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정부와 연결한다.’
피스컬노트(FiscalNote)의 본사나 지사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적혀있는 문구라고 한다. 피스컬노트는 세계 각국의 법과 규제 분석 정보를 담은 인공지능(AI) 기반의 정보서비스 플랫폼이다. AI 기술이 장착돼있는 블룸버그나 톰슨로이터, 리피니티브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 행정부와 의회, 국방부, CIA, FBI를 비롯 네슬레 등 다국적 기업과 월가의 투자자 등 5000곳 이상이 이용하고 있는 서비스다.
2013년 창업한 이후 이듬해에 CNN에서 ‘세계를 바꿀 10대 스타트업’으로 꼽히기도 한 피스컬노트는 지난해 ESG 시장 진출을 알렸다. 그 첫 단추는 지난해 8월 싱가포르의 ESG 데이터 관리 솔루션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을 인수한 것이다. 지난 21일, 오랜만에 국내를 찾은 팀황 대표를 만나 ESG 진출을 둘러싼 피스컬노트의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보았다.
- ESG와 관련한 솔루션을 기업에 제공하는 사업에 진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상당한 수준의 법률 및 규제의 변화가 있는 곳에 기업의 니즈가 있다. 대표적으로 암호화폐, ESG, 온라인 갬블링 등과 같은 시장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고객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다. 이를 위해 우리는 법률 규제의 개정 사항이나 관련 정보를 일종의 프리미엄 구독 형태로 제공한다. 또 하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B2B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해당 기업의 탄소배출량, 물 관리 메트릭스 등을 수집한 다음 경쟁업체와 비교해 자동 벤치마킹하고, 규제기관이나 대중들에게 자동으로 보고(reporting)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지난해 8월 ESG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싱가포르의 이퀼리브리엄을 인수한 바 있다. 이퀼리브리엄은 베스핀글로벌과 함께 한국 진출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현재 진행상황은 어떤가.
“이퀼리브리엄은 피스컬노트와 완전히 통합돼, 우리의 지속가능성 기능을 구축하는 새로운 사업부를 맡고 있다. 우리는 북미와 유럽, 싱가포르와 호주 등에서 구독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는데, 이를 전 세계로 확장할 때 베스핀과 같은 현지 사업파트너들과 함께 할 때도 있고 독자적으로 할 때도 있다. 현재까지 꽤 잘 진행되고 있다.”
- 국내는 2020년 하반기부터 ESG가 급격한 붐을 이루면서, 관련한 시장도 1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ESG 솔루션을 탑재한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시장을 겨냥해서, 세일즈포스나 SAP와 같은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SK C&C가 관련 데이터플랫폼을 열었고,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도 ‘i-ESG’라는 인공지능 ESG 플랫폼을 사내벤처로 출범했다. 이퀼리브리엄 서비스는 어떤 차별점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클라우드 기반의 웹 애플리케이션의 서비스인데, 벤치마킹 서비스가 업계의 최고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 다른 경쟁사들과 데이터를 비교해볼 수 있고, 탄소와 물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 이슈 전체를 볼 수 있다. 사내용이거나 회계 혹은 재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다른 서비스와는 좀 다르다. ESG 정보와 함께 정치 관련 법안이나 규제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점도 차별점이다. 우리는 지난해 2월 영국의 국제문제 전문 컨설팅기관인 ‘옥스퍼드 애널리티카’를 인수한 바 있다.”
- 정량적인 ESG데이터뿐 아니라 AI를 활용해 ESG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진단할 수 있는 서비스인 렙리스크나 아라베스크 등이 하고 있는 서비스까지 이뤄지는가.
“지난해 우리는 에이셀 테크놀로지(Aicel Technologies)라는 한국 스타트업을 인수협약에 서명했다. 경제활동의 대체 데이터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곳으로, 예를 들어 신한카드와 제휴해 신용카드 거래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kt와 제휴해 음식배달 위치 데이터를 살펴보는 등의 활동을 한다. 경제에서 일어나는 모든 다양한 일들을 추적하는데, 이러한 정보가 자산운용사들과 기업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ESG 벤치마킹 데이터세트도 가공하려고 하고 있다.”
- 한국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리의 고객 상당수는 다국적 기업들이다. 유럽,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피스컬노트의 서비스를 이용한 곳들은 전자제품 제조업체 혹은 식음료, 항공사, 자동차 제조사 등의 기업들이다. 탄소발자국이 큰 회사들이 대부분으로, 100억달러(12조원)부터 5200억달러(65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대기업 시장은 글로벌 시장과 상당히 다르다. 소프트웨어에 관한 한, 별로 좋은 시장은 아니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한국의 대형 IT회사들은 여전히 B2C형 기업이다. 미국에서는 거대 기술회사들은 대부분 B2B 기업이다. 어도비, MS, 오라클, 페이스북, 아마존 등의 비즈니스모델은 모두 B2B 기준으로 함께 일하는 에이전시를 추가해가며 모든 수익을 창출한다. 한국 시장은, 원래 피스컬노트가 지향하는 B2B 중심의 미국 시장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 대목에서 팀 황 대표는 “대부분의 한국 대기업은 아웃소싱이나 외부 라이센싱을 피하려고 하고, 자체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마켓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매우 어려운 시장”이라며 “한국 기업은 데이터센터를 자체적으로 만들지만 미국에선 대부분 라이센싱(licensing)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도 라이센싱 문화가 생기면 B2B 시장이 활성화 될 것으로 예측했으며, 향후 8~15년쯤 지나야 가능하게 될 것으로 봤다. 팀 황 대표는 “한국 기업들은 라이센스 소프트웨어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업을 키우려면 기존의 4대 회계법인들의 사업형태처럼 ESG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피스컬노트가 바라보는 지향점은 그곳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그러면 어떤 기업들을 주요한 타깃으로 보는가.
“한국 시장에서 겨냥하는 고객층은 자체 서비스를 갖고 있지 않은 중견기업들이다. 회사의 시가총액이 대략 10억~30억달러(1조2000억~3조7000억원) 규모의 중견그룹이 타깃 고객층으로, 농심과 같은 규모의 클라이언트군을 생각하고 있다. 삼성, SK 등은 계열사 IT그룹이 있지만, 아직 기술적 기반이 부족한 중견기업들의 경우 외부 파트너가 필요하다.”
- 구독 서비스의 가격과 어떤 클라이언트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궁금하다.
“1년에 4만달러(5000만원)부터 25만~35만달러(3~4억원)까지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르다. 외국계 기업인 네슬레, 코카콜라, 카길 등이 주요 고객인데, 가격대가 다소 높게 설정되어 있다. 네슬레는 해외에서 피스컬노트의 법률규제 정보뿐 아니라 ESG를 결부시킨 서비스도 받고 있다. 네슬레와 같은 식음료 회사들은 패키징이나 플라스틱 빨대, 용기 등에 대한 각국의 대응 정보를 얻기 위해 이런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카길의 경우 라틴아메리카의 삼림 파괴나 북미의 선박 이슈, 대두와 육류 등의 무역에 관한 종합적인 ESG 정보에도 민감하다.
결국은 ‘어떻게 돼가는 거지?(What’s going on?)’와 ‘우리는 뭘 해야 하지?(What do I do about it?)’에 관한 정보다. 전자는 법률이나 규제 동향정보고, 후자는 ESG 서비스다. 미국이나 EU의 경우 블룸버그, 로이터 등 구독정보서비스 기업들의 시가총액만 해도 30조~60조원에 달할 정도로 이러한 구독서비스가 익숙해있다. 우리 서비스는 이미 존재하는 서비스에 또 다른 구독서비스일뿐이다.”
그는 한국 내 기반을 쌓는 과정에서, 한국을 아시아의 허브로 삼을 계획을 밝혔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 정치적으로 안정됐을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과의 항공편 연결도 편리하고, AI를 비롯한 IT 및 테크인력 또한 무척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스컬노트는 2020년 2월 AI 기반 데이터 수집 및 가공기업인 데이터헌트를 인수하기도 했다. 데이터헌트는 데이터 수집, 처리, 검수, 인력관리 등 소위 ‘데이터 라벨링’을 AI가 처리하는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좋은 M&A 기업을 찾는 것에도 관심이 높다고 덧붙였다.
- 미국에서 상장 절차가 진행중인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미 SEC(증권거래위원회)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분기 안으로 NYSE(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 미국도 SEC에서 기후공시 의무화를 발표했고, EU도 곧 공시 의무화 제도가 곧 도입된다. 앞으로 ESG 시장이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지금 미국 시장이 거의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한다. 사업 기회가 아주 많다. 모든 기업은 ESG 플랫폼을 필요로 한다. 플랫폼의 평균 가격이 100이고 1년이면 5개의 상장기업이 신규로 서비스를 받는다고 가정해보면, 수십억 달러의 시장이 생긴다는 의미다. 피스컬노트는 이런 시장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 향후 사업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굉장히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올해 추정 매출액은 2200억원 가량이다. 특히 Legal, AI, ESG 등 3곳의 부문 중에서 ESG는 가장 크게 성장하는 사업부문이 될 것이다. 절반은 M&A로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팀황은 미인 2세대인 재미교포다. 속사포처럼 빠른 영어로 답을 쏟아내다가도, 중간중간 숫자를 ‘한국어’로 풀어 설명하는 센스를 보여줬다. 2008년 그는 16세의 나이에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소셜미디어로 공교육 재정 지원 활동을 했다. 정치와 사회 변화에 일찌감치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며, 2013년 플러그앤플레이가 실리콘밸리에서 운영한 스타트업 캠프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피스컬노트를 창업했다고 한다. IT가 정치보다 더 빨리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본 것이 계기였다. 창업을 위해 하버드대 MBA 과정을 중퇴했다. 야후 창업자인 제리 양 등으로부터 2억 달러 이상을 투자받았으며, 2018년에는 영국의 유력 언론사인 이코노미스트 그룹으로부터 시큐롤콜(CQ Roll Call)이란 미국 정치 전문매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창업을 해본 입장에서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하자, 그는 “우리도 아직 스타트업”이라며 “스타트업 창업은 정말 힘든 일이며,모든 걸 쏟아넣어서 일해야 하고, 밤낮없이 일하고…”라고 또다시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공감이 됐다.
※이 기사에는 김세진 junior editor가 참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