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이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기후정상회담을 열었다. 회담에 참석한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탄소 배출권과 탄소 상쇄 크레딧 등 시장 기반의 금융수단을 중심으로 기후 위기에 대처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아프리카가 금융수단을 주요 기후대응전략으로 받아들이자, 시장을 선점하려는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관측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투자자들은 아프리카 탄소시장 이니셔티브(ACMI)로부터 4억5000만 달러(약 6003억원) 규모의 탄소크레딧을 구입하기로 약속했다. UAE는 아프리카 기후금융리더로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HSBC자산운용도 2억 달러(2668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담, ‘나이로비 선언’ 작성...
기후변화 대응에 본격 돌입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4일(현지시각)부터 3일간 제1회 아프리카 기후정상 회담을 개최했다.
회담의 목표는 9월 20일에 뉴욕에서 개최될 유엔 기후정상회의와 11월 말에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전달할 입장문 초안인 나이로비 선언을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에는 아프리카 각국 정상 및 안토니우 구테흐스 국제연합(UN) 사무총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약 3만여 명의 인원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된다.
아프리카는 기후에 취약한 개발도상국들이 대거 위치해 있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4일(현지시각) 발표한 ‘2022 아프리카 기후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프리카 대륙에 거주하는 1억10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홍수와 가뭄 등의 영향을 직접 받았고 85억 달러(약 11조원)가 넘는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페테리 탈라스 WMO 사무총장은 "아프리카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넘지 않지만,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에는 가장 취약한 대륙"이라고 강조했다.
루토 대통령은 개막식에서 “아프리카가 기후 대응을 시작해야 하며, 국제사회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자금 조달 금지를 풀고 부채를 줄이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자금, 12%밖에 확보 못 해…
다양한 자금처 모색해야
아프리카가 기후대응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달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확인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기후정책이니셔티브(Climate Policy Initiative)가 지난해 8월에 발표한 보고서는 아프리카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12% 수준밖에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매년 2500억 달러(334조원)가 필요하지만, 2020년에는 295억 달러밖에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탄소배출권과 상쇄 크레딧을 적극 활용할 전망이다. 셸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탄소 상쇄 시장의 가치는 2021년 약 20억달러(약 2조7000억원)였으며 2030년까지는 100억~400억 달러(약 13조~5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열린 COP27에서는 아프리카 자발적 탄소시장 이니셔티브가 출범했다. 이니셔티브는 2030년까지 탄소 상쇄권 판매를 19배 확대하고 일자리는 2030년까지 3000만개, 2050년까지 1억개 이상을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금은 배출권 거래를 통해 2030년까지 연간 60억달러(약 8조원), 2050년까지 1000억달러(약 133조원) 이상을 동원하는 게 목표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먼저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성 문제다. UAE 국영기업 애드녹의 CEO이자 COP28의 의장인 술탄 알 자베르도 큰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탄소시장에 공동으로 합의된 표준이 부족해서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해외 미디어 가디언지가 공동 연구를 통해 베라가 발행하는 크레딧의 신뢰성 문제를 지적하면서 큰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케빈 카리우키(Kevin Kariuki) 아프리카개발은행 부총재는 UAE와의 거래에 대해 “매우 환영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그는 “COP28에서 5000억 달러(667조원) 상당의 기후금융을 확보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에 특별인출권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인출권이란 회원국이 외환위기 등에 처할 때 담보 없이 필요한 만큼의 외화를 인출할 수 있는 권리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집행위원장은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발전된 녹색채권 시장을 가지고 있다”라며 “아프리카가 녹색 채권 시장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우리의 전문 지식을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충분한 기후변화 대응 자금뿐만 아니라 적응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글로벌 싱크탱크 글로벌 적응센터(Global Center on Adaptation, GCA)는 기후 적응을 위해 필요한 자금이 연간 1000억달러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후 적응 자금은 2020년 기준으로 연간 110억달러(약 15조원) 수준이다. GCA는 5일(현지시각) 아프리카 국가들이 기후적응 자금 527억달러(약 70조원)가 필요하다고 추정했는데, 실제 필요한 금액의 절반에 불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담서 기후자금 투자 및 지원 발표 릴레이...
‘투자’ 아닌 ‘부채’ 갚으라는 지적도 나와
UAE 외에도 여러 국가와 단체가 회담에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은 4억5000만 유로(약 6429억원)의 자금 조달을 발표했으며, 미국은 기후 탄력성과 식량 안보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3000만 달러(약 400억원)를 약속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케냐의 녹색 수소 산업을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약 1200만 유로(약 171억원)의 보조금을 약속했다.
인천에 사무소를 둔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도 행사에서 1억8900만달러(2521억원)를 삼림벌채 없는 농업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대상국은 11개로 그 중 6곳이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다. 6개국은 코트디부아르, 잠비아, 라이베리아, 가봉, 콩고민주공화국, 카메룬이다.
미국의 베조스 어스 펀드(Bezos Earth Fund)는 2280만 달러(약 304억원)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자금은 케냐의 그레이트리프트 밸리의 토지 60만 헥타르를 복구하고,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브룬디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우림 지역을 복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한편, 정부와 금융권이 금융수단을 동원하여 기후대응에 적극 나선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환경 운동가들은 즉각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환경 운동가들은 4일(현지 시각) 나이로비에서 500명가량이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탄소배출권은 부유한 국가와 기업이 환경오염을 지속하게 하기 위한 구실이며, 직접적인 보상과 부채 탕감을 통해 ‘기후 부채’를 갚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동가들이 얘기하는 직접적인 보상은 ‘손실과 피해’ 기금을 가리킨다. 손실과 피해 기금은 COP27에서 선진국이 기후변화를 초래한 책임을 인정하고 개도국에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해 자금을 지원함을 말한다. 덴마크가 2022년 9월에 1300만달러(173조원)를 이 기금으로 내겠다고 최초로 약속하고, G7도 2억달러(2668억원)를 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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