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마감은 순간 몰입도와 창의력을 극대화시킵니다. 뉴스레터라는 ‘약속’ 하나로 인해 벌써 4번째 칼럼을 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뉴스레터를 시작한 데에는 이렇게 강제로 약속해놓지 않으면 도저히 글을 주기적으로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도 본인이 칼럼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비결을 이렇게 자신을 어떤 특정한 환경에 묶어놓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여러분도 뭔가를 시작해야 하나 고민될 땐, 우선 주변에 ‘약속’을 하고 작게나마 실천해보시길 권유드립니다.^^ 

 

그린워싱과 그린허싱

오늘은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하나는 ‘약속(Commitment)’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해외 미디어에서 몇 차례 등장한 용어가 ‘그린 허싱(Green Hushing)’입니다. 기후컨설팅기업 사우스폴(Southpole)이 전 세계 기업 1200개 이상의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과학 기반 넷제로 계획을 세운 기업 중 4분의 1이 계획을 공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자칫 홍보했다가 ‘그린워싱’이라는 낙인 찍히는 것이 두려워 쉬쉬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 목표를 비밀로 한다는 의미에서 그린 허싱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우려스럽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대중들에게 ‘넷제로 약속’을 공표해야만 이걸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략을 짜고 움직이게 될텐데, 아예 약속을 드러내지 않으니까요. 공표되지 않은 넷제로 약속은 내부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축소될 수도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기업들은 이렇게 그린허싱을 하는 것일까요? 1990년대 초 그린피스가 기업의 잘못된 환경 행태를 꼬집기 위해 사용한 용어인 ‘그린워싱(Greenwashing)’은 이제 전 세계 만인이 너무나 쉽게 ‘딱지’를 붙일 수 있는 무기가 됐습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툴이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으로 바뀐 요즘엔, 자칫 실수로 그린워싱 낙인이 찍히면 이후로도 그 낙인이 거의 사라지지 않습니다. 관련 이슈만 나오면 계속 해서 해당 기업의 사례는 무한반복됩니다.
N유업사태 혹은 L기업의 '페이퍼보틀' 사건이 대표적이지요. 최근에 벌어진 SPC 사태 또한 관련자들이 상당히 큰 착각을 했다고 보여지는데, SPC 회장의 발빠른 사과와 진정성있는 유족 위로, 안전사고 재발방지 대책 등과 행위를 했다면 불매운동처럼 크게 들불로 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문제는 N유업 업이나 SPC 등 기업 리스크가 한번 터지면, 앞으로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이들 기업은 계속 재소환될 겁니다. 

 

그린 뮤팅의 3가지 이유

그러니 기업들은 이제 그린워싱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아예 침묵하는 쪽을 선택한 겁니다. 그린워싱 이전에 ‘그린뮤팅(Green Muting)’이라는 용어가 있었습니다. 그린비즈의 창업자인 조엘 마카위는 2008년에 쓴 자신의 책에 쓴 그린 뮤팅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업이 그린 뮤팅을 하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환경적 성과가 ‘좋은 일을 하는(플러스적인)’ 게 아니라, ‘나쁜 일을 덜 하는(마이너스를 제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파타고니아나 인터페이스(지속가능한 카펫회사의 대명사)가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생산활동에서 환경이 오염되는 것은 피할 수 없잖아요. 둘째, 대부분의 기업이 만들어낸 환경 성과는 제품의 가치 제안의 일부가 아닙니다. 직원 출장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것이나 기후기술 투자가 고객의 제품 선택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셋째, 대중으로부터 받게 되는 비난이 무섭고, 또 자칫 잘못하면 소송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엘 마카위는 최근에는 기업들이 그린허싱을 하는 네 번째 이유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바로 규제당국이 주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미국 SEC, 유럽 규제당국은 기업과 금융권의 지속가능성 주장에 대한 그린워싱 조사를 점점 더 면밀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 영국 광고심의당국이 HSBC의 버스정류장 광고를 그린워싱에 해당된다며 금지시킨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CRED전략, 브랜딩과 마케팅 차이

사실, 지속가능성 혹은 ESG 커뮤니케이션 논문을 들여다보면 기업이 자사의 활동을 홍보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회사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해당 활동이 조직의 업무와 관련성이 없을 경우, 부정적인 리스크에 노출된 적이 있는 기업의 경우 등 일부에서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득보다는 실이 되기도 합니다. 
조엘 마카위는 자신의 책(녹색경제를 위한 전략, Strategies for the Green Economy)에서 CRED전략을 제안했습니다. 프레임워크는 4가지인데, 신뢰성(Credibility, 왜 사람들은 우리를 믿어야 하는가), 관련성(Relevance, 우리는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효과적인 메시지(Effective Messaging, 복잡한 데이터를 설득력있는 메시지로 변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차별화(Differentiation, 우리만의 차별화된 목표와 성과가 있는가) 입니다. 
어떤까요? 임팩트온과 안테나살롱이 몇 달 전 MZ세대들과 그린워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을 때, 우리는 ‘브랜딩’과 ‘마케팅’을 분리했습니다. 마케팅은 물건이나 소비자들을 판매하기 위해 타깃을 설정하고, 그에 맞게 메시지를 정해서 이를 노출시키는 활동이지요. 소비자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보면 아무래도 단기적인 성과만 보고, 소비자를 도구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브랜딩은 좀 다르지요. 우리 회사의 열렬한 팬층을 만들어내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기 때문에, 브랜딩을 위해서는 소비자들과 솔직한 대화의 여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보면, 기업이 자칫 ‘그린워싱’에 해당하는 실수를 해도 막아주고 격려해주는 소비자들, 직원들이 많아져 브랜딩에 손상을 입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숨기기보다, 아직 부족하지만 사내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직원들은 가장 까다롭기도, 때로 가장 충성스럽기도 한 소비자이니까요. 
 

구글은 왜 대도시들과 협업할까

두번째 이야기는 ‘구글’의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구글이  ‘24시간 365일 무탄소 에너지 구축 위해 런던, 파리 등과 제휴’라는 내용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C40은 100개 가량의 대도시 시장들로 구성된 기후 네트워크입니다. C40과 구글은 도시가 24시간 내내 청정에너지로 운영될 수 있도록 ‘24/7 CF(Carbon-Free) 에너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도시는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65% 이상, 탄소 배출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구글이 도시의 무탄소 에너지 전환을 도울 수 있도록 전략, 관행, 도구를 개발하는 것을 돕는 걸 목표로 합니다. 런던, 코펜하겐, 파리 등 초기 시범도시에서 적용하며, 청정에너지 조달, 태양광과 풍력 자원이 가장 풍부한 시간대 에너지 사용 전환, 미니 그리드와 배터리 저장을 통한 지역 청정에너지 확대 등 지역 혹은 도심 중심의 에너지 솔루션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글은 이 프로그램을 위해 90만달러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구글이 몇 달에 한번씩 발표하는 보도자료들을 모아보면, 구글의 전략이나 흐름이 보입니다. 얼마 전 블랙록의 고위임원 출신인 유명 투자자이자 ‘엔진넘버원’의 창립멤버인 제니퍼 그란시오 대표가 CNBC 행사에서 “우리는 (현재) 구글과 아마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향후 10년 동안 수익이 실제로 창출될 곳은 농업, 자동차, 에너지 분야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구글은 이 3개 분야 중 에너지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구글에너지를 설립하기도 했지요. 구글에너지를 통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공급망 내 협력업체와 재생에너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구글 관련한 최근 기사 클리핑 몇 개 첨부할게요. 
12억 달러 조달한 핵융합 스타트업 TAE 테크놀로지스에 투자
구글, 57억 달러 규모 지속가능채권 어디에 할당했나                                
구글과 엔지가 풍력 발전 MOU 체결...바람 패턴 예측하는 클라우드 사용한다         
구글, 무탄소 에너지 전환 66% 달성했으나...재생에너지 부족 역풍              
구글, 순환경제를 위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출시   
구글 검색과 지속가능성 데이터 연결 강화              
                                                              

구글에너지의 전략은?

구글은 왜 이렇게 지속가능성과 에너지 클라우드에 투자하는 것일까요. 아니, 구글뿐 아니라 앞으로 거의 모든 기업들은 에너지 클라우드 전쟁을 벌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이야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같은 메이저 업체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구글과 MS를 포함한 빅테크 기업도 이미 에너지 클라우드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재생에너지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불확실한 풍력이나 태양광의 패턴을 예측하고 입출력을 제어해서 전력 계통망에 연결하는 등의 AI나 빅데이터 등의 IT 솔루션 기술이 필요합니다. 국내에도 이러한 재생에너지 IT솔루션기업이 여러 곳 있지요. 구글과 엔지가 풍력발전 MOU를 체결하고, 바람 패턴을 예측하는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의 에너지 시장은 대부분이 전력을 통하게 될테니, 이러한 빅데이터를 AI와 다양한 기술을 통해 관리함으로써 무궁무진한 사업기회들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각 가정의 소비전력 데이터, 탄소배출 데이터, 에너지 사용량 데이터 등을 모두 분석할 수 있고 이를 클라우드에서 관리할 수 있게 된다면, 이 가전제품 회사는 그냥 가전제품 회사일까요 데이터 플랫폼 회사일까요? 앞으로는 누가 이러한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하고, 고객 경험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지가 상당히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구글은 바로 그런 지점들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국내 에너지 시장의 한계

이런 글로벌 흐름을 보다 보면, 국내의 에너지 시장에 대해 원전과 재생에너지로 나뉘어 싸우고, 한전은 독점을 풀지 않음으로써 에너지 시장의 혁신을 가로막고, 많은 기업의 CEO들은 에너지시장에 관해 잘 모르는 등의 여러 가지가 좀 우려스럽습니다. 에너지가 그냥 에너지가 아니라, 거의 산업 전체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길목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아침, EU에서 2030년까지 모든 신축 건축물을 (온실가스) 배출제로 건물로 만들겠다는 합의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이렇게 되면 건물은 모두 전력에너지 및 (냉난방을 위한) 열에너지 등으로 지금과는 다른 시스템이 될 겁니다. 지식격차가 너무 큰 것일까요, 제 오지랖이 너무 넓은 것일까요. 걱정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 주도 평안하세요! 

※이 칼럼은 10월 26일(수) 발송된 뉴스레터입니다. 칼럼을 좀 빨리 읽고 싶은 분은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박란희 대표 & 편집장
                             박란희 대표 & 편집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