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팜유·고무장갑 생산업체에 이어 전자업체 ATA가 영국 다이슨으로부터 하청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매출 80%를 차지하는 다이슨과 거래가 끊기면서, ATA의 주가는 절반 이상 떨어졌다.

26일 말레이메일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영국의 유명 가전업체 다이슨은 진공청소기와 공기청정기 부품을 생산하는 말레이시아 하청업체 ATA가 노동 착취를 한다는 내부 고발자 제보를 받고 감사를 벌인 뒤 24일 계약 해지를 알린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ATA 전·현직 이주 노동자들은 "말레이시아 노동법에 명시된 한도를 초과해 일했고, 채용 브로커에게 줄 돈 때문에 빚에 속박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법은 한 달에 최대 104시간의 초과 근무를 허용하는데, 한 노동자는 5월에 공휴일과 휴일 모두 일해 126시간까지 근무한 것이다. 

전 ATA 직원 중 한 사람은 노동 활동가들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ATA 관계자들이 경찰에 데려갔다고 진술했다. 이후 그는 경찰로부터 구타를 당했다고도 말했다.

다이슨은 지난 9월 ATA의 내부 고발자로부터 내용을 전달받고, 내부 감사를 진행해 지난 10월 초 결과를 받았다. 이후 6주간 결과를 두고 ATA와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국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 다이슨 대변인은 ”감사 후 6주간 ATA와 노동관행 개선을 두고 치열하게 논의했지만 충분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며 ”이미 일부 생산라인은 철수했고, 우리의 결정이 ATA 개선의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ATA는 다이슨이 제기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ATA는 말레이시아 로펌을 고용해 전직 노동자의 신체적 학대 혐의에 대한 독립적인 검토를 실시했으며, 자세한 보고는 곧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체적으로 시행한 조사 결과는 우리 혐의를 벗겨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내년 6월 1일까지 다이슨과 계약관계는 유지된다며 이사회에서 다이슨의 해지 통보 유효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ATA는 지난해 5월 강제노동 혐의로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로부터 조사받기도 했다. 말레시아의 팜유 농장, 고무장갑·전자부품 등 제조공장도 함께 명단에 올랐다.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에 대한 노동착취, 인신매매, 성폭력 등 다양한 학대 행위가 반복해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AP통신은 말레이시아 1위 팜유 생산업체 '사임다비'를 포함해 24개 팜유 회사의 전·현직 노동자 130명 이상을 심층 인터뷰한 기획 기사를 보도하면서 노동자 학대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말레이시아 팜유업체 사임다비, FGV홀딩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했고, 이달 초에는 말레이시아 고무장갑 업체 스마트글로브에 대해 같은 조처를 내렸다. 미국 국무부는 말레이시아가 노동자들의 강제노동을 근절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며 중국과 북한 등 10개국과 함께 수입금지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ATA 매출 80%를 차지하는 다이슨의 결정에 말레이시아 정부까지 나서서 방어했다. 다이슨과 계약 중단이 알려지자마자 ATA의 주가는 반토막이 났고, 애널리스트들은 "2023년 회계연도에 완전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는 앞으로 ATA 수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노동부는 다이슨의 계약 해지 결정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노동부 사라반 장관은 그러면서도 "다이슨이 인력부족으로 계약을 중단하고 싶어했다는 소식도 들었다"며 양측의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고 밝혔다. 다이슨은 올해 초만 해도 ATA 노동자의 과도한 노동시간과 열악한 생활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만 책임을 져야 하는걸까

이에 피해는 고스란히 이주 노동자의 몫이 됐다. 말레이시아에는 거의 20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있다. ATA도 마찬가지다. 8032명 중 절반이 이주노동자다. 고무장갑 업체 스마트글로브, 팜유업체 사임다비, FGV홀딩 등 대부분이 그렇다. 잇단 강제노동 혐의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의 일부는 복직할 수 없게 됐다.

국제 이주노동 권리 전문가 앤디 홀은 로이터에 "다이슨의 계약해지 결정은 ATA에 고용된 수천 명의 근로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이슨은 일방적 계약해지가 아니라 RBA(책임있는 기업 연합), APSCA(컴플라이언스 감사인 협회) 등과 함께 다이슨의 감사 시스템이 수년에 걸쳐 ATA의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시스템적 환경을 만들었는지 면밀히 조사하고, ATA와 함께 노동환경을 서서히 변화해가는 식으로 접근해야 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다이슨은 지난 2003년,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말레이시아에 부품 하청을 맡겼다. 가디언에 따르면, 인건비 절감으로 그 다음해 두 배 가까이 매출이 늘었다. 다이슨은 당시 ‘공장을 영국에 지어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제조원가가 10년만에 두배로 치솟고, 영국에선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생산지를 말레이시아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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