령에 대한 의견은 국민참여입법센터(http://opinion.lawmaking.go.kr)와 우편(세종특별자치시 한누리대로 492 청암빌딩 706호 환경부 탄소중립이행 T/F·cjstk98@korea.kr) 등을 통해 다음 달 22일까지 받는다.
2010년 제정된 녹색성장법은 ‘유명무실’
탄소중립 기본법, 남은 과제는 ‘일관성’
시행령까지 제정된 탄소중립 기본법의 관건은 일관성이다. 이번 기본법은 처음으로 탄소 감축 목표를 명시한 데 의의가 크다. 8조에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한다”는 문구를 넣으면서다.
그러나 대선 정국으로 들어오면서 법에 명시된 목표치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0%가 아닌 50% 감축”을 외쳤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산업계와 협의가 부족했다”며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전면 폐기하고, 재논의 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탄소중립 기본법 제정 전에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위기 적응을 위해 제정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녹색성장법)’가 논의 대상이었다. 탄소중립 기본법이 제정되기 약 1년 전, 환경부와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법안소위에선 이를 두고 개정할 것이냐, 폐지할 것이냐 논쟁이 붙었다.
녹색성장법은 제1조에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저탄소 녹색성장에 필요한 기반 조성”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 도모, 저탄소 사회 구현”을 법의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정의당 강은미 정의당 의원안은 녹색성장법 폐지를 주장했다. 강 의원은 “녹색성장이라고 하면 결국은 ‘성장’의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제목에 ‘녹색성장’이 들어가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녹색성장법을 만든) 그 당시 녹색성장이 실제로 녹색세탁, 녹색분칠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지금 시기에 성장 프레임을 계속 가져가야 하는 것이냐”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은 녹색성장법을 유지하자고 주장했다. “이 법(녹색성장법)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탄소 넷제로를 할 수 있다. 왜 폐지시켜야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기존 법에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개정하면 된다는 취지다.
정부가 제출안 법안(현 탄소중립 기본법)에도 녹색성장이 들어가 있었고, 내용 면에서도 녹색성장법을 일부 차용하기도 했다.
‘골칫거리’가 된 녹색성장법은 제정 이후 정부 성격에 따라 유명무실해졌다. 법안을 책임지는 위원회가 힘을 잃으면서다. 녹색성장법 제정 당시엔 ‘녹색성장위원회’가 대통령 소속으로 기후변화대응 정책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선 국무총리 소속으로 변경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법정기구인 녹색성장위원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구를 만들었다. 2019년 4월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기후 환경회의’를 새로이 발족한 것이다. 2020년 말 UN에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제출할 땐 또 다른 기구인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을 창설했다. 올해 4월에서야 탄소중립 기본법의 주축이 되는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설립했다.
해외선 합의를 존중해 기존 법안 발전·유지
해외선 EU,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 캐나다 등이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목표를 명문화한 기후법을 제정했다.
영국과 일본의 기후법은 제정 후 꾸준한 역할을 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영국은 2008년 ‘기후변화법’을 제정하며 2050년 탄소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최소 80%로 명시했다. 2019년엔 개정을 통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명시했다. 일본은 영국보다 훨씬 앞선 1998년 ‘지구온난화대책추진법’을 제정했다. 교토의정서 채택을 하면서다. 이후 5번에 걸쳐 개정돼, 올해 3월 2050년 탄소 중립을 법률에 명시했다. 양국의 기후법엔 구체적인 기한이 명시돼 있어, 정권이 바뀌더라도 ‘탈탄소’ 방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영국의 법정 자문 기구인 ‘기후변화위원회’는 영국 탄소 감축 정책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영국은 탄소 감축의 핵심은 5년 주기의 탄소배출량 목표인 탄소예산(Carbon Budget)에서 찾을 수 있는데, 기후변화위원회는 정치적 중립성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를 수립해 정부에 제안하고 있다.
정부의 존중도 빛난다. 탄소 예산은 정부・기업 등에게 충분히 대응할 시간을 주고, 관련 투자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12년 전에 정해진다. 총리는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이 결과를 존중하고, 이행한다. 고든 브라운 총리(노동당),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보수당), 테레사 메이 총리(보수당), 보리스 존슨 총리(보수당)로 이어지는 정권의 변화 속에서도 제1차 탄소예산(2008~2012년)과 제2차 탄소예산(2013~2017년)은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고, 제3차 탄소예산(2018~2022년)의 목표는 실행 중에 있다.
영국의 기후변화법을 분석한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회는 정부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중단기 목표를 최소한 10년 전에 검토를 통해 확정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고, 탄소 감축 이행현황을 주기적으로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기후변화 정책이 정치적 중립성을 가지고 장기적, 체계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