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 때면 전 세계는 들썩거립니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모이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역사상 선진국과 개도국이 한 목소리로 합의를 이끌어낸 유례없는 외교적 성과라고 불리는 ‘파리협약(2015년)’이 만들어진 것이 이 COP회의입니다. 지구 온난화가 너무 심각하니, 세기말인 2100년까지 전 세계의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자는 포괄적 협의이지요(참고로 지난해 발표된 IPCC자료에 따르면, 지구는 이미 1.09도 상승했고 1.5도 상승은 예견된 미래라는 게 과학자들 얘기입니다).
거기에 각 나라는 ‘온실가스감축목표(NDC)’라는 것도 발표하고 지키도록 하자는 합의인데요. 이 목표는 불가역적입니다. 한번 잡은 목표를 올릴 수는 있어도, 그 목표 아래로 낮출 수는 없습니다.
지난해 영국의 글래스고 회의에서는 정말 화려한 약속들이 오갔습니다. 전세계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1,2,3위 나라가 ‘탄소중립’ 약속을 했거든요. 인도가 2070년, 중국이 2060년, 미국은 2050년입니다. 이들 나라는 이 때까지 자신들이 내뿜은 온실가스만큼 모조리 거둬들여서 넷제로(Net-zero)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해는 꽤 조용합니다. 이집트에서 11월 6일부터 18일까지 COP27 정상회의가 열리는데, 국내도 해외도 커다란 어젠다가 별로 보도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에선 중간선거, EU에선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위기, 영국에선 총리 교체 등 자국 내 정치문제 등으로 분주한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하지만 올해 외신에서 들려오는 움직임들을 보면, 꽤 구조적인 변화들이 읽혀집니다. 지난해 수많은 기업들이 2030년, 2040년 넷제로에 대한 ‘구호’와 ‘약속’을 줄이어 발표했다면, 올해의 화두는 ‘손실과 보상(loss and damage)’,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 ‘다자간 개발은행(MDB) 개혁’ 등의 논의가 제법 많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손실과 보상 기금이 설립될 지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최국인 이집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로 역대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집계해보면, 미국과 유럽연합(EU)와 같은 선진국이 단연 톱입니다. 아프리카와 섬나라 등은 기후변화의 기여율이 0.001%나 될까요. 하지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다보니 이제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이 기후재정 공약을 지키라”고 압박합니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연간 1000억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는데, 2019년에는 연간 800억달러만이 전달됐습니다. 선진국들도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재정이 탄탄하지 않으니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로이터는 2025년부터 연간 목표를 1000억달러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손실과 보상 기금, 설립될까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의 구두약속을 믿을 수 없다며 아예 기금을 설립하자고 못박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개도국들이 이렇게 강하게 나서는 데는 기후변화 적응 비용이 천문학적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으로, 이들은 “기후 취약국을 위한 적응 비용을 2025년까지 두 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엔무역개발 사무국 보고서는 2030년 무렵 개발도상국들의 기후변화 적응 비용이 3000억 달러(약426조원)가 될 것이라고 추산합니다.
최근 블룸버그NEF가 새로운 보고서를 냈는데, 개발도상국에 대한 청정에너지 투자가 필요치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연간 1조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는데, 지난해 670억달러가 투자됐다고 합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한창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개도국은 석탄발전을 많이 하기 때문에, 블룸버그NEF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배출량의 절반, 에너지 관련 배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개도국에 에너지 전환이 시급하지만, 지난해 저탄소 에너지 기술에 대한 세계 투자(총 7850억달러)는 주로 선진국에 국한되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풍력과 태양광, 탄소 포집과 저장(CCUS), 전기차(운송), 열에너지, 수소 및 원자력 등 청정에너지 투자는 전 세계 투자의 4분의 1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개도국 투자는 9% 감소하고, 선진국 투자는 53% 증가했다고 하네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 유럽연합 등은 개발도상국 보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기후금융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논의가 다자간 개발은행 개혁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0월 열린 세계은행 연례총회에서 미국과 독일 등은 세계은행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저소득국에 대한 더 많은 보조금과 양허적 대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존 케리 특사 또한 세계은행이 기후변화 문제에 더 강력하게 나서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COP27 회의를 앞두고 스톡홀름 환경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새로운 기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습니다. ‘기후금융 메커니즘’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기후금융은 취약한 개발도상국에 보조금이 아니라 대출을 해줍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기후 피해국가에서 쉽게 기금을 구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간소화한 유엔기금을 설립하고, 설립되는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기존 기금으로 보상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처럼 관료화된 세계은행, IMF 등의 느린 체제로는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은 부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러한 기금에 반대합니다.
논의가 어찌될지는 향후 1-2주 동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는 어쩌면 인류가 지구라는 이 행성에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문제적 이슈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싸워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싸워도, 기후변화 문제가 지금보다 더 심각해지면, “결국 우리는 한배였어”라고 극적인 타협점을 찾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이든이 내놓은 역사적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알고보니 대중국 견제법안이자 공급망 자국 재편법임을 깨닫고, 이제 유럽연합까지 강력반발하고 나선 모양새이니까요.
끝으로 로이터가 COP26 약속이 어찌 됐는지 팩트체크한 내용을 짤막하게 공유드리겠습니다. 느리지만 진척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올해 제출된 유엔 NDC 지난달 보고서에 따르면 194개국 중 24개국만이 이 계획을 갱신. 정권이 바뀐 호주가 2030년까지 배출량을 43% 줄이겠다고 발표. 원래 2005년 대비 26-28%였는데, 엄청나게 커다란 변화. 올해는 칠레, 멕시코, 터키, 베트남도 새로운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
-브라질은 룰라 대통령 선출과 아마존 삼림벌채
올해 룰라 대통령이 선출됨으로써, COP27 회의 참석 예정. 삼림벌채 종식을 위한 노력이 강화될지 주목. 자이르 볼소나 전 대통령은 기후변화회의론자들을 장관으로 임명하고 아마존 삼림벌채 이슈가 심각해져 기후활동가들의 반대를 많이 받았음.
지난해 100개 이상의 국가들이 2030년까지 삼림벌채 중단 약속. 아마존 삼림벌채가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2022년 9개월 동안에도 23% 더 증가함. 아마존 삼림벌채 이슈에 주목 필요.
-화석연료 감축 및 메탄 감축
지난해 독일,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20개국 2022년말까지 해외 화석연료에 대한 공적자금 중단키로 선언. 일부 국가는 약속을 이행하고 있지만, 독일과 미국 등은 구체적 계획 발표하지 않음. 특히 유럽은 전쟁으로 천연가스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당분간 약속 지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
미국과 유럽연합 등 119개국 2030년까지 30%의 메탄 줄이겠다는 서약. 세계자원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15개국만이 구체적 계획을 내놓음. COP27 회의에 맞춰 메탄 감축 전략 발표 예상. 중국의 메탄감축 목표 갱신에 주목.
※이 칼럼은 11월 2일(수) 발송된 뉴스레터입니다. 칼럼을 좀 빨리 읽고 싶은 분은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